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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

허준, 동의보감을 통해 본 동서의학 비교

by 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 2023.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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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준의 일생

허준의 묘는 경기도 파주군 진동면 하포리에 위치해 있다.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에 정해진 절차를 거쳐서 출입해야 한다. 1991년에야 발견되었는데 발견당시 비석이 파괴된 상태로 발견되었지만 비문에 호성공신, 허준, 양평군 등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허준의 묘로 확신할 수 있었다. 동의보감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저자 허준은 티브이 드라마로 여러번 다루어 져서 인기를 많이 끌었다. 소설이나 드라마는 그 특성상 허구가 많이 게제되어 있고, 일부 사건을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과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허준이 천민 출신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허준은 서자출신이기는 하지만 천민은 아니었다. 허준의 아버지는 용천부사를 지낸 허륜이라는 양반이고, 어머니는 허륜의 소실인 영광김씨인데 어머니는 양민이었다. 비록 허륜이 본부인이 있었기 때문에 서자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천대를 받고 교육을 못받았다던지 과거시험에 응시를 못하지는 않았다. 본래 서자(양반과 평민사이에의 자식)나 얼자(양반과 천민사이의 자식)이 모두 과거응시가 불가능했지만 허준이 10살되던 1550년에 법이 바뀌어 서자도 과거응시가 가능하도록 되었다. 즉 양반만 과거응시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평민이상이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를 하면 양반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한 설명이겠다. 허준의 동복 동생인 허징이 1586년 알성시 병과에 급제하여 지방관직인 목사가 된 것을 보면 이같은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소설이나 티브이 드라마와는 다르게 사실은 허준이 누구에게서 의술을 배웠는지는 알 수없다. 단지 허준이 내의원에 들어오기 전에 의원으로서 명성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아버지 허륜이나 가족들의 도움으로 여러 스승으로부터 의술을 배웠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즉 서자 차별을 하지 않는 가풍아래서 여러 스승으로부터 의학기초를 배웠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1573년에 정3품 내의원정에 들어갔고 1575년에는 국왕 선조를 진료하는 의원이 되었다. 그후 선조와 광해군 등 왕실의 크고작은 병을 치유해낸 공적으로 선조의 총애를 받게되고 벼슬도 높아지게 되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허준은 가족과 함께 피난하지 않고 국왕 선조를 호종함으로서 전후 논공행상에서 호종공신 3등급의 공훈을 받게 된다. 1596년 선조는 '조선의 실정에 맞는 의서편집'을 명령하게 되는데 허준은 선조 사후, 1610년에 동의보감을 완성하여 당시 국왕인 광해군에게 바쳤다. 1615년 향년 76세로 사망하는데 동의보감 편찬의 공적으로 '정1품 양평부원군 보국숭록대부'에 추증되었다.

2. 동의보감 의의

동의보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허준선생 단독 집필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같다. 1596년 선조의 명에 의해 집필이 시작될 당시 허준을 비롯한 당대 명의들이 모두 참여하여 공동 집필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단지 전란으로 인해 초기에 집필에 참여하였던 명의들이 흩어져서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었는데, 허준이 책임자로 임명되어 다른 명의들을 지휘하여 무사하게 동의보감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허준이 제일 공로가 크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긴 듯 하다. 동의보감은 당시에 입수가능한 조선과 중국의 의서와 의학지식을 집대성하고 내의원의 연구가 더해져서 완성된 의학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출판되자마자 우리나라, 중국 청나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중국 북경의 서점가에서 동의보감이 팔리고 있었고, 일본상인들은 조선에 올때마다 동의보감을 구하려고 혈안이었다. 모두 23편으로 내경편;,외경편; 4편,잡병편 11편, 탕액편 3편, 침구편 1편과 목차편 2편으로 되어있고, 각 병마다 처방을 질서정연하기 기술해놓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첫째, 정확성과 실효성에 중점을 두어 번잡한 의술적 통념을 취사선택하여 핵심만을 적용하였다. 둘째, 동양의학사 최초로 정(精) 기(氣) 신론(神論)에 근본을 두고 내장기(內臟器)의 생리적 기능변조(機能變調)와 그 직접적인 병증을 일괄하여 내경편(내과)에서 새로 다루었다. 셋째, 중국에서 나는 약재가 아닌 우리나라(당시 조선)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권장하였고 특히 탕약에 쓰이는 약재는 일반백성들이 부르는 한글명을 부기하여 채약 및 사용에 편리하도록 했다. 넷째, 다른 의학서적의 학설이나 처방을 인용할 때는 그 출처를 명시하였다. 다섯째,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질에 맞는 표준 약재량을 정하고 적의가감하도록하였으며 복용법도 명시했다. 여섯째, 민간에서 손쉽게 조제하여 사용할 수 있는 단방약도 포함하였다. 동의보감은 대한민국 국보 제309호로 지정되어 있고 2009년에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중요한 저술서적이다. 특히 일반 국민이 쉽게 사용 가능한 의학지식을 담고 있는 공중보건과 예방의학 개념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선도적 역할을 수행한 측면이 있다.

3. 동서의학 비교

[역사 및 기원]동양의학은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 기원한 전통 의학 체계로, 몸과 마음, 자연 환경 간의 균형을 중요시한다. 도교, 천문학, 요가, 태극도와 같은 체계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 반면에, 서양의학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시작되었으며, 과학적 방법과 해부학적 지식에 중점을 둔다. [진단 및 치료] 동양의학은 기운(에너지)의 흐름과 균형을 조절하는 데 중점을 두며, 침술, 한방약, 체조 및 명상을 활용한다. 서양의학은 해부학, 생리학 및 임상 시험에 기초하여 약물 치료, 수술 및 방사선 치료와 같은 과학적 기술을 사용한다. [철학적 접근] 동양의학은 환자의 신체와 마음을 통합적으로 살피며, 유지와 예방에 중점을 둔다. '기'와 '영'의 개념이 중요하며, 예를 들어 한의학에서는 '한열(寒熱)'과 '한증(寒證)'을 고려한다. 서양의학은 병리학적 진단과 증상 관리에 중점을 둔다. 환자의 증상을 제거하거나 관리하기 위해 약물과 치료법을 적용하는 것이 주요 목표이다. [과학적 기반] 동양의학은 과학적 연구와 증거 기반 의학에 비해 역사적으로 미진한 부분이 있다. 서양의학은 현대 의학의 발전과 함께 과학적 연구와 증거 기반의 의학을 중심으로 확장되었으며, 현대 의학의 주류이다. [현대적 통합] 일부 환자는 동양과 서양의학의 통합 치료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병행 치료의 이점을 취하며 개별 환자에게 맞춘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은 서로 다른 접근 방식과 역사적 배경을 가지며, 환자의 상태와 선호도에 따라 선택되어야 한다. 병행 치료나 통합 접근은 환자의 최상의 건강을 유지하고 회복하기 위한 중요한 옵션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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