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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행 속에서 호기심, 세상을 사는 멋과 맛을 공감하는 곳</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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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세상을 온통 좋은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들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입니다.  세상에 첫 발을 딛는 어린아이의 호기심, 막연한 불안감의 긴장도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젊음 유지 비법이라 생각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새로 깨닫는 기쁨, 맛과 멋을 즐기는 감각을 항상 유지하고 싶습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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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9 Jun 2026 11:25:5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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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gingEdit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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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행 속에서 호기심, 세상을 사는 멋과 맛을 공감하는 곳</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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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서 김인후의 강학당 훈몽재(訓蒙齋)</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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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40317_111905.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2&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W3rdz/btsGi0MVQyx/QkKMpkQRGuVB7ULPq5alR1/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W3rdz/btsGi0MVQyx/QkKMpkQRGuVB7ULPq5alR1/img.png&quot; data-alt=&quot;훈몽재 전경&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W3rdz/btsGi0MVQyx/QkKMpkQRGuVB7ULPq5alR1/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W3rdz%2FbtsGi0MVQyx%2FQkKMpkQRGuVB7ULPq5alR1%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2&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40317_111905.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2&quot;/&gt;&lt;/span&gt;&lt;figcaption&gt;훈몽재 전경&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순창에 있는 훈몽재(訓蒙齋)&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에 가면 &quot;훈몽재&quot;라는 유적이 있다. 정읍 내장산 국립공원에서 지척이다. 호남고속도로 정읍 IC를 빠져나와 국도 21번에서 순창군 쌍치면 시산리와 중안리 중간도로를 따라 둔전리로 가면 백방산 자락 아래 추령천변에 위치해 있다. 정읍 IC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소요된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40317_114000.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2&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T1vCz/btsGj3IUUgW/koA6BSrjfTzwQv02s9KN91/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T1vCz/btsGj3IUUgW/koA6BSrjfTzwQv02s9KN91/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T1vCz/btsGj3IUUgW/koA6BSrjfTzwQv02s9KN91/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T1vCz%2FbtsGj3IUUgW%2FkoA6BSrjfTzwQv02s9KN91%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2&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40317_114000.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2&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훈몽재 의미는 '어리섞음을 가르쳐 일깨우는 집'이라는 뜻이니 후학을 양성하는 강학당인 것이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가 1548(명종3)년에 자신의 처가집 고향마을에 지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조선 중기 문신 하서 김인후의 강학당&amp;nbsp;&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김인후는 1510(중종5)년에 전라도 장성에서 태어났다. 18살에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였고 21살에 사마시(주석1)에 합격하였다. 23살때부터 퇴계 이황과 함께 성균관에서 학문을 닦았고 30세인 1540년에 별시 문과(주석2)에 급제하였다. 1543년에 홍문관 박사 겸 세자시강원설서가 된다. 즉 훗날 인종이 되는 세자를 보필하고 가르치는 직임을 맡은 것이다. 세자와는 5살 차이였지만 두 사람은 세자와 스승 이상의 절친이 되었다. 1544년에 중종이 승하하자 뒤를 이은 인종을 보필하였는데, 인종이 1545년 7월에 갑자기 승하하게 된다. 곧 이어 을사사화(주석3)가 일어나자 김인후는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처가집 마을인 이곳으로 낙향하여 강학당을 연 것이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40317_111949.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2&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s8ZNo/btsGiYhmoie/x7kRuMPfghjFKdn7KdDKP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s8ZNo/btsGiYhmoie/x7kRuMPfghjFKdn7KdDKP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s8ZNo/btsGiYhmoie/x7kRuMPfghjFKdn7KdDKP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s8ZNo%2FbtsGiYhmoie%2Fx7kRuMPfghjFKdn7KdDKP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2&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40317_111949.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2&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figure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emoticon&quot; data-ke-align=&quot;alignLeft&quot; data-emoticon-type=&quot;face&quot; data-emoticon-name=&quot;055&quot; data-emoticon-isanimation=&quot;false&quot; data-emoticon-src=&quot;https://t1.daumcdn.net/keditor/emoticon/face/large/055.png&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keditor/emoticon/face/large/055.png&quot; width=&quot;80&quot; /&gt;&lt;/figure&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주석 1) 생원시와 진사시를 합하여 부를 때 사마시(司馬試) 또는 소과(小科)라고 하였다. 사마시는 3년마다 정기적으로 설행하는 식년시와 국가에 큰 경사가 있을 때 축하하기 위하여 실시하는 증광시로 구분되었다. 식년 사마시와 증광 사마시는 시행 시기만 다를 뿐 시험의 절차와 내용은 같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주석 2) 別試는&amp;nbsp;국왕의 즉위 이외의 국가의 경사가 있을 때 실시하는 특별시험이었다. 별시 문과는 초시와 전시 두 단계만 있었다. 이 때의 초시는 식년 문과의 복시에 해당한다. 별시 문과는 서울에서만 실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주석 3) 1545년(명종 즉위년)조선 왕실의 외척인 대윤(大尹)윤임과 소윤(小尹) 윤원형의 반목으로 일어난 사림(士林)의 화옥(禍獄)으로 소윤이 대윤을 몰아낸 사건&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인종의 스승이자 친구&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인종은 6살 때인 1520년(중종 15년) 책봉된 이후 세자 신분으로만 25년간이나 살았다. 인종은 친모인 장경왕후(1491~1515)가 산후증으로 7일만에 승하하면서 새어머니인 문정왕후(1501~1565)가 생긴다.하지만 문정왕후에게도 아들(경원대군, 훗날 명종)이 있었으므로 그녀는 자기가 낳은 아들을 옥좌에 올려놓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성군의 자질을 물씬 풍겨 성군이 될 것이라는 신망을 받았고 영특하였지만 25년 세자 생활은 날마다 위태로웠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인종의 성덕은 채 피지도 못한채하고 8개월 단명으로 끝난다. 인종의 사인은 공식적으로는 지나친 효도 때문에 얻은 병으로 알려져 있다.1544년(중종 39년) 중종이 병에 걸리자 세자(인종)는 부왕 곁을 지키면서 밤낮으로 관과 띠를 풀지 않았고, 곡기까지 끊었다. 이런 지극정성에도 아버지 중종이 승하하자(1544년 11월 15일) 인종은 머리를 풀고 뜰 밑에 엎드려 엿새 동안이나 물 한모금 입에 대지 않았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인종은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문정왕후와 왕후의 오라비인 윤원로(?~1547), 윤원형(?~1565) 형제가 인종을 해코지 하려고 갖은 술수를 썼다. 특히 윤원형 등은 일찍이 절에 불공을 올려 임금의 수명이 길지않게 해달라고 하고, 한밤중에 남산에서 임금이 빨리 죽게 해달라는 등 참담한 기도를 해댔다. 궁중에 나무로 만든 사람을 묻어서 요망한 방술을 했다. 1543년(중종 38년) 1월7일에는 세자가 기거하는 동궁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했는데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인종의 스승이자 절친인 김인후도 당연히 이런 수상한 기미를 감지했다. 부모 공양을 위해 옥과 현감으로 나가있던 김인후는 1545년(인종 1년) 4월 인종의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던 때에 상경한다. 김인후는 스승의 자격을 내세워 약제의 처방을 의논하는 자리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으나 담당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마지막 부탁으로 전하를 제발 다른 궁궐로 옮겨 건강을 돌봐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이마저 허용되지 않았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4. 매년 인종 기일무렵 미치광이가 되는 하서&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560년(명종 16년) 1월16일 명종실록이 기록한 하서 김인후(1510~1560)의 졸기(부음기사)에는 &quot;타고난 성품이 맑고 순수했다. 5~6세 때에 문자를 이해하여 사람을 놀라게 했고, 용모만 바라보면 속세 사람같지 않았다. 마음이 관대하여 남들과 다투지 아니했으며, 예의와 법도를 실천했다.&quot;고 되어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김인후는 유언으로 &quot;(내가 죽은 뒤) 옥과(전남 곡성)현감 이후의 관직은 쓰지 말아달라&quot; 고 했다. 옥과현감을 지낸 뒤에도 명종 시대에 성균관 전적(정6품), 홍문관 교리(정 5품)와 성균관 직강(정 5품) 등의 관직을 명받았으나 그런 직함은 절대 쓰지 말아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에는 그 이유가 있었다고 할 수있다. 문정왕후와 문정왕후의 오라비인 윤원형의 애첩 정난정(?~1565) 등 국정문란 세력이 주는 부끄러운 관직을 절대 받지 않았다는 결기의 표현인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서 김인후는 매년 6월 그믐~7월 그믐 사이 인종의 기일(제삿날) 무렵이 되면 뒷산에 올라가 며칠 밤낮 통음하면서 미치광이처럼 대성통곡하다고 돌아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5. 선비의 길에서&lt;/h2&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40317_113640.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2&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AlOSM/btsGjMt6vCk/swJxfODFb8BVsJ7KEF47U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AlOSM/btsGjMt6vCk/swJxfODFb8BVsJ7KEF47U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AlOSM/btsGjMt6vCk/swJxfODFb8BVsJ7KEF47U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AlOSM%2FbtsGjMt6vCk%2FswJxfODFb8BVsJ7KEF47U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2&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40317_113640.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2&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훈몽재에서 가인 김병로 선생 생가(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까지 추령천변을 따라 약 6km 잔교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수량이 많은 냇가를 따라 걸으면서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듣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국정농단을 이유로 대통령을 탄핵시키기도 했던 대한민국이다. 그래도 오늘날 우리는 투표라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민의를 관철할 수 있으니 우리는 행복한 것 아닐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참고 영상]&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a href=&quot;https://youtu.be/QReXM4Vbj78?si=i3JI5R1bCjtf9pui&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youtu.be/QReXM4Vbj78?si=i3JI5R1bCjtf9pui&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a href=&quot;https://www.instagram.com/reel/C4nECOWO4kp/?igsh=YmY2OGF2bnRzcTZq&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www.instagram.com/reel/C4nECOWO4kp/?igsh=YmY2OGF2bnRzcTZq&lt;/a&gt;&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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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훈몽재</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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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3 Apr 2024 17:09:4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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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혼불] 작가, 최명희 편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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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에 가면 &lt;b&gt;[혼불문학관]&lt;/b&gt;이 있다. &amp;lt;혼불&amp;gt;은 故&lt;b&gt; 崔明姬&lt;/b&gt;씨가 1980년 4월부터 1996년 12월까지 장장 17년동안 쓴 대하소설이다. 전라도 지방의 언어, 문화 등이 세밀하고 아름다운 우리 언어로 채색된 문학의 정수라고 할 수있다. 문학관에 전시된 편지[수신: &lt;b&gt;김병종&lt;/b&gt; 교수, 서울대 미대학장 등 역임, 이 편지를 기부한 분, 전북 남원출신]를 읽자니 그들의 교류가 무척 아름답고 부럽기까지 하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KakaoTalk_20240217_214407413_03.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3O4y4/btsFbUtjKVI/bkNeTIrNHJiVr5ewxZGOU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3O4y4/btsFbUtjKVI/bkNeTIrNHJiVr5ewxZGOU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3O4y4/btsFbUtjKVI/bkNeTIrNHJiVr5ewxZGOU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3O4y4%2FbtsFbUtjKVI%2FbkNeTIrNHJiVr5ewxZGOU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3&quot; data-filename=&quot;edited_KakaoTalk_20240217_214407413_03.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안녕하시온지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사과 냄새가 시고 향기롭게 그러나 서글프게 섞여 있는 시월의 햇살을 받고 앉아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여러가지가 고맙기만 합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나는 아직 뜻대로 건강이 회복되지 않아 학교에는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책도 보고 바깥도 내다보고 하면서 지내고 있지요. 요즘은 전보다 한결 좋아져서 이만하면 &amp;lt;일&amp;gt;을 시작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때때로 가만히 앉아 있으면 혈관 속에서 물소리가 들립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주 오래 오랫만에 平和를 느낍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무슨 바람 속에서 그 긴 세월을 미친듯이 살아왔는가 싶습니다. 사로 잡히고 醉하고 울고 잠 못 이루고 나프탈린 닳아지듯 風化하는 젊음과 목숨이 겨워서 그대로 속이 빈 채 고꾸라질 것만 같아 부질없는 것들을 막대기 삼아 지탱하려 하였지요. 오히려 그런 것들이 나를 짓누르고 속박하고 결국은 나를 죽어가게 하였던 것을&amp;hellip;&amp;hellip;&amp;helli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生에 對한 근본적인 따뜻함, 이 것만이 우리 모든 存在들에게 위안이 아닌가 합니다. 前에 존경하는 先生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다이아몬드는 그 빛이 너무나 영특하여 가해성이 있다. 보는 이를 찌른다. 나는 가끔 그 말씀이 생각납니다. 눈 부시게 찬란한 햇빛을 보면 눈이 시어서 오히려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빛을 가려버릴 때 찬란하게 피어난 장미를 바라볼 때, 그리고 너무나도 아름다워 차마 마주볼 수 없는 지극한 사람 앞에 섰을 때 그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KakaoTalk_20240217_214407413_02.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E6lzH/btsFbtoYKwn/JrFnrJL1odXKJkZakyxHu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E6lzH/btsFbtoYKwn/JrFnrJL1odXKJkZakyxHu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E6lzH/btsFbtoYKwn/JrFnrJL1odXKJkZakyxHu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E6lzH%2FbtsFbtoYKwn%2FJrFnrJL1odXKJkZakyxHu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3&quot; data-filename=&quot;edited_KakaoTalk_20240217_214407413_02.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아, 아름다움도 지나치면 罪가 되는구나. 담담히 君子의 德을 기르고 진심으로 따뜻한 情을 길러 살아있는 날까지는 온갖 산 것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그리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나는 아직도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말의 意味를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독선이 아닐는지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편지를 쓰다가 내다본 아파트의 언덕 배기, 거기 가을 잠자리들이 지천으로 날고 있습니다. 투명한 날개를 반짝이며 시드는 가을 풀과 잔나무까지 사이를, 가볍게 가비얍게 나르는 저 작은 魂, 그리고 시고 맑아 눈물 도는 햇빛, 하늘 저편으로 한 마리 새처럼 사라져 가는 하얀 비행기의 모습, 그 은은한 餘音, 자잘한 풀꽃 사이로 살금살금 발소리 줄이며 그 잠자리 잡으러 손을 집게같이 만들어, 다가서는 아이들이 모두 서로서로 어울리지 않으면, 사람 혼자서야 그것이 무엇이리오. 그저 存在, 有形 無形間에 生命 있고 없고 간에, 만난 것들은 모두 존귀하지 않겠습니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나는 마음속에 알 수 없는 찬미가 고여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고요한 감사를, 이윽고 홀연히 떠나갈 이승, 무엇에도 마음을 묶어두지 말고 얽히지 말고, 아끼면서 나누면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KakaoTalk_20240217_214407413_01.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Et1I0/btsFbUfKUoK/pZe1WMZquxTKmwGUy4OHK1/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Et1I0/btsFbUfKUoK/pZe1WMZquxTKmwGUy4OHK1/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Et1I0/btsFbUfKUoK/pZe1WMZquxTKmwGUy4OHK1/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Et1I0%2FbtsFbUfKUoK%2FpZe1WMZquxTKmwGUy4OHK1%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3&quot; data-filename=&quot;edited_KakaoTalk_20240217_214407413_01.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맨 처음 나에게 축하의 葉書를 보내주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고마운 위안을 받았었습니다. 부끄럽고 낯설고 두려워서 웅크리고 있던 나에게 그 작은 엽서 한 장은 참으로 놀라운 힘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연극의 초대받았을 때, 그 때야 말로 나는 깊은 충격과 감동에 출렁였으며, 그 감동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뜻밖의 사고로 다쳤을 때 보내준 편지와 冊, 그리고 문병, 그때 나는 몹시 많이 다쳐서 미웠을 텐데 그런 것도 잊어버리고 다만 반갑고 좋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記憶. 내 어찌 모든 감사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오래 내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번에 보내준 신문과 안부 편지는 좀 더 새삼스럽게 고마운 것 같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南道여행, 그림, 이런 말들이 주는 多感한 鄕愁, 그리고 무엇보다도 詩의 소식, 이런 것들은 모두 명랑한 뉴스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무슨 사정인지 알 수 없으나, 실리지 않은 詩를 읽을 수 있었더라면 하는 점이었습니다. 언제 틈이 나거든 보내주시면 내가 아끼는 좋은 茶 마시며 읽겠지만...........&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KakaoTalk_20240217_214407413.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Ombep/btsFbvf2HA5/JerQIyBz1IiwbofT39oil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Ombep/btsFbvf2HA5/JerQIyBz1IiwbofT39oil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Ombep/btsFbvf2HA5/JerQIyBz1IiwbofT39oil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Ombep%2FbtsFbvf2HA5%2FJerQIyBz1IiwbofT39oil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3&quot; data-filename=&quot;edited_KakaoTalk_20240217_214407413.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卒業작품 때문에 많이 분주하시지요? 나도 격려해 주시는 그 마음에 힘을 입어 좋은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교통사고를 핑계삼아 엄살도 부리고 미루어도 왔지만, 이제 이만큼 나았으니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 어디에 있든지, 서로, 서로의 精進을 眞心으로 빌기로 합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고마운 사람. 안녕히 계십시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80년10월14일 최명희&lt;/p&gt;</description>
      <category>책 서평 독서</category>
      <category>김병종</category>
      <category>대하소설 혼불</category>
      <category>엽서</category>
      <category>전북 남원</category>
      <category>최명희</category>
      <category>혼불</category>
      <category>혼불문학관</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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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2 Feb 2024 21:45:54 +0900</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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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稷下學派 宗祖 荀子가 공부하기를 권하는 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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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순자.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3J8GW/btsD3eF5jmm/dZ54VEYcOtvoZ5xpBOmxJ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3J8GW/btsD3eF5jmm/dZ54VEYcOtvoZ5xpBOmxJ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3J8GW/btsD3eF5jmm/dZ54VEYcOtvoZ5xpBOmxJ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3J8GW%2FbtsD3eF5jmm%2FdZ54VEYcOtvoZ5xpBOmxJ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3&quot; data-filename=&quot;edited_순자.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8&quot;&gt;순자 제1권 권학편(勸學篇)&lt;br /&gt;&lt;br /&gt;勸學(권학)&lt;br /&gt;&lt;br /&gt;1.&lt;br /&gt;君子曰(군자왈) 學不可以已(학불가이이).&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군자가 말하길, 학문은 이만하면 됐다...할 수는 없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중단할 수 없다.)&lt;/span&gt;&lt;br /&gt;&lt;br /&gt;靑取之於藍(청취지어남), 而靑於藍(이청어남),&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푸른 색은 쪽빛에서 취하는데, 쪽빛보다 더 푸르고,&lt;/span&gt; &lt;br /&gt;&lt;br /&gt;冰水爲之(빙수위지), 而寒於水(이한어수).&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얼음은 물이 얼은 것이나 물보다 더 차다.&lt;/span&gt;&lt;br /&gt;&lt;br /&gt;木直中繩(목직중승), 輮以爲輪(유이위륜),&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나무가 곧아 먹줄과 일직선이 되고,구부려서 수레바퀴를 만든다.&lt;/span&gt;&lt;br /&gt;&lt;br /&gt;其曲中規(기곡중규), 雖有槁暴(수유고폭),&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중심을 잡아 그것을 구부린 것을 뙤약볕에 말려도, &lt;/span&gt;&lt;br /&gt;&lt;br /&gt;不復挺者(부복정자), 輮使之然也(유사지연야)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다시 펴지지 않는 것은 굽혀졌기 때문이다.&lt;/span&gt;&lt;br /&gt;&lt;br /&gt;故木受繩則直(고목수승즉직),&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따라서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곧아지며,&lt;/span&gt;&lt;br /&gt;&lt;br /&gt;金就礪則利(금취려즉리),&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로워 지며, &lt;/span&gt;&lt;br /&gt;&lt;br /&gt;君子博學而日參省乎己(군자박학이일삼생호기),&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군자는 널리 배우고 날마다 세 번씩 생각하면,&lt;/span&gt;&lt;br /&gt;&lt;br /&gt;則智明而行無過矣(즉지명이항무과의)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지식은 넗어지고, 행동하는데 허물이 없게 된다.&lt;/span&gt;&lt;br /&gt;&lt;br /&gt;2.&lt;br /&gt;故不登高山(고부등고산), 不知天之高也(부지천지고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하늘의 높음을 알지 못하며, &lt;/span&gt;&lt;br /&gt;&lt;br /&gt;不臨深谿(불림심계) 不知地之厚也(부지지지후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깊은 계곡에 가보지 않으면, 땅의 깊은지 알지 못하며, &lt;/span&gt;&lt;br /&gt;&lt;br /&gt;不聞先王之遺言(불문선왕지유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선왕이 남긴 유언을 듣지 못하면,&lt;/span&gt; &lt;br /&gt;&lt;br /&gt;不知學問之大也(부지학문지대야)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학문의 위대함을 알지 못한다. &lt;/span&gt;&lt;br /&gt;&lt;br /&gt;干, 越, 夷, 貉之子(간, 월, 이, 맥지자),&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간(干)이나 월(越)이나 이(夷)나 맥(貉)의 아이들도, &lt;/span&gt;&lt;br /&gt;&lt;br /&gt;生而同聲(생이동성), 長而異俗(장이리속),&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태어나자마자 울음소리가 동일한데, 성장하면서 그 풍속이 달라지는 것은&lt;/span&gt;&lt;br /&gt;&lt;br /&gt;敎使之然也(교사지연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교육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lt;/span&gt; &lt;br /&gt;&lt;br /&gt;詩曰(시왈),&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시경(詩經)에서 말하길.&lt;/span&gt; &lt;br /&gt;&lt;br /&gt;嗟爾君子(차이군자), 無恆安息(무긍안식).&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군자들이여, 항상 편히 놀려고 하지 말라. &lt;/span&gt;&lt;br /&gt;&lt;br /&gt;靖共爾位(정공이위), 好是正直(호시정직)&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대의 자리 삼가 받들어, 항상 정직(바르고 곧음)하면, &lt;/span&gt;&lt;br /&gt;&lt;br /&gt;神之聽之(신지청지), 介爾景福(개이경복)&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신령께서도 이를 알아보고, 그대에게 큰복을 주시리라.&lt;/span&gt;&lt;br /&gt;&lt;br /&gt;5&lt;br /&gt;神莫大於化道(신막대어화도),&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신명이라는 것은 도(道)에 따라 변화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며, &lt;/span&gt;&lt;br /&gt;&lt;br /&gt;福莫長於無禍(복막장어무화),&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화를 입지 않는 것보다 큰 복은 없는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3.&lt;br /&gt;吾嘗終日而思矣(오상종일이사의),&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나는 일찍이 혼자 하루종일 곰곰히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lt;/span&gt; &lt;br /&gt;&lt;br /&gt;不如須臾之所學也(불여수유지소학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잠깐 동안 선생에게서 배우는 것만 못했으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r /&gt;吾嘗跂而望矣(오상기이망의),&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나는 일찍이 발돋움하여 먼곳을 바라 보아도, &lt;/span&gt;&lt;br /&gt;&lt;br /&gt;不如登高之博見也(불여등고지박견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높은곳에 올라가 널리 보는 것만 못했다. &lt;/span&gt;&lt;br /&gt;&lt;br /&gt;登高而招(등고이초),&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높은 곳에 올라서 손짓하면,&lt;/span&gt;&lt;br /&gt;&lt;br /&gt;臂非加長也(비비가장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팔이 길어진 것도 아닌데도, &lt;/span&gt;&lt;br /&gt;&lt;br /&gt;而見者遠(이견자원),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멀리 있는 사람이 볼 수 있고,&lt;/span&gt; &lt;br /&gt;&lt;br /&gt;順風而呼(순풍이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부르면, &lt;/span&gt;&lt;br /&gt;&lt;br /&gt;聲非加疾也(성비가질야),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소리가 커지는 것 아닌데,&lt;/span&gt;&lt;br /&gt;&lt;br /&gt;而聞者彰(이문자창)&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잘 들을 수가 있었다.&lt;/span&gt; &lt;br /&gt;&lt;br /&gt;假輿馬者(가여마자), 非利足也(비리족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수레나 말을 사용하면, 발을 쓰지 않는데도, &lt;/span&gt;&lt;br /&gt;&lt;br /&gt;而致千里(이치천리),&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천리를 갈 수 있고,&lt;/span&gt; &lt;br /&gt;&lt;br /&gt;假舟楫者(가주즙자), 非能水也(비능수야)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배나 노를 사용하면, 물에 능숙한 것이 아닌데도,&lt;/span&gt;&lt;br /&gt;&lt;br /&gt;而絶江河(이절강하)&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장강과 황하를 건널 수가 있다.&lt;/span&gt; &lt;br /&gt;&lt;br /&gt;君子生非異也(군자생비리야)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군자는 태어날 때 특별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며,&lt;/span&gt;&lt;br /&gt;&lt;br /&gt;善假於物也(선가어물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사물을 잘 다루고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배웠기 때문에 군자가 된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4.&lt;br /&gt;南方有鳥焉(남방유조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남쪽에 새가 있는데,&lt;/span&gt; &lt;br /&gt;&lt;br /&gt;名曰蒙鳩(명왈몽구),&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이름은 몽구라고 하며,&lt;/span&gt;&lt;br /&gt;&lt;br /&gt;以羽爲巢(이우위소) 而編之以髮(이편지이발) 繫之葦苕(계지위초),&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깃털을 이용하여 둥지를 만들고 머리의 깃털로 뽑아 얽어서 갈대 줄기에 매달며,&lt;/span&gt;&lt;br /&gt;&lt;br /&gt;風至苕折(풍지초절) 卵破子死(난파자사)&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바람이 불어 갈대 줄기가 꺾이면, 알은 깨지고 새끼는 죽게 되는데. &lt;/span&gt;&lt;br /&gt;&lt;br /&gt;巢非不完也(소비불완야)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이는 둥지가 완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lt;/span&gt;&lt;br /&gt;&lt;br /&gt;所繫者然也(소계자연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지은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lt;/span&gt;&lt;br /&gt;&lt;br /&gt;西方有木焉(서방유목언), 名曰射干(명왈사간),&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서쪽에 나무가 있는데, 이름은 사간(射干)이라고 하며&lt;/span&gt;&lt;br /&gt;&lt;br /&gt;莖長四寸(경장사촌),&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줄기가 4촌(寸)인데, &lt;/span&gt;&lt;br /&gt;&lt;br /&gt;生於高山之上(생어고산지상), 而臨百仞之淵(이림백인지연)&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높은 산 위에 자라기 때문에, 깊은 못을 굽어보고 내려다 볼수 있는데,&lt;/span&gt;&lt;br /&gt;&lt;br /&gt;木莖非能長也(목경비능장야), 所立者然也(소립자연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이는 나무의 줄기가 길어서가 아니라, 서 있는 위치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lt;/span&gt; &lt;br /&gt;&lt;br /&gt;蓬生麻中(봉생마중) 不扶而直(불부이직)&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쑥은 삼밭 속에서 자라면, 붙잡아 주지 않아도 곧아 지며,&lt;/span&gt; &lt;br /&gt;&lt;br /&gt;白沙在涅(백사재열) 與之俱黑(여지구흑)&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흰 백사장에 뻘에 빠지면, 함께 검어진다.&lt;/span&gt;&lt;br /&gt;&lt;br /&gt;蘭槐之根是爲芷(난괴지근시위지), 其漸之滫(기점지수)&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난초 뿌리(蘭槐 난괴)는 향료인데, 그것을 오줌에 담그면, &lt;/span&gt;&lt;br /&gt;&lt;br /&gt;君子不近(군자불근) 庶人不服(서인불복)&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군자도 가까이하지 않고, 서인(庶人)도 들고 다니지 않는다.&lt;/span&gt;&lt;br /&gt;&lt;br /&gt;其質非不美也(기질비불미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이는 본 바탕이 향기롭지 않아서 아니라,&lt;/span&gt;&lt;br /&gt;&lt;br /&gt;所漸者然也(소점자연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것을 적신 오줌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lt;/span&gt; &lt;br /&gt;&lt;br /&gt;故君子 居必擇鄕(고군자 거필택향),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러므로 군자는 사는 데 반드시 좋은 곳을 선택해야 하며,&lt;/span&gt;&lt;br /&gt;&lt;br /&gt;遊必就士(유필취사)&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놀때도 반드시 어진 선비를 가까이 해야하며, &lt;/span&gt;&lt;br /&gt;&lt;br /&gt;所以防邪僻而近中正也(소이방사벽이근중정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래야 사악한 것을 멀리하며, 중정(中正, 가운데 바릇 것)에 가까이 할수 있다.&lt;/span&gt;&lt;br /&gt;&lt;br /&gt;5.&lt;br /&gt;物類之起(물류지기), 必有所始(필유소시),&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만물의 기원에는, 반드시 시작이 있듯이,&lt;/span&gt;&lt;br /&gt;&lt;br /&gt;榮辱之來(영욕지내), 必象其德(필상기덕).&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영화나 치욕에도 , 반드시 그 덕에서 상응하여 온다. &lt;/span&gt;&lt;br /&gt;&lt;br /&gt;肉腐生蟲(육부생충), 魚恬生蠹(어념생두),&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고기가 썩으면 벌레가 생기고, 생선이 마르면 좀벌레가 생긴듯이. &lt;/span&gt;&lt;br /&gt;&lt;br /&gt;怠慢忘身(태만망신), 禍災乃作(화재내작).&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태만해서 사람의 도리를 망각하면, 재앙이 일어나게 된다.&lt;/span&gt; &lt;br /&gt;&lt;br /&gt;强自取柱(강자취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굳세면 잘려서 기둥으로 선택되게 되고,&lt;/span&gt;&lt;br /&gt;&lt;br /&gt;柔自取束(유자취속),&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유약하면 베어져서 다발로 묶이게 된다.&lt;/span&gt; &lt;br /&gt;&lt;br /&gt;邪穢在身(사예재신), 怨之所構(원지소구),&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간사하며 더러운 것이 자신에게 있으면, 원망이 따르며,&lt;/span&gt;&lt;br /&gt;&lt;br /&gt;施薪若一(시신야일), 火就燥也(화취조야),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땔나무가 한결같아 보여도, 불은 건조한 쪽부터 붙게 되며,&lt;/span&gt; &lt;br /&gt;&lt;br /&gt;平地若一(평지야일), 水就溼也(수취습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평평한 땅이 한결같아 보여도, 물은 습한 곳으로 흘러간다.&lt;/span&gt; &lt;br /&gt;&lt;br /&gt;草木疇生(초목주생), 禽獸群焉(금수군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풀과 나무는 무리를 지어 자라며, 새와 짐승은 떼를 지으며, &lt;/span&gt;&lt;br /&gt;&lt;br /&gt;物各從其類也(물각종기류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만물은 각 종류를 따라 모인다. &lt;/span&gt;&lt;br /&gt;&lt;br /&gt;是故質的張而弓矢至焉(시고질적장이궁시지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렇기 때문에 과녁이 있으면 활과 화살이 이르고, &lt;/span&gt;&lt;br /&gt;&lt;br /&gt;林木茂而斧斤至焉(림목무이부근지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숲에 나무가 무성하면 도끼가 이르고,&lt;/span&gt; &lt;br /&gt;&lt;br /&gt;樹成蔭而衆鳥息焉(수성음이중조식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나무가 자라서 그늘을 이루면 모든 새들이 휴식을 취하고, &lt;/span&gt;&lt;br /&gt;&lt;br /&gt;醯酸而蜹聚焉(혜산이예취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식초가 시어지면 날파리들이 모여 든다. &lt;/span&gt;&lt;br /&gt;&lt;br /&gt;故言有召禍也(고언유소화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러므로 잘못한 말은 재앙을 불러 들이고,&lt;/span&gt; &lt;br /&gt;&lt;br /&gt;行有招辱也(항유초욕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잘못한 행동은 곤욕을 불러 들이니,&lt;/span&gt; &lt;br /&gt;&lt;br /&gt;君子愼其所立乎(군자신기소립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군자는 그 서 있는 곳에서 말과 행동을 삼가 해야 한다.&lt;/span&gt; &lt;br /&gt;&lt;br /&gt;6.&lt;br /&gt;積土成山(적토성산),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흙이 쌓여 산을 이루면,&lt;/span&gt; &lt;br /&gt;&lt;br /&gt;風雨興焉(풍우흥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바람과 비가 일어난다.&lt;/span&gt; &lt;br /&gt;&lt;br /&gt;積水成淵(적수성연),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물이 모여 연못을 이루면, &lt;/span&gt;&lt;br /&gt;&lt;br /&gt;蛟龍生焉(교룡생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교룡이 살게 되며,&lt;/span&gt;&lt;br /&gt;&lt;br /&gt;積善成德(적선성덕)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선을 쌓으면 덕이 이루면,&amp;nbsp;&amp;nbsp;&lt;/span&gt;&lt;br /&gt;&lt;br /&gt;而神明自得(이신명자득) 聖心備焉(성심비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신명(神明)을 스스로 체득하게 되어, 성스런 마음이 갖추어 지게 된다.&lt;/span&gt; &lt;br /&gt;&lt;br /&gt;故不積蹞步(고부적규보),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러므로 반걸음이라도 쌓이지 않으면,&lt;/span&gt;&lt;br /&gt;&lt;br /&gt;無以至千里(무이지천리),&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천리 길에 이를 수가 없으며,&lt;/span&gt; &lt;br /&gt;&lt;br /&gt;不積小流(부적소류),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작은 물의 흐름이 쌓이지 않으면,&lt;/span&gt; &lt;br /&gt;&lt;br /&gt;無以成江海(무이성강해),&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강과 바다가 이루어 지지 않는다.&amp;nbsp;&amp;nbsp;&lt;/span&gt;&lt;br /&gt;&lt;br /&gt;騏驥一躍(기기일약),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천리마도 한 번 뛰어서는, &lt;/span&gt;&lt;br /&gt;&lt;br /&gt;不能十步(불능십보)&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천리을 달리지 못하고,&lt;/span&gt; &lt;br /&gt;&lt;br /&gt;駑馬十駕(노마십가),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둔한 말이라도 열흘을 달리면,&lt;/span&gt;&lt;br /&gt;&lt;br /&gt;功在不舍(공재불사).&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능히 따를 수 있으며,&lt;/span&gt;&lt;br /&gt;&lt;br /&gt;鍥而舍之(계이사지)&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조각을 하다가 중지하면,&lt;/span&gt;&lt;br /&gt;&lt;br /&gt;朽木不折(후목부절)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썩은 나무도 깎을 수가 없고, &lt;/span&gt;&lt;br /&gt;&lt;br /&gt;鍥而不舍(계이불사)&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새기는 일을 중지하지 않으면,&lt;/span&gt; &lt;br /&gt;&lt;br /&gt;金石可鏤(금석가루)&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쇠와 돌에도 새길 수가 있다.&lt;/span&gt; &lt;br /&gt;&lt;br /&gt;蚯螾無爪牙之利(구인무조아지리), 筋骨之强(근골지강),&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지렁이는 손톱이나 어금니의 예리함이나, 근골의 억셈이 없어도,&lt;/span&gt; &lt;br /&gt;&lt;br /&gt;上食埃土(상식애토), 下飮黃泉(하음황천),&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위로는 티끌 같은 흙을 먹고, 아래로는 땅속의 물을 마시는데, &lt;/span&gt;&lt;br /&gt;&lt;br /&gt;用心一也(용심일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마음을 쓰는 것이 한결 같기 때문이다.&lt;/span&gt; &lt;br /&gt;&lt;br /&gt;蟹八跪而二螯(해팔궤이이오)&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게는 8개의 발과 2개의 집게발을 가지고 있지만,&lt;/span&gt; &lt;br /&gt;&lt;br /&gt;非蛇蟺之穴(비사선지혈)&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뱀이 서렸던 구멍이 없으면,&lt;/span&gt;&lt;br /&gt;&lt;br /&gt;無可寄託者(무가기탁자)&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몸을 의탁할 곳이 없는데, &lt;/span&gt;&lt;br /&gt;&lt;br /&gt;用心躁也(용심조야)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마음을 쓰는 것이 조급하기 때문이다.&lt;/span&gt; &lt;br /&gt;&lt;br /&gt;是故無冥冥之志者(시고무명명지지자),&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러므로 조용하고 정성스러운 뜻이 없는 자는,&lt;/span&gt; &lt;br /&gt;&lt;br /&gt;無昭昭之明(무소소지명),&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빛나고 밝은 것이 없으며, &lt;/span&gt;&lt;br /&gt;&lt;br /&gt;無惛惛之事者(무혼혼지사자),&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온갖 정성을 들이는 일이 없는 자는&lt;/span&gt;&lt;br /&gt;&lt;br /&gt;無赫赫之功(무혁혁지공)&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혁혁(赫赫)한 공로가 없으며,&lt;/span&gt;&lt;br /&gt;&lt;br /&gt;行衢道者不至(항구도자부지)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두 갈래 길을 함께 가는 자는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며&lt;/span&gt;,&lt;br /&gt;&lt;br /&gt;事兩君者不容(사량군자불용)&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두 임금을 섬기는 자는 용납되지 못하며,&lt;/span&gt;&lt;br /&gt;&lt;br /&gt;目不能兩視而明(목불능량시이명)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눈은 양쪽 눈이 따로 보면서 밝을 수가 없으며,&lt;/span&gt; &lt;br /&gt;&lt;br /&gt;耳不能兩聽而聰(이불능량청이총)&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귀는 양쪽 귀가 따로따로 들으면서 총명할 수가 없다.&lt;/span&gt;&lt;br /&gt;&lt;br /&gt;螣蛇無足而飛(등사무족이비)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등사(螣蛇)는 발이 없어도 날아 다니고,&lt;/span&gt;&lt;br /&gt;&lt;br /&gt;梧鼠五技而窮(오서오기이궁)&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오서(梧鼠)는 다섯 가지 재주를 가지고 있어도 곤궁하게 지낸다.&lt;/span&gt;&lt;br /&gt;&lt;br /&gt;詩曰(시왈),&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시경(詩經)이르기를,&lt;/span&gt; &lt;br /&gt;&lt;br /&gt;尸鳩在桑(시구재상), 其子七兮(기자칠혜),&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뻐꾸기가 뽕나무에 앉았는데, 그의 새끼는 일곱 마리네. &lt;/span&gt;&lt;br /&gt;&lt;br /&gt;淑人君子(숙인군자), 其儀一兮(기의일혜),&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어지신 군자(君子)여, 그 거둥이 한결같네. &lt;/span&gt;&lt;br /&gt;&lt;br /&gt;其儀一兮(기의일혜), 心如結兮(심여결혜),&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 거둥이 한결같으시니, 마음은 변함이 없네.&lt;/span&gt;&lt;br /&gt;&lt;br /&gt;故君子結於一也(고군자결어일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러므로 군자는 한결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7.&lt;br /&gt;昔者(석자)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옛날&lt;/span&gt;&lt;br /&gt;&lt;br /&gt;瓠巴鼓瑟而流魚出聽(호파고슬이류어출청)&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호파(瓠巴)가 큰 거문고를 타면 흐르는 물속의 물고기가 나와서 듣고, &lt;/span&gt;&lt;br /&gt;&lt;br /&gt;伯牙鼓琴而六馬仰秣(백아고금이륙마앙말)&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백아(伯牙)가 거문고를 타면 수레를 끄는 여섯 마리의 말이 우러러 보았다.&lt;/span&gt; &lt;br /&gt;&lt;br /&gt;故聲無小而不聞(고성무소이불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러므로 소리는 아무리 적더라도 들리지 않는 것이 없으며,&lt;/span&gt; &lt;br /&gt;&lt;br /&gt;行無隱而不形(항무은이불형)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행실은 아무리 숨겨도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으며,&lt;/span&gt;&lt;br /&gt;&lt;br /&gt;玉在山而草木潤(옥재산이초목윤)&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옥(玉)이 산에 있으면 풀과 나무가 윤택하고, &lt;/span&gt;&lt;br /&gt;&lt;br /&gt;淵生珠而崖不枯(연생주이애불고)&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연못에서 진주가 나오면 언덕은 마르지 않으니,&lt;/span&gt; &lt;br /&gt;&lt;br /&gt;爲善不積邪(위선부적사)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좋은 일을 하고 사사로운것을 멀리하면,&lt;/span&gt;&lt;br /&gt;&lt;br /&gt;安有不聞者乎(안유불문자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어찌 좋은 소문이 나지 않겠는가?&lt;/span&gt;&lt;br /&gt;&lt;br /&gt;8.&lt;br /&gt;學惡乎始(학오호시), 惡乎終(오호종),&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학문이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게 되는가?&lt;/span&gt; &lt;br /&gt;&lt;br /&gt;曰(왈),其數則始乎誦經20(기삭즉시호송경)&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 방법을 말하자면 서경(書經)을 암송하는 데에서 시작하여, &lt;/span&gt;&lt;br /&gt;&lt;br /&gt;終乎讀禮(종호속례)&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예서(禮書)를 읽는 데에서 끝나며,&lt;/span&gt;&lt;br /&gt;&lt;br /&gt;其義則始乎爲士(기의즉시호위사), 終乎爲聖人(종호위성인)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 의의는 선비가 되는 것에서 시작하여, 성인(聖人)이 되는 데에서 끝나게 된다.&lt;/span&gt;&lt;br /&gt;&lt;br /&gt;眞積力久則入(진적력구즉입)&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자신의 힘을 다하여 오랫동안 노력하면 성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으니,&lt;/span&gt;&lt;br /&gt;&lt;br /&gt;學至乎沒而後止也(학지호몰이후지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학문이란 죽은 뒤에야 끝나게 되는 것이다.&lt;/span&gt; &lt;br /&gt;&lt;br /&gt;故學數有終(고학삭유종),&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러므로 배우는 방법은 끝마침이 있으나,&lt;/span&gt; &lt;br /&gt;&lt;br /&gt;若其義則不可須臾舍也(야기의즉불가수유사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 의의를 살피는 일은 잠시라도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爲之人也(위지인야), 舍之禽獸也(사지금수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학문을 하면 사람이 되고, 학문을 놓으면 새나 짐승같다.&lt;/span&gt; &lt;br /&gt;&lt;br /&gt;故書者(고서자) 政事之紀也(정사지기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러므로 서경은 정사(政事)를 기록한 것이요, &lt;/span&gt;&lt;br /&gt;&lt;br /&gt;詩者(시자) 中聲之所止也(중성지소지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시경는 정서의 표현이요,&lt;/span&gt;&lt;br /&gt;&lt;br /&gt;禮者(례자) 法之大分(법지대분), 群類之綱紀也(군류지강기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예서는 법의법의 대분이며, 모든일의 기강이다.&lt;/span&gt; &lt;br /&gt;&lt;br /&gt;故學至乎禮而止矣(고학지호례이지의),&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러므로 학문이란 예(禮)에 이르러서 그치는 것이니,&lt;/span&gt; &lt;br /&gt;&lt;br /&gt;夫是之謂道德之極(부시지위도덕지극),&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무릇 이를 일컬어 도덕지극이라고&lt;/span&gt;&lt;br /&gt;&lt;br /&gt;禮之敬文也(례지경문야), 樂之中和也(악지중화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예는 경문을 갖추는 일이고, 악(樂)은 중화를 이루는 일이고,&lt;/span&gt; &lt;br /&gt;&lt;br /&gt;詩書之博也(시서지박야), 春秋之微也(춘추지미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시(詩)와 서(書)는 광대해지고, 춘추(春秋)의 간결해지니&lt;/span&gt;&lt;br /&gt;&lt;br /&gt;在天地之閒者畢矣(재천지지한자필의)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이것들이 천지의 사이에 있으면 모두 끝마친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9.&lt;br /&gt;君子之學也(군자지학야), 入乎耳(입호이), 箸乎心(저호심),&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어 와서, 마음에 나타나, &lt;/span&gt;&lt;br /&gt;&lt;br /&gt;布乎四體(포호사체) 形乎動靜(형호동정)&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사지로 퍼져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데,&lt;/span&gt; &lt;br /&gt;&lt;br /&gt;端而言(단이언), 蝡而動(윤이동)&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점잖게 말하고, 침착하게 행동하니, &lt;/span&gt;&lt;br /&gt;&lt;br /&gt;一可以爲法則(일가이위법칙).&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것은 하나의 법도가 되는 것이다.&lt;/span&gt; &lt;br /&gt;&lt;br /&gt;小人之學也(소인지학야), 入乎耳(입호이), 出乎口(출호구),&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서, 입으로 나가는데,&lt;/span&gt;&lt;br /&gt;&lt;br /&gt;口耳之閒則四寸(구이지한즉사촌),&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입과 귀의 사이는 네 치인데,&lt;/span&gt; &lt;br /&gt;&lt;br /&gt;曷足以美七尺之軀哉(갈족이미칠척지구재).&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어떻게 일곱 자나 되는 몸체를 아름답게 할 것인가?&lt;/span&gt;&lt;br /&gt;&lt;br /&gt;古之學者爲己(고지학자위기), 今之學者爲人(금지학자위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옛날의 학자들은 자신을 위해 배웠는데, 지금의 학자들은 남을 위해 배운다.&lt;/span&gt; &lt;br /&gt;&lt;br /&gt;君子之學也(군자지학야), 以美其身(이미기신),&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군자는 학문은, 자신의 몸을 아름답게 하고,&lt;/span&gt; &lt;br /&gt;&lt;br /&gt;小人之學也(소인지학야), 以爲禽犢(이위금독).&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소인은 학문은, 지위을 얻기위함이다.&lt;/span&gt;&lt;br /&gt;&lt;br /&gt;故不問而告謂之傲(고불문이고위지오),&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묻지도 않는데 대답하는 것을 시끄러운 것이며,&lt;/span&gt; &lt;br /&gt;&lt;br /&gt;問一而告二謂之囋(문일이고이위지찬),&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한 번 물었는데 두 번 대답하는 것을 말 많은 것이며,&lt;/span&gt;&lt;br /&gt;&lt;br /&gt;傲非也(오비야),囋非也,(찬비야)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시끄러운 것도 잘못된 것이며, 말이 많은 것도 잘못된 것이니.&lt;/span&gt; &lt;br /&gt;&lt;br /&gt;君子如響矣(군자여향의).&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군자의 말은 메아리와 같다.&lt;/span&gt;&lt;br /&gt;&lt;br /&gt;10.&lt;br /&gt;學莫便乎近其人(학막변호근기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배우는 데는 어진 스승을 가까이하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으며,&lt;/span&gt;&lt;br /&gt;&lt;br /&gt;禮樂法而不說(예악법이불설),&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예와 악은 법도가 있어서 불탈하며 , &lt;/span&gt;&lt;br /&gt;&lt;br /&gt;詩書故而不切(시서고이부절),&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시(詩)나 서(書)는 옛이야기로 부체하며,&lt;/span&gt;&lt;br /&gt;&lt;br /&gt;春秋約而不速(춘추약이불속),&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춘추는 간략하고 미묘하니 불속하다.&lt;/span&gt; &lt;br /&gt;&lt;br /&gt;方其人之習(방기인지습), 君子之說(군자지설)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훌륭한 사람의 습관을 익히고, 군자의 말을 본 받으면,&lt;/span&gt;&lt;br /&gt;&lt;br /&gt;則尊以遍矣(즉존이편의), 周於世矣(주어세의).&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널리 존중이 되며, 세상 어디에나 통할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故曰(고왈),&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러므로&lt;/span&gt;&lt;br /&gt;&lt;br /&gt;學莫便乎近其人(학막변호근기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배우는 데는 어진 스승을 가까이하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다.&lt;/span&gt;&lt;br /&gt;&lt;br /&gt;學之經莫速乎好其人(학지경막속호호기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배움에는 스승을 가까이 하는것 보다 빠른 길이 없으며.&lt;/span&gt;&lt;br /&gt;&lt;br /&gt;隆禮次之(융례차지).&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예(禮)를 높이는 것은 그 다음이다.&lt;/span&gt; &lt;br /&gt;&lt;br /&gt;上不能好其人(상불능호기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위로는 어진 스승을 존경(좋아하다)하지 않고,&lt;/span&gt; &lt;br /&gt;&lt;br /&gt;下不能隆禮(하부능륭례),&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아래로는 예를 존중하지 않으면서,&lt;/span&gt;&lt;br /&gt;&lt;br /&gt;安特將學雜識志(안특장학잡식지)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어찌 잡다한 학문을 배우고,&lt;/span&gt;&lt;br /&gt;&lt;br /&gt;順詩書而已耳(순시서이이이),&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시(詩)나 서(書)의 글자만 외우다면.&lt;/span&gt;&lt;br /&gt;&lt;br /&gt;則沒世窮年(즉몰세궁년),&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세상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서도, &lt;/span&gt;&lt;br /&gt;&lt;br /&gt;不免爲陋儒而已(불면위누유이이).&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어찌 비루한 신세를 면할 수가 있겠는가?&lt;/span&gt; &lt;br /&gt;&lt;br /&gt;將原先王(장원선왕) 本仁義(본인의),&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앞서간 왕들을 모범을 삼아서, 인(仁)과 의(義)의 근본을 행하면,&lt;/span&gt; &lt;br /&gt;&lt;br /&gt;則禮正其經緯蹊徑也(즉례정기경위혜경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곧 예가 그 바탕(經緯)의 지름길(蹊徑)이 될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若挈裘領詘五指而頓之(야설구령굴오지이돈지),&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털옷의 옷깃을 잡고 다섯 손가락을 구부려 끌어 올리면, &lt;/span&gt;&lt;br /&gt;&lt;br /&gt;順者不可勝數也(순자불가승삭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모든 털이 다 따라 올라오는 이치와 같다.&lt;/span&gt; &lt;br /&gt;&lt;br /&gt;不道禮憲(부도례헌),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예와 법을 따르지 않고,&lt;/span&gt; &lt;br /&gt;&lt;br /&gt;以詩書爲之(이시서위지),&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시(詩)나 서(書)로만 행하려고 한다면,&lt;/span&gt; &lt;br /&gt;&lt;br /&gt;譬之猶以指測河也(비지유이지측하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비유하면 손가락으로 황하를 측량하고,&lt;/span&gt; &lt;br /&gt;&lt;br /&gt;以戈舂黍也(이과용서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창으로 수수을 방아찧고, &lt;/span&gt;&lt;br /&gt;&lt;br /&gt;以錐飡壺也(이추식호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송곳으로 밥을 먹으려는 것과 같아서, &lt;/span&gt;&lt;br /&gt;&lt;br /&gt;不可以得之矣(불가이득지의).&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도저히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lt;/span&gt; &lt;br /&gt;&lt;br /&gt;故隆禮(고륭례) 雖未明(수미명)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러므로 예를 높이면, 비록 밝게 통달하지 못할지라도,&lt;/span&gt; &lt;br /&gt;&lt;br /&gt;法士也(법사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법도가 있는 선비이고, &lt;/span&gt;&lt;br /&gt;&lt;br /&gt;不隆禮(불륭례) 雖察辯(수찰변)&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예를 높이지 않으면, 사리에 밝고 달변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lt;/span&gt; &lt;br /&gt;&lt;br /&gt;散儒也(산유야)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법도가 흐트러진 허튼 선비이다.&lt;/span&gt;&lt;br /&gt;&lt;br /&gt;11.&lt;br /&gt;問楛者勿告也(문고자물고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질문하는데 예의가 없는 자에게는 답하지 않으며,&lt;/span&gt; &lt;br /&gt;&lt;br /&gt;告楛者勿問也(고고자물문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퉁명스럽게 답하는 자에게는 질문하지 않으며,&lt;/span&gt; &lt;br /&gt;&lt;br /&gt;說楛者勿聽也(설고자물청야)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말이 거친 자에게는 답을 듣지 않으며,&lt;/span&gt; &lt;br /&gt;&lt;br /&gt;有爭氣者勿與辨也(유쟁기자물여변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다투려는 기색이 있는 자와는 더불어 논하지 않는다. &lt;/span&gt;&lt;br /&gt;&lt;br /&gt;故必由其道至(고필유기도지) 然後接之(연후접지)&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러므로 반드시 도를 지킬 경우 상대를 하며,&lt;/span&gt;&lt;br /&gt;&lt;br /&gt;非其道則避之(비기도즉피지)&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도를 지키지 않으면 피해야 한다.&lt;/span&gt;&lt;br /&gt;&lt;br /&gt;故禮恭而後可與言道之方(고례공이후가여언도지방),&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러므로 공손한 예를 갖춘 뒤에 도의 방향을 논하고,&lt;/span&gt; &lt;br /&gt;&lt;br /&gt;辭順而後可與言道之理(사순이후가여언도지리),&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말이 순리에 맞은 뒤에 도리의 이치를 논하며, &lt;/span&gt;&lt;br /&gt;&lt;br /&gt;色從而後可與言道之致(색종이후가여언도지치).&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얼굴 빛이 부드러운 뒤에 도의 극치를 논할 수 있다. &lt;/span&gt;&lt;br /&gt;&lt;br /&gt;故未可與言而言謂之傲(고미가여언이언위지오)&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러므로 말 할 상황이 아닌데 말을 하면 거만한 것이고,&lt;/span&gt;&lt;br /&gt;&lt;br /&gt;可與言而不言謂之隱(가여언이불언위지은)&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말을 할 수 있는데 말하지 않으면 뭔가 숨기는 것이고, &lt;/span&gt;&lt;br /&gt;&lt;br /&gt;不觀氣色而言謂之瞽(불관기색이언위지고)&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기색을 살피지 않고(눈치없이) 말하는 것을 어리석은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故君子(고군자) 不傲(불오) 不隱(불은) 不瞽(불고)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러므로 군자는, 거만하지 않고, 숨기지 않고, 어리석지 않고, &lt;/span&gt;&lt;br /&gt;&lt;br /&gt;謹愼其身(근신기신).&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자신을 삼가서 가지런히 해야한다.&lt;/span&gt;&lt;br /&gt;&lt;br /&gt;詩曰(시왈)&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시경에 이르기를,&lt;/span&gt; &lt;br /&gt;&lt;br /&gt;匪交匪舒(비교비서) 天子所予(천자소여)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quot;저 사귐에 소홀함이 없어, 천자께서 상을 주셨네&quot;,&lt;/span&gt;&lt;br /&gt;&lt;br /&gt;此之謂也(차지위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이러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lt;/span&gt; &lt;br /&gt;&lt;br /&gt;12.&lt;br /&gt;百發失一(백발실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백 발을 쏘아서 한 발을 실패하면,&lt;/span&gt; &lt;br /&gt;&lt;br /&gt;不足謂善射(부족위선사)&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명사수라고 하지 않고, &lt;/span&gt;&lt;br /&gt;&lt;br /&gt;千里蹞步不至(천리규보부지)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천리 길을 가는데 반보를 이르지 못하면,&lt;/span&gt;&lt;br /&gt;&lt;br /&gt;不足謂善御(부족위선어)&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수레를 잘 다룬다고 하지 못하니,&lt;/span&gt; &lt;br /&gt;&lt;br /&gt;倫類不通(윤류불통) 仁義不一(인의부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인륜의 모든 법도를 통달하지 못하며, 인(仁)과 의(義)이 한결가지 못하면,&lt;/span&gt; &lt;br /&gt;&lt;br /&gt;不足謂善學(부족위선학)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제대로 배웠다고 하지 않는다. &lt;/span&gt;&lt;br /&gt;&lt;br /&gt;學也者(학야자) 固學一之也(고학일지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학문이라는 것은, 굳게 하나라도 배우는 것이다.&lt;/span&gt; &lt;br /&gt;&lt;br /&gt;一出焉(일출언) 一入焉(일입언) 涂巷之人也(도항지인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한 번은 나가고 한 번은 들어 오는 것은, 길거리의 보통 사람들이다.&lt;/span&gt; &lt;br /&gt;&lt;br /&gt;其善者少(기선자소) 不善者多(불선자다),&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 착한 것은 적고, 나쁜 것이 많은 자는, &lt;/span&gt;&lt;br /&gt;&lt;br /&gt;桀紂盜跖也(걸주도척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걸(桀)이나 주(紂)나 도척(盜跖)과 같은 자들이다.&lt;/span&gt; &lt;br /&gt;&lt;br /&gt;全之盡之(전지진지) 然後學者也(연후학자야).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온전하게 배움을 다한 연후에야 학자(學者)라고 할수 있다.&lt;/span&gt;&lt;br /&gt;&lt;br /&gt;君子知夫不全不粹之不足以爲美也(군자지부부전불수지부족이위미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군자는 온전치 못하고 순수하지 않으면 족히 아름다운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lt;/span&gt;&lt;br /&gt;&lt;br /&gt;故誦數以貫之(고송삭이관지)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러므로 암송하고 익힘으로써 그 방법을 꿰뚫어&lt;/span&gt; &lt;br /&gt;&lt;br /&gt;思索以通之(사삭이통지)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생각하여 이에 통달하면,&lt;/span&gt; &lt;br /&gt;&lt;br /&gt;爲其人以處之(위기인이처지)&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군자처럼 처신하고,&lt;/span&gt;&lt;br /&gt;&lt;br /&gt;除其害者(제기해자),&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 해로운 것을 버리고 &lt;/span&gt;&lt;br /&gt;&lt;br /&gt;以持養之(이지양지)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좋은 것을 가려 길러, &lt;/span&gt;&lt;br /&gt;&lt;br /&gt;使目非是無欲見也(사목비시무욕견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눈은 옳은 것이 아니면 보려하지 않으며,&lt;/span&gt;&lt;br /&gt;&lt;br /&gt;使耳非是無欲聞也(사이비시무욕문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귀는 옳은 것이 아니면 들으려 하지 않으며, &lt;/span&gt;&lt;br /&gt;&lt;br /&gt;使口非是無欲言也(사구비시무욕언야)&amp;nbsp;&amp;nbsp;&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입은 옳은 것이 아니면 말하려 하지 않으며,&lt;/span&gt;&lt;br /&gt;&lt;br /&gt;使心非是無欲慮也(사심비시무욕려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마음은 옳은 것이 아니면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lt;/span&gt;&lt;br /&gt;&lt;br /&gt;及至其致好之也(급지기치호지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학문을 지극히 좋아하면, &lt;/span&gt;&lt;br /&gt;&lt;br /&gt;目妤之五色(목여지오색)&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눈은 오색을 좋아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게 되고, &lt;/span&gt;&lt;br /&gt;&lt;br /&gt;耳妤之五聲(이여지오성)&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귀는 오성를 듣는 것보다 더 좋아하게 되고, &lt;/span&gt;&lt;br /&gt;&lt;br /&gt;口好之五味(구호지오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입은 오미를 맛보는 것보다 더 좋아하게 되어,&lt;/span&gt; &lt;br /&gt;&lt;br /&gt;心利之有天下(심리지유천하)&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마음에서는 천하를 소유한 것보다 더 이롭게 여긴다. &lt;/span&gt;&lt;br /&gt;&lt;br /&gt;是故權利不能傾也(시고권리불능경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그러므로 권세와 이익이 넘어뜨릴 수 없으며,&lt;/span&gt; &lt;br /&gt;&lt;br /&gt;群衆不能移也(군중불능이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타인들의 압력이 마음을 바꿀 수 없으며,&lt;/span&gt;&lt;br /&gt;&lt;br /&gt;天下不能蕩也(천하불능탕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천하도 흔들 수 없다.&lt;/span&gt;&lt;br /&gt;&lt;br /&gt;生乎由是(생호유시) 死乎由是(사호유시)&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살더라도 이 배운 것을 따르고 죽더라도 배운 것을 따르니&lt;/span&gt;&lt;br /&gt;&lt;br /&gt;夫是之謂德操(부시지위덕조)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이것을 덕행(德行)의 지조(志操)라고 이르는 것이다.&lt;/span&gt; &lt;br /&gt;&lt;br /&gt;德操然後能定(덕조연후능정)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덕행의 지조 있은 뒤에는 자신의 마음이 안정되고,&lt;/span&gt;&lt;br /&gt;&lt;br /&gt;能定然後能應(능정연후능응)&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자신의 마음이 안정된 뒤에는 능히 적응하게 되며, &lt;/span&gt;&lt;br /&gt;&lt;br /&gt;能定能應(능정능응)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마음이 안정되고 적응이 되면,&lt;/span&gt;&lt;br /&gt;&lt;br /&gt;夫是之謂成人(부시지위성인)&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무릇 이것을 일러 성인(成人)이라고 할수 있다.&amp;nbsp;&amp;nbsp;&lt;/span&gt;&lt;br /&gt;&lt;br /&gt;天見其明(천견기명) &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하늘은 밝음을 보이고,&lt;/span&gt; &lt;br /&gt;&lt;br /&gt;地見其光(지견기광)&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땅은 광채를 드러내며,&lt;/span&gt; &lt;br /&gt;&lt;br /&gt;君子貴其全也(군자귀기전야)&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군자(君子)는 완전한 것을 귀하게 여긴다.&lt;/span&gt;&lt;br /&gt;&lt;br /&gt;&lt;/p&gt;</description>
      <category>역사 문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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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권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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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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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8 Jan 2024 12:38:2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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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옛날 귀족 관리들 급여와 토지 제도, 지방 호족의 경제적 토대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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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지방호족세력의 협조로 건국한 고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고려거란전쟁을 보면 피난을 가는 현종에게 지방호족이 무례하게 행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황제의 명령을 거역하고 심지어 반역까지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지방호족들이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호족 자신들의 경제적 토대를 지키기 위해 더 확장하기 위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방호족들을 이해하려면 당시의 토지제도와 국가 장악력을 파악해 보는 것이 좋겠다.&amp;nbsp;&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호족반란-고려거란제도.jpg&quot; data-origin-width=&quot;600&quot; data-origin-height=&quot;308&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MbWXx/btsDhMDRiNH/ym9PdDlvkAdgdb2AxKeVQ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MbWXx/btsDhMDRiNH/ym9PdDlvkAdgdb2AxKeVQK/img.jpg&quot; data-alt=&quot;KBS 사극 &amp;amp;lt;고려거란전쟁&amp;amp;gt; 한 장면&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MbWXx/btsDhMDRiNH/ym9PdDlvkAdgdb2AxKeVQ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MbWXx%2FbtsDhMDRiNH%2Fym9PdDlvkAdgdb2AxKeVQK%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308&quot; data-filename=&quot;호족반란-고려거란제도.jpg&quot; data-origin-width=&quot;600&quot; data-origin-height=&quot;308&quot;/&gt;&lt;/span&gt;&lt;figcaption&gt;KBS 사극 &amp;lt;고려거란전쟁&amp;gt; 한 장면&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gt;신라를 무너뜨리고 후삼국을 거쳐 고려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왕건은 결혼정책을 적극실행한다. 각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지방호족들의 협조를 적극적으로 얻기 위해서 인척관계를 맺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왕조를 창건한 이후에는 왕족 수를 늘이지 않기 위해 친족간 결혼이 성행한다. 그래서 고려 초기의 족보는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비윤리적이고 난해하다. 또하나, 건국시 협조했던 호족세력이 강하면 왕권이 취약해지므로 호족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비안검법', '과거제도' 등을 시행한다. 역사는 돌고돌며, 모순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lt;span&gt;2. 녹봉이나 식읍&lt;/span&gt;&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예나 지금이나 일을 하게되면 댓가(월급, 녹봉 등)를 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알면 많은 역사적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선 중국의 봉건제도를 보자. 황제가 왕조를 새로 창립하고 나서 어느지역을 뚝 떼서 공신이나 친인척을 그 곳 왕으로 봉하면서, 외교권과 군사권을 제외한 권리를 모두 부여하는 것이 봉건제도다. 이렇게 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처음에는 왕조 창업에 기여한 공신이나 친인척이 왕에 봉해지니까 끈끈한 인간관계와 분봉해준 은혜에 고마움을 깊이 간직하겠지만, 그 자리를 세습한 후손 왕들은 이러한 감정이 있을리 없고, 또 자신의 왕국이나 영역의 경제력 및 군사력이 황제의 중앙정부보다 커지게 되면 상황이 많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주나라 말엽에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던가?&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영광백수벌.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d1N1UE/btsDj1f9QfI/VcKcv8nBygMpcap45JQRF1/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d1N1UE/btsDj1f9QfI/VcKcv8nBygMpcap45JQRF1/img.png&quot; data-alt=&quot;농토, 삶의 기초 식량을 생산하는 곳&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1N1UE/btsDj1f9QfI/VcKcv8nBygMpcap45JQRF1/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d1N1UE%2FbtsDj1f9QfI%2FVcKcv8nBygMpcap45JQRF1%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3&quot; data-filename=&quot;edited_영광백수벌.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gt;&lt;figcaption&gt;농토, 삶의 기초 식량을 생산하는 곳&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우리나라는 땅이 좁아서 중국처럼 각 지방의 왕으로 봉하는 봉건제도가 운영된 적은 없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것이 식읍 또는 녹읍제도라고 할 수있다. 식읍제도는 고대 중세국가에서 주변소국의 피정복지역을 공로자에게 주고 대대로 세습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녹읍은 관리들에게 주는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자식들에게 세습할 수 없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그래서 식읍은 중세 유럽의 영주와 비슷하다. 해당 지역의 조세와 공납과 노역을 다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니 그 지역의 왕이나 다름없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귀족들, 관료들에게 댓가를 어떻게 지불하였는가는 토지 및 급여제도 변천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제도의 변화를 보면 중앙집권 왕권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우리나라 역사가 발전하였음을 알 수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용어를 이해하자&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circle;&quot; data-ke-list-type=&quot;circle&quot;&gt;
&lt;li&gt;&lt;b&gt;조세&lt;/b&gt; : 토지에 부과하는 것, 농사를 짓는 땅이면 그 땅에서 나오는 수확량의 일정량을 세금으로 납부&lt;/li&gt;
&lt;li&gt;&lt;b&gt;공납&lt;/b&gt; : 사람에게 부과하는 것, 사람마다 일정한 액수의 돈 또는 물건(곡식, 특산물 등)을 납부&lt;/li&gt;
&lt;li&gt;&lt;b&gt;역&lt;/b&gt;(노역) : 백성들을 동원해서 일을 시키는 것, 군인. 식읍안의 백성을 동원하여 군대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위험요인.&lt;/li&gt;
&lt;li&gt;&lt;b&gt;식읍&lt;/b&gt; : 귀족(왕족, 공신)들에게 주어진 수조권과 노동력(요역) 징발권, 세습가능. 지역 세력가에게 충성의 댓가로, 군에서 공을 세운 댓가로 지급&lt;/li&gt;
&lt;li&gt;&lt;b&gt;녹읍&lt;/b&gt; : 관료 귀족들에게 주어진 일종의 급여(월급 등), 수조권과 노동력 징발권, 세습불가&lt;/li&gt;
&lt;li&gt;&lt;b&gt;관료전&lt;/b&gt; : 귀족들에게 수조권만을 부여, 세습&lt;/li&gt;
&lt;li&gt;&lt;b&gt;노동력(요역) 징발권&lt;/b&gt; : 자신에게 주어진 땅을 경작하는 백성들을 농사일 말고도 기타 용도(노역, 군역 등)에 활용할 수있는 권리&lt;/li&gt;
&lt;li&gt;&lt;b&gt; 수조권&lt;/b&gt; : 세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lt;/li&gt;
&lt;li&gt;&lt;b&gt;왕토사상(王土思想)&lt;/b&gt; : 백성과 나라는 모두 왕의 소유('주인이 왕'이라는 뜻)라는 전제군주체제의 기본틀&lt;/li&gt;
&lt;li&gt;&lt;b&gt;전시과&lt;/b&gt; : 고려시대 토지관리 시스템중 하나. 군사적 목적. 전시관이 주관하여 토지를 조사하고 관리함. 관직을 수행하는 댓가로서 지급된 것이므로 수조권만 줌. 소유권은 국가가 갖음. 세습불허. 전지&lt;span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gt;&lt;span&gt;&amp;nbsp;&lt;/span&gt;(田, 농토) 와 시지&lt;/span&gt;(柴地, 땔감을 얻는 山地)를 지급하는 체계&lt;/li&gt;
&lt;li&gt;&lt;b&gt;역분전&lt;/b&gt; : 고려 건국과정, 후삼국 통일과정에서 공이 있는 신하나 군사들에게 지급한 토지. 세습가능&lt;/li&gt;
&lt;li&gt;&lt;b&gt;과전법&lt;/b&gt; : 수조권이 설정된 토지를 전직과 현직관료에게 지급. 원칙적으로 세습불가&lt;/li&gt;
&lt;li&gt;&lt;b&gt;직전법&lt;/b&gt; : 수조권이 석정된 토지를 현직관료에게만 지급(전직관료에게는 지급 않함)&lt;/li&gt;
&lt;li&gt;&lt;b&gt;공음전&lt;/b&gt; : 문벌귀족들의 특권, 5급이상 관리에게만 지급. 세습가능&lt;/li&gt;
&lt;/ul&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4. 제도의 변천&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circle;&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신라 신문왕 7년(서기 687), 9년(서기 689) : &lt;b&gt;녹읍을 폐지&lt;/b&gt;하고, 문무(文武) 관료들에게 토지를 차등을 두어&lt;span&gt;&amp;nbsp;&lt;/span&gt;&lt;b&gt;관료전을 지급&lt;/b&gt;. 왕권이 강화됨&lt;/li&gt;
&lt;li&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gt;&lt;span&gt;신라 성덕왕 21년(서기 722) :&lt;span&gt;&amp;nbsp;&lt;/span&gt;처음으로 백성들에게 정전(丁田)을 지급, 기존 농민 경작권을 인정하여 &lt;b&gt;정전지급&lt;/b&gt;. 농민지배력 강화 및 왕권 강화&lt;/span&gt;&lt;/span&gt;&lt;/li&gt;
&lt;li&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gt;&lt;span&gt;경덕왕 16년(시기 757) : 진골귀족의 반발에 대응.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리에게 매달 주던 녹봉(祿俸)을 없애고 다시 &lt;b&gt;녹읍을 부활&lt;/b&gt; 및 관료전 폐지, 왕권 약화&lt;/span&gt;&lt;/span&gt;&lt;/li&gt;
&lt;li&gt;고려 태조 : &lt;b&gt;역분전&lt;/b&gt;, 후삼국통일과 고려건국에 공이 있는 신하와 군사들에게 지급, 사람의 인품과 행실이 착하고 악하고 또는 공이 크고 작음을 고려하여 토지지급&lt;/li&gt;
&lt;li&gt;고려 경종 : &lt;b&gt;시정전시과&lt;/b&gt;, 인품과 18관품에 따라 문무 전직 및 현직관리에게 지급함. 처음 시행한 전시과&lt;/li&gt;
&lt;li&gt;고려 목종 : &lt;b&gt;개정전시과&lt;/b&gt;, 18관품에 따라 문무 전직 및 현직관리에게 지급. 인품요소는 배제, 전시과를 개정한 것&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lt;span style=&quot;color: #ee2323;&quot;&gt;&amp;lt;ㅡ 인품을 어떻게 평가?&lt;/span&gt;&lt;/li&gt;
&lt;li&gt;고려 문종 : &lt;b&gt;경정전시과&lt;/b&gt;, 18관품에 따라 문무 현직관리에게 지급. 전직관리는 제외, 개정전시과를 다시 고친(갱정) 것&amp;nbsp; &lt;span style=&quot;color: #ee2323; text-align: left;&quot;&gt;&amp;lt;ㅡ&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ee2323; text-align: left;&quot;&gt;&lt;span&gt; 땅이 부족함&lt;/span&gt;&lt;/span&gt;&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신라 신문왕이전에는 식읍 및 녹읍제도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다보니 지방호족세력이 강하고 축적된 경제력 및 군사력으로 중앙정부를 압박하는 일이 많았다. 삼국통일후 이러한 폐단을 바로 잡기위해서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한 것이다. 성덕왕때는 일반 백성들에게도 일정한 크기의 전답을 나눠줬는데 이것을 정전이하고 한다. 이와 같은 정책은 중앙정부의 힘이 강하고 왕권이 확립되어 있을 때 가능한 것인데, 신라 하반기로 갈 수록 왕권이 약화되어 결국 경덕왕때에 녹읍이 부활되고 말았다. 이 정책에 따라 지방호족들의 세력이 팽창하게 되고 결국은 그 지방호족세력들에 의해 신라가 무너지고 후삼국을 거쳐 고려가 건국되는 것이다. 고려태조 왕건도 황해도 송악지역의 호족세력출신이지 않는가?&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고려시대에 들어와서도 '관리들 급여를 어떻게 줄 것인가?'가 큰 숙제였고 모순점을 하나씩 개선할 때마다 제도가 바뀌었다. '역분전'에서 '시정전시과', '개정전시과', '갱정전시과'로 바뀌었다. 결국&amp;nbsp;문종때 현직관리에게만 지급하고 그 보직을 그만두면 국가에 반납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전직관료, 귀족들이 가만 있었을까? '보직 떨어지면 굶어 죽으란 말이냐?' 하면서 온갖 불법이 다 생겨나게 되었다. 고려 후반기의 몽고, 홍건적 침입 등 외침기시에 권문세족들의 가렴주구는 결국 고려멸망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고려 최후의 왕인 공양양때 과전법을 시행&lt;/b&gt;한다. 권문세족들이 불법으로 차지한 토지를 몰수하여 당시의 신진 사대부들에게 지급한 것인데, 이는 이성계 등 조선건국세력들에게 경제적 기반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경기도만을 대상으로 한 제한적 시행에 불과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조선&lt;/b&gt;건국이후 세조대 직전법을 실시하여 현직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주었고, &lt;b&gt;성종때&lt;/b&gt;가 되어서야 직전법을 폐지하고 녹봉제를 실시하였다. 비로소 우리역사에서 수조권을 &lt;b&gt;국가가 직접관리하고 급여는 국가가 직접 지급하는 체제가 확립&lt;/b&gt;된 것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역사 문화</category>
      <category>고려</category>
      <category>고려거란전쟁</category>
      <category>관료전</category>
      <category>귀족관리</category>
      <category>녹봉</category>
      <category>식읍</category>
      <category>역분전</category>
      <category>전시과</category>
      <category>토지제도</category>
      <category>호족세력</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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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1 Jan 2024 14:30:40 +0900</pubDate>
    </item>
    <item>
      <title>고창 문수사와 장성 축령산 우왕좌왕 여행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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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KakaoTalk_20231219_130149915.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1000&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diEdam/btsDdDzVjQq/vd42WJxdnLASPFqWNFtjk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diEdam/btsDdDzVjQq/vd42WJxdnLASPFqWNFtjk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iEdam/btsDdDzVjQq/vd42WJxdnLASPFqWNFtjk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diEdam%2FbtsDdDzVjQq%2Fvd42WJxdnLASPFqWNFtjk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1000&quot; data-filename=&quot;edited_KakaoTalk_20231219_130149915.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1000&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청량산이 왜이리 많나?&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가면 문수사라는 절이 있다. 선운사의 말사이다. 일주문에는 분명하게 청량산 문수사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네이버에서 청량산을 검색하면 경상북도 봉화에 있는 쳥량산이 나오고 전라북도 고창 청량산은 검색되지 않는다. 그 대신 축령산이라고 검색하면 잘 나온다. 문론 축령산도 경기도 남양주에 또 있다. 그 곳은 서울에서 가깝기도 하고 자연휴양림이 잘 갖춰져 있어서 더욱 유명하다. 그래서 고창의 청량산 또는 축령산 또는 문수산을 등산하려면 주소를 잘 살피고 클릭하여야 한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청량산은 등산하지 못했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 지난 주말 청량산 문수사 문수보살님을 알현하고 청량산을 등산할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고창 문수사까지는 잘 갔는데, 문수사를 통하여 청량산으로 올라가지는 못했다. 청량산은 단풍이 유명한데, 가을에 자연그대로 잘 보존된 단풍을 구경하기 위해서 산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낮은 울타리로 산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아 놓았다. 일주문을 출발하여 단풍나무 오솔길을 지나 문수사를 둘러보고 나서는 반드시 다시 일주문으로 나오도록 되어있었다. 통나무 두개를 위아래로 낮게 평행하게 오솔길 변두리에 설치된 울타리는 매우 낮아서 넘기는 매우 쉽지만, 문명인으로서 또 가을의 멋진 단풍을 보기 위해서는 그 울타리를 넘을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문수사라는 절도 우리나라에 매우 많은데 여기있는 문수사는 백제 의자왕 4년(서기 644년)에 신라의 자장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곳 고창은 백제땅이었을 텐데 신라의 스님이 이곳을 창건하였다고? 창건설화에 의하면 자장이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귀국길에 세운 절이라고 한다. 자장이 이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이 산 분위기가 당나라에서 공부하던 산인 청량산과 분위가가 너무 닮아서 이 곳 석굴에 머물며 7일간 기도를 하는 중에 문수보살이 땅속에서 나오는 꿈을 꾸고는 그 곳을 파보니 문수보살입상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을 세우고 문수사라 했다는 것인데 믿기 어려운 설화다. 그 시대는 백제와 신라가 맹렬하게 다투던 시기이고 결국 의자왕때 백제가 멸망(서기 660년)하였으니 신라스님이 백제땅에 절을 세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축령산삼나무편백숲에 가자&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일주문에는 왜 &amp;lsquo;청량산 문수사&amp;rsquo;라고 쓰여있을까? 문수보살의 상주처는 중국 산서성 청량산(일명 오대산)이기 때문에 이에 따라 청량산이라고 했을 것이다. 문수보살님은 반야의 도리를 선양한 분으로 박학다식의 화신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반야심경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경전아닌가? 반야심경을 집대성한 문수보살님, 지혜의 화신 문수보살님을 우리 한국인은 너무 좋아한 것이었다. 그래서 전국에 청량산도 많고 문수사, 문수산, 문수봉, 문수계곡, 문수터널, 문수경기장&amp;nbsp; 등 이 그리 많은 것이다. 아무튼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는 불국토이다. 결국, 문수사 일주문을 빠져나와 &amp;lsquo;축령산삼나무편백숲&amp;rsquo;을 통하여 축령산 자락에 올랐다. 축령산 표지석을 알현하려면 '국립장성치유의숲 추암주차장'을 통하여야 하니 이 산행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내가 다녀온 산이 청량산인지, 문수산인지, 축령산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겠다. 다만 산을 즐겼고 문수사 문수전의 문수보살님을 알현한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그 곳을 방문하려는 분들은 산행이 헷갈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래 지도를 참조하시기 바란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naver_map (1).pn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471&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xlq9y/btsC8XzcQIU/8nV0yzqZ8mLxXEPimkz5N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xlq9y/btsC8XzcQIU/8nV0yzqZ8mLxXEPimkz5N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xlq9y/btsC8XzcQIU/8nV0yzqZ8mLxXEPimkz5N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xlq9y%2FbtsC8XzcQIU%2F8nV0yzqZ8mLxXEPimkz5N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471&quot; data-filename=&quot;edited_naver_map (1).pn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471&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관련 동영상 : &lt;a href=&quot;https://youtu.be/yPcQl2eMVGA?si=1mYAzilKYW52V0KL&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youtu.be/yPcQl2eMVGA?si=1mYAzilKYW52V0KL&lt;/a&gt;&lt;/p&gt;</description>
      <category>전라도</category>
      <category>국립장성치유의숲</category>
      <category>문수보살</category>
      <category>문수사</category>
      <category>문수산</category>
      <category>살으리살으리랏다</category>
      <category>얄리얄리얄라셩</category>
      <category>청량산</category>
      <category>청산별곡</category>
      <category>축령산</category>
      <category>축령산삼나무편백숲</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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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0 Jan 2024 10:58:25 +0900</pubDate>
    </item>
    <item>
      <title>영광 내산서원과 강항선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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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내산서원 둘러보기&lt;/h2&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03_102314.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m0RZX/btsDdA4mtjt/KBeNOXGhVmOjIVxfWsdHK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m0RZX/btsDdA4mtjt/KBeNOXGhVmOjIVxfWsdHK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m0RZX/btsDdA4mtjt/KBeNOXGhVmOjIVxfWsdHK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m0RZX%2FbtsDdA4mtjt%2FKBeNOXGhVmOjIVxfWsdHK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3&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03_102314.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서원 안내판&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에 가면 내산서원이 있다. 삼국시대 백제에 불교를 전해준 인도승려 미라난타와 인연이 있는 사찰 불갑사가 지척인 곳이다. 나즈막한 산이 뒤, 좌우에서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03_102146.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vLenM/btsDdHbh7fI/zqskiIGM4PmeYqaVYKdhn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vLenM/btsDdHbh7fI/zqskiIGM4PmeYqaVYKdhnK/img.png&quot; data-alt=&quot;서원 입구 홍살문과 강항선생 동상&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vLenM/btsDdHbh7fI/zqskiIGM4PmeYqaVYKdhn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vLenM%2FbtsDdHbh7fI%2FzqskiIGM4PmeYqaVYKdhn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3&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03_102146.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gt;&lt;figcaption&gt;서원 입구 홍살문과 강항선생 동상&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서원은 남향을 하고 따뜻한 햇볕을 받고 있었다. 입구에는 정치인들의 기념식수가 여럿보였다. 강항선생을 추모하는 염을 가지고 했으리라.......&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20231203_104717.jpg&quot; data-origin-width=&quot;4000&quot; data-origin-height=&quot;2252&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ZMuA/btsDd36GaSE/jKld7KXu3bju4xYi5YV9t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ZMuA/btsDd36GaSE/jKld7KXu3bju4xYi5YV9tK/img.jpg&quot; data-alt=&quot;멀리서 내산서원이 보이기 시작한다&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ZMuA/btsDd36GaSE/jKld7KXu3bju4xYi5YV9t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ZMuA%2FbtsDd36GaSE%2FjKld7KXu3bju4xYi5YV9tK%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4000&quot; height=&quot;2252&quot; data-filename=&quot;20231203_104717.jpg&quot; data-origin-width=&quot;4000&quot; data-origin-height=&quot;2252&quot;/&gt;&lt;/span&gt;&lt;figcaption&gt;멀리서 내산서원이 보이기 시작한다&lt;/figcaption&gt;
&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03_104327.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8KMSh/btsDdHCoamI/QQKpGIEvl1YhOpkQtqw8Z1/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8KMSh/btsDdHCoamI/QQKpGIEvl1YhOpkQtqw8Z1/img.png&quot; data-alt=&quot;충의문, 강항선생의 충성과 의로움&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8KMSh/btsDdHCoamI/QQKpGIEvl1YhOpkQtqw8Z1/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8KMSh%2FbtsDdHCoamI%2FQQKpGIEvl1YhOpkQtqw8Z1%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3&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03_104327.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gt;&lt;figcaption&gt;충의문, 강항선생의 충성과 의로움&lt;/figcaption&gt;
&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03_103123.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ocprQ/btsDj1zisam/pOKBAkl0Wj75kAq36kSCE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ocprQ/btsDj1zisam/pOKBAkl0Wj75kAq36kSCEk/img.png&quot; data-alt=&quot;내산서원 본채&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ocprQ/btsDj1zisam/pOKBAkl0Wj75kAq36kSCE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ocprQ%2FbtsDj1zisam%2FpOKBAkl0Wj75kAq36kSCE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3&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03_103123.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gt;&lt;figcaption&gt;내산서원 본채&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산은 신령이 살아야하고 사찰에는 도력 높은 고승이 살아야 하고 서원에는 학식과 경륜이 풍부한 선비가 있어야 빛이 나는 법인데, 빈 서원에는 초겨울의 햇볕만 고요히 머물고 있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03_104723.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F50Z5/btsC9lmidKf/KxNGFBaxCaBGw5an32GKa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F50Z5/btsC9lmidKf/KxNGFBaxCaBGw5an32GKa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F50Z5/btsC9lmidKf/KxNGFBaxCaBGw5an32GKa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F50Z5%2FbtsC9lmidKf%2FKxNGFBaxCaBGw5an32GKa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3&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03_104723.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서원앞의 연못&lt;/p&gt;
&lt;h2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강항 선생&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수은 강항(睡隱 姜沆) 선생은 1567년에 출생하여 1618년까지 사신 조선중기의 문신이다. 임진왜란을 몸소 겪으신 분이고 특히 일본에 끌려가셔서 몸소 겪으신 전쟁의 상흔을 간양록으로 남기신 것으로 유명하신 분이다. 1597년에 왜군의 포로가 되어 영광 논장포(지금의 염산면)에서 일본으로 갔다하니 임진왜란때라기 보다는 정유재란때 왜군에게 잡히신 것이라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임진왜란때는 바다를 성웅 이순신께서 잘 지켜주신 덕분에 왜군이 전라도를 범하지는 못했었지만,&amp;nbsp; 정유재란 초장에 원균이 칠전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을 몰살시키는 패전을 한 이후 왜군은 전라남도를 유린하고 전라북도 남원 전주를 거쳐 충청도 직산까지 갔던 것이다. 강항선생은 남원이 함락된 이후에 고향 영광으로 돌아와 의병을 모집하여 싸우시다가, 전세가 불리하여 통제사로 재 임명된 통제사 이순신 휘하로 가려고 남행 중에 왜적의 포로가 되신 것이다. 애초에 이순신 장군께서 모함에 걸리지 않고 우리의 남쪽바다를 방어하고 계셨다면 간양록에 기록된 것 같은 참극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한 나라의 임금,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또 한 번 알겠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03_102214.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1776&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LmOsE/btsDhgc9QXc/XQqwqqKxiXbkIrfo7Knif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LmOsE/btsDhgc9QXc/XQqwqqKxiXbkIrfo7Knif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LmOsE/btsDhgc9QXc/XQqwqqKxiXbkIrfo7Knif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LmOsE%2FbtsDhgc9QXc%2FXQqwqqKxiXbkIrfo7Knif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1776&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03_102214.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1776&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왜군은 선생을 포로로 끌고 가며 어린 선생의 아들, 딸이 울고 보챈다고, 그 둘을 바다에 수장했다. 그것도 부모앞에서 했다고 하니 그 만행은 지금 생각해도 분노가 치밀어 오는 것을 참지 못할 지경이다. 선생은 일본에 있으면서 성리학을 전파하고 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일본의 근대화에 적잖은 공헌을 하였으니, 원수들에게 은혜ㅡ를 베픈 것이라 할 것이다. 그의 제자중 한명인 '후지와라 세이가'가 일본 주자학의 선구자가 되었고 그 이후에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03_105317.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1776&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IAv1i/btsDbd9y3VW/VvY6i3ZxX1UusN8n8Xz1n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IAv1i/btsDbd9y3VW/VvY6i3ZxX1UusN8n8Xz1n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IAv1i/btsDbd9y3VW/VvY6i3ZxX1UusN8n8Xz1n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IAv1i%2FbtsDbd9y3VW%2FVvY6i3ZxX1UusN8n8Xz1n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1776&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03_105317.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1776&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강항선생은 1600년에 가족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와, 관리로 임명되었으나 스스로 죄인이라 칭하고 일찍 사임하거나 취임하지 않았다. 서원을 걸어나오는 길에 보이는 홍단풍나무는 선생의 굳은 절개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일본 적중에서도 왜적의 정세와 인적사항, 일본국 지도 등을 밀서로 우리 조정에 보냈다고 한다. 오늘의 우리가 갚이 본받을 사례이다. 영광 불갑면 내산서원을 방문하기를 강추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ee2323;&quot;&gt;&lt;b&gt;* 관련 동영상 참고&lt;/b&gt; &lt;/span&gt;: &lt;a href=&quot;https://youtu.be/aSu1yWtasj4?si=4sLsp2yrOGB1MALf&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youtu.be/aSu1yWtasj4?si=4sLsp2yrOGB1MALf&lt;/a&gt;&lt;/p&gt;</description>
      <category>전라도</category>
      <category>간양록</category>
      <category>강항</category>
      <category>내산서원</category>
      <category>불갑면</category>
      <category>불갑사</category>
      <category>수은</category>
      <category>영광</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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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0 Jan 2024 10:46:43 +0900</pubDate>
    </item>
    <item>
      <title>백제금동대향로 특별전  국립 부여 박물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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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향로.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1660&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dqeYNm/btsCQ3yIP02/PCobg4IaVhrS8myIKFEka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dqeYNm/btsCQ3yIP02/PCobg4IaVhrS8myIKFEka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qeYNm/btsCQ3yIP02/PCobg4IaVhrS8myIKFEka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dqeYNm%2FbtsCQ3yIP02%2FPCobg4IaVhrS8myIKFEka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1660&quot; data-filename=&quot;edited_향로.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1660&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 기념 특별전&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주소 : &lt;a title=&quot;백제금동대향로&quot; href=&quot;https://buyeo.museum.go.kr/index.do&quot;&gt;국립부여박물관&lt;/a&gt;, 충남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lt;/li&gt;
&lt;li&gt;일시 :&amp;nbsp; &lt;b&gt;2&lt;span style=&quot;color: #006dd7;&quot;&gt;024년 갑진년 2월 24일까지&lt;/span&gt;&lt;/b&gt;&lt;/li&gt;
&lt;li&gt;관람시간 :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오후 5시까지만 입장가능&lt;/li&gt;
&lt;li&gt;입장료 : 무료&lt;/li&gt;
&lt;li&gt;휴관일 : 매주 월요일, 매년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lt;/li&gt;
&lt;li&gt;☞&lt;u&gt;&lt;b&gt;&lt;span style=&quot;color: #ee2323;&quot;&gt; 10년마다 하는 특별전이므로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10년을 기다려야 한다.&lt;/span&gt;&lt;/b&gt;&lt;/u&gt;&lt;/li&gt;
&lt;/ul&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백제금동대향로는?&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용도]&lt;/b&gt; 향로는 제사나 종교의식에서 향을 피워 나쁜 기운을 막는 용도로 쓰이는 기구이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부여 능산리 사찰터에서 발견되었으므로 사찰의 종교의식에 사용되었을 것이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발견]&lt;/b&gt; 1993년 12월 12일 절터 서쪽의 공방지 내 타원형 아궁이에서 출토되었는데, 내부에 기와조각이 켜켜히 쌓여 있었고 이를 겉어내자 나무판자 위에서 뚜껑과 몸체가 분리된 '백제금동대향로'가 나타났다. 이로 미루어 보아 누군가 급박하게(백제 사비성 함락 당일?) 이 국보를 숨겨놓은 것을 약 1400년 후에 발견한 것으로 추측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모양]&lt;/b&gt; 이 향로에는 백제인의 정신세계, 생활양식 등 하나의 우주가 구현되어 있다. 향로의 꼭대기에는 봉황 1마리가 날개를 활짝펴고 앉아있다. 이 봉황이 향로 뚜껑 손잡이 위치에 있다. 향로 상반부는 부드러운 능선이 겹겹이 싸인 산 모양을 하고 있는데 모든 산에는 동물이나 인물상이 부조(평평한 면에 형상을 반 입체적으로 조각하여 부착)되어 있다. 산 사이에 구멍을 뚫어 연기가 피어나오도록 만들어져 있다. 향로 하반부는 연꽃잎이 활짝피어서 감싸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각 연꽃잎들에는 물속에 사는 생물들이 부조되어 있다. 받침대는 용트림하는 용이 머리로 향로 본체를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백제금동대향로'의 우주&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백제금동대향로'는 중국 한나라의 박산향로(博山香盧) 영향을 받은 것이다. 박산은 신선들이 사는 이상세계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산수를 배경으로 불사(不死, 죽지 않음)의 신선과 다양한 영물(靈物, 훌륭하고 신비스러운 물건이나 생물체 등)들이 등장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향로의 박산 정상에 서 있는 새는 봉황이다. 봉황은 영생(永生, 죽지 않음)의 생명력을 가진 최고의 상서(祥瑞, 복되고 좋은일이 일어날 조짐)와 길상(吉祥)의 화신이다. 이 봉황은 구슬을 입에물지 않고 목에 끼고 머리로 누르고 있어서 긴장감이 느껴진다. 다리로는 알을 누르고 서 있는데, 이는 난생설화(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알에서 탄생했고, 백제의 시조 온조왕은 고주몽의 아들)를 표현한 것으로 부여적 전통 및 고구려와의 관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측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봉황의 바로 아래에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5명의 악사가 있다. 완함, 종적, 북, 거문고,배소 등 다섯 악기이다. 이는 우리가 오늘날 지식으로 상상하는 것이지 당시의 악기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지 않다. 예를 들면, 거문고가 아닌 백제금(百濟琴, 백제고유의 현악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4. 시대적 배경&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향로가 만들어진 때를 위덕왕 시절로 비정하는 경우가 많다. 백제 성왕(523년에 즉위, 554년에 사망)은 538년에 도읍을 공주에서 부여로 옮기고 '남부여'라고 나라 이름을 고치는 결단을 하여 백제멸망(서기 660년) 전까지 122년간 부여시대를 연&amp;nbsp; 인물이다. 백제부흥을 꿈꾸던 성왕은 신라 진흥왕과 동맹을 맺고 고구려에게 빼앗겼던 한강유역을 탈환하여 상류는 신라가 하류는 백제가 영토로 편입하였으나 신라의 배신으로 한강유역을 전부 빼앗기게 된다. 신라가 배신하여 고구려와 밀약을 맻고 백제를 공격하여 빼앗은 것이다. 이 배신에 대한 복수를 적극 주장한 주전론자가 나중에 '위덕왕'이 되는 왕자 '창(昌)'이었다. 그런데 554년에 이 복수전 주무대인 관산성(충북 옥천군) 싸움에서 왕자 '창(昌)'이 신라군에 고립되었는데 이를 구하러 가다가 성왕이 신라군의 매복병에 걸려서 전사하였다. 관산성은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였던 것이다. 나중에 위덕왕이 죄책감과 효심을 담아 이 향로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헌납하였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가 KBS에서 오래 전에 방영된 적이 있다. 삼국사기나 일본쪽 기록, 유물들의 증거자료를 보면 꽤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백제의 운명이 성왕의 전사이후 점차 기울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군 몇명(약 50명?, 신라 노비출신 '고간도도'가 이끈 소규모 군대)에게 당한 사건은 백제로서는 뼈아픈 패전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5. 참고사항&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전시관내에는 '3D 디지털 돋보기' 키오스크가 있다. '백제금동대향로'를 요리조리 돌려가면서 입체적으로 찬찬히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구현되어 있다.&amp;nbsp;&lt;/li&gt;
&lt;li&gt;전시관내에 '백제금동대향로' 제작과정을 설명해 주는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이렇게 정교한 공예품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 세밀함을 오늘날 첨단기술로도 구현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지만....&lt;/li&gt;
&lt;li&gt;향의 종류가 무엇이 있는지도 잘 정리되어 있다. 유향, 백단향, 자단향 등 지식습득과 더불어 그 향을 직접 코로 냄새맡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lt;/li&gt;
&lt;li&gt;국립부여박물관 본관 중앙홀에서 상영하는 영상 꼭 보시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두시간 마다 1번씩 상영한다. 천정과 벽면을 화면으로 활용하여 더욱 실감나게 구현한 것, 메시지와 설명의 명료함이 마음에 든다.&lt;/li&gt;
&lt;li&gt;관련 동영상 : &lt;a href=&quot;https://youtu.be/_XZIo33K5Xg&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youtu.be/_XZIo33K5Xg&lt;/a&gt;&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국립부여박물관에는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하루 이상 시간 여유를 가지고 방문하는 것이 좋겠고, 유튜브 동영상 시청, 관련 자료 공부 등 사전준비를 철저하게 한 후 관람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백제문화를 즐길 수 있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30_150618.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mIrWA/btsCQrfHzEO/nEUkyp753cU6Qn3XhC9xi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mIrWA/btsCQrfHzEO/nEUkyp753cU6Qn3XhC9xi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mIrWA/btsCQrfHzEO/nEUkyp753cU6Qn3XhC9xi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mIrWA%2FbtsCQrfHzEO%2FnEUkyp753cU6Qn3XhC9xi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3&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30_150618.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충청도</category>
      <category>국립부여박물관</category>
      <category>박물관</category>
      <category>박산향로</category>
      <category>백제</category>
      <category>백제금동대향로</category>
      <category>부여</category>
      <category>성왕</category>
      <category>위덕왕</category>
      <category>특별전</category>
      <category>향</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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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 Jan 2024 10:43:1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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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산리 당산나무에서 듣는 판소리 서편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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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28_172350.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TixR0/btsCOEZVi13/1nUBzQNWUJueiIJGEdnbI1/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TixR0/btsCOEZVi13/1nUBzQNWUJueiIJGEdnbI1/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TixR0/btsCOEZVi13/1nUBzQNWUJueiIJGEdnbI1/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TixR0%2FbtsCOEZVi13%2F1nUBzQNWUJueiIJGEdnbI1%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3&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28_172350.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지산리 당산나무&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지산리 당산나무는 영화 &quot;서편제&quot;의 무대이다.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지산리에 있는 당산나무 정말 멋있다. 나무의 종류는 팽나무인데 나이가 450년 이상이다. 450년된 영물을 암수라고 칭할수 없으니, 할아버지 할머니 나무라고 해야할 것이다. 지산리 당산나무는 할아버지 할머니 나무 둘이 마주보고 서있는데, 서쪽이 있는 것이 할머니 나무인 듯하다. 이 할머니 나무가 영화 &quot;서편제&quot; 에 많이 나온다.&lt;/p&gt;
&lt;h3 data-ke-size=&quot;size23&quot;&gt; &amp;nbsp; 안내판을 읽어보자&amp;nbsp;  &lt;/h3&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서편제는 임권택 감독이 이청준의 소설을 영화화하여 1993년 단성사에서 개봉하였고 주연배우 오정혜를 스타로 탄생시킨 영화이다. 한국전통의 소리를 영화로 새롭게 조명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quot;서편제&quot;는 당시 영화 사상 최초로 관객 113만 명을 동원하여 유명해진 작품이기도 하다. 서편제 촬영지 중 하나인 백수읍 지산리 당산나무는 수령이 450년 된 암수 한 쌍의 팽나무로써 영화에서는 서쪽의 당산나무가 소리연습을 자주하던 곳으로 선택되어 촬영되었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있으며 영광군에서는 2001년11월에 보호수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팽나무&lt;/h2&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28_172318.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Jz5Ga/btsCJiw1ppk/UgAozbkaxDIbqcdbFK573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Jz5Ga/btsCJiw1ppk/UgAozbkaxDIbqcdbFK573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Jz5Ga/btsCJiw1ppk/UgAozbkaxDIbqcdbFK573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Jz5Ga%2FbtsCJiw1ppk%2FUgAozbkaxDIbqcdbFK573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563&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1228_172318.jpg&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56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팽나무는 우리나라 당산나무로 많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팽나무는 제주시 애월읍에 900살이 넘는다고 한다.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북부리 동부마을에 가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와서 유명해진 팽나무가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는 팽나무가 당산나무로 많이 존재하고 있다. 당산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든든한 수호신 역할을 하는 오래된 나무인데, 우리의 정신세계속에서 오래된 것은 영험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어서 당산나무도 수령이 오래되어야 당산나무 자격이 생기는 것 같다.&amp;nbsp;&lt;/p&gt;
&lt;h3 data-ke-size=&quot;size23&quot;&gt;  박수 샤먼 무당나무 &lt;/h3&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나무 이름인 '팽'은 '이삭이 패다', 꽃이 피다'라는 말의 어원이라고 한다. 한자이름 박수(朴樹)는 샤먼, 무당, 박수를 치는 사람의 나무 즉 신령스런 나무라는 의미이다. 이름에서부터 팽나무가 왜 당산나무로 많이 존재하고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있는 것 같다. 팽나무는 그 모양도 매우 예뻐서 사랑받는 것 같기도 하다. 목질이 가볍고 단단하고 잘 갈라지지 않아서 가구를 만들거나 목조가옥을 지을 때 많이 사용된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서편제 동편제&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사설로 노래하는 사람)과 또 한 명의 고수(북으로 장단을 맞추는 사람, 소리꾼에게 반응하는 추임새도 넣는 역할)가 음악적으로 이야기를 엮어가는 우리나라 전통음악이다. 장단에 맞춰서, 표현력이 다양한 '창(노래)'과 일정한 양식을 가진 '아니리(말)', 풍부한 내용의 '사설'과 '너름새(몸짓)'등으로 이루어져 있다.&lt;/p&gt;
&lt;h3 data-ke-size=&quot;size23&quot;&gt;  동편제와 서편제  &lt;/h3&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판소리는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전승되었는데 지역적 창법에 따라 동편제와 서편제로 구분된다. 전라도 동북지역(운봉, 남원, 구례, 곡성 등 섬진가 동쪽지역)의 판소리를 '&lt;b&gt;동편제'&lt;/b&gt;라고 부르고, 전라도 서남지역(익산, 고창, 나주, 목포 등)의 판소리를 &lt;b&gt;'서편제'&lt;/b&gt;라고 한다. 경기도와 충청도의 판소리는&lt;b&gt; '중고제'&lt;/b&gt;라고 부른다. 동편제는 우조(羽調) 많이 쓴다. 발성을 무겁게 하고 소리의 꼬리가 짧아서 소리가 굵고 웅장한 느낌이 든다. 기교와 수식이 많지 않은 창법으로 사설이 빈틈없이 진행되고 템포가 빨라서 남성적인 창법이다. 서편제는 계면조를 많이 쓴다. 발성를 가볍게 하고 소리의 꼬리를 길게 늘여서 여성적 느낌이 든다. 따라서 서편제 소리는 애절하고 기교적이고 붙임새가 다양하여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과거에는 교통이 불편해서 동편제와 서편제 소리와 기교가 섞이지 않았으나 지금은 교통과 미디어의 발달됨에 따라 서로 영향을 많이 미쳐서 동편제와 서편제를 확연히 구분하기는 힘들다.&amp;nbsp; 그냥 동편제 서편제 구분없이 하나의 음악형태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여행안내&lt;/h2&gt;
&lt;h3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3&quot;&gt;  교통  &lt;/h3&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라북도 영광군 백수읍 지산리에 있다. 서해고속도로(15번) 영광 IC에서 빠져나와 805번 국도를 따라 백수읍에 오면 된다. 나무의 수형이 멋있어서 인생사진 찍기 좋은 장소다. 흠이라면 나무아래에 운동기구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들을 피해서 찍어야 좋을 듯 하다. 인근에 있는 백수해안도로 관광과 함께 일정을 짜면 멋진 하루 여행길이 될 것이다.&lt;/p&gt;
&lt;h3 data-ke-size=&quot;size23&quot;&gt;  음식  &lt;span&gt;&amp;nbsp;&lt;/span&gt;&lt;/h3&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지산리 당산나무를 보고나서는 백수읍에 가서 꼭 백합죽을 먹기를 권하고 싶다. 백합죽은 '한성식당'과 '백수식당' 두 곳이 유명하다. '한성식당'은 백합죽 한 가지만 하며 시골 온돌방 형식의 앉은배기 밥상 등 참 토속적이다. 밑반찬이 풍성해서 그 것만으로도 충분히 안주가 될 정도이다. '백수식당'은 현대식 건물안에 다양한 메뉴가 준비 되어 있다. '백수식당'이 TV프로그램 '허영만의 식객'에 반영되었다고 하지만, 현지 사람들은 '한성식당'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백합이 많이 들어간 맛있는 백합죽을 맛보고 싶다면 백합죽 한가지만 파는 &lt;span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식당을 추전하고 싶다.&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전라도</category>
      <category>당산나무</category>
      <category>백수식당</category>
      <category>백합죽</category>
      <category>서편제</category>
      <category>영광</category>
      <category>오정혜</category>
      <category>지산리</category>
      <category>판소리</category>
      <category>팽나무</category>
      <category>한성식당</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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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9 Dec 2023 16:05:03 +0900</pubDate>
    </item>
    <item>
      <title>[얼룩말 신드롬]을 읽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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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blob&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47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kPqqo/btsCMzYi171/UmJKdAxHBHKU8WLbCF3OJ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kPqqo/btsCMzYi171/UmJKdAxHBHKU8WLbCF3OJ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kPqqo/btsCMzYi171/UmJKdAxHBHKU8WLbCF3OJ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kPqqo%2FbtsCMzYi171%2FUmJKdAxHBHKU8WLbCF3OJ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473&quot; data-filename=&quot;blob&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47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quot;지금 당신 아이는 얼룩말로 키워지고 있다&quot;&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얼룩말은 무리에 섞여 있으면 개체를 구별할 수 없다. 얼룩말의 성격, 기질, 잠재력, 흥미도, 적성등은 무시된다. 오직 사자의 무리 등 포식자로 부터 도망치는 능력(속도)으로서 평가될 뿐이다. 정글에서 생존하는데 꼭 필요한 능력이기 때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국 아이들은 얼룩말과 같다. 아이들의 취향, 적성 등은 무시되고 오직 공부와 학업이라는 속도에 매몰되어 있다. 영어 유치원, 조기 교육, 국영수 등 암기위기의 성적위주의 천편일률적 내용을 모든 아이들에게 동일하게 주입한다. 개성 및 창의력이 개발되지 못하고 오직 남들과 똑 같은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남들과 다르게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정신적으로 행복한 창조적인 인간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이 책을 정독하고 실천하기를 권한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328&quot; data-origin-height=&quot;526&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vUIlG/btsCBJ2tvjO/lqznUnlUbo341u9NEGFdu0/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vUIlG/btsCBJ2tvjO/lqznUnlUbo341u9NEGFdu0/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vUIlG/btsCBJ2tvjO/lqznUnlUbo341u9NEGFdu0/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vUIlG%2FbtsCBJ2tvjO%2FlqznUnlUbo341u9NEGFdu0%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328&quot; height=&quot;526&quot; data-origin-width=&quot;328&quot; data-origin-height=&quot;526&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책 구성&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책은 [사아연 전자책 1권]으로서 41페이지의 소책자이다. 저자의 주장은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고 특히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자는 것이다. 제 1장은 아이들의 교육현실을 진단하고, 제 2장에서는 부자들과 빈자들의 정신(Mindset)차이, 제 3장에서는 부자들의 정신자세를 갖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1&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lt;b&gt;&quot;빈자는 돈을 절약할 생각을 하고 부자는 더 벌 생각을 한다.&quot;&lt;/b&gt;&lt;br /&gt;&lt;/span&gt;&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말은 깊이 상고할 가치가 있는 말이다. 우리는 보통 검약한 생활습관을 교육받고 훈련받는다. 그러나 수입의 크기가 작은데 그것을 절약하는 것만으로 어떻게 경제적 자유를 이룰 것인가? 종자될 자금을 모아서 그를 활용하여 더 많이 버는 것만이 부자가 되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이러한 정신자세를 교육시켜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부업을 경험한 저자는 영감을 주는 문장들을 많이 발췌하여 책 곳곳에서 제시한다. 그래서 개인의 경험과 많은 책들의 주옥같은 문장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일독할 가치가 있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맻는 말&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책은 본격적인 내용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느낌을 준다. 개론이나 서론부분에 해당되는 듯하다. 그래서 많이 아쉬운데 그런 독자를 위해 저자는 인테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https://cafe.naver.com/childceolab/22). 이 곳을 통하여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돈은 없어서는 살 수없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인데도 우리는 화제로 올리면 왠지 격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갖는 것 같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모든 활동 성과평가의 지표가 되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아이들을 창의적으로 풍족한 어른으로,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한 인간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이 책의 저자 주장에 귀기우릴 필요가 있다.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이 나와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lt;/p&gt;</description>
      <category>책 서평 독서</category>
      <category>경제교육</category>
      <category>사아연</category>
      <category>아이들</category>
      <category>얼룩말신드롬</category>
      <category>전자책</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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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8 Dec 2023 06:28:42 +0900</pubDate>
    </item>
    <item>
      <title>나폴레옹 영화 줄거리, 역사적 배경, 총평 및 시사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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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napoleon.jpg&quot; data-origin-width=&quot;900&quot; data-origin-height=&quot;506&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ZHudh/btsBKjPkYAp/nO3E3QDs3HGyZkqUz9Oo8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ZHudh/btsBKjPkYAp/nO3E3QDs3HGyZkqUz9Oo8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ZHudh/btsBKjPkYAp/nO3E3QDs3HGyZkqUz9Oo8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ZHudh%2FbtsBKjPkYAp%2FnO3E3QDs3HGyZkqUz9Oo8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900&quot; height=&quot;506&quot; data-filename=&quot;edited_napoleon.jpg&quot; data-origin-width=&quot;900&quot; data-origin-height=&quot;506&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영화줄거리&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리틀리 스콧감독이&amp;nbsp; 만들고, 소니픽쳐스가 제작회사인 최신영화 '나폴레옹'을 극장에서 보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나폴레옹의 출세과정과 역사적 사건이 편년체적으로 진행되지만 모든 사건을 시시콜콜 보여주지는 않는다. 중요한 사건을 자세히 묘사하고 등장인물의 심리를 보여 주는 방법으로 감독의 시각에서 작품을 완성한다. 프랑스는 1793년에 왕정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하는 혁명의 불꽃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코르시카 출신의 젊은 장교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연전연승함으로써 프랑스 희망으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사교파티에서 만난 나폴레옹과 조세핀은 연인이 되고 결국 결혼하게 된다. 황제에 오른 나폴레옹은 러시아 침공에 실패하고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한 후 실각한다. 엘바섬으로 유배된 나폴레옹은 기사회생하나 워털루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완전히 몰락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남태평양의 외로운 섬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과거의 영광을 반추하면서 현실감을 상실한 나폴레옹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전투 장면이 웅장하다. 보병들의 전진하는 발자국, 말탄 기병들의 생동감, 작렬하는 포탄과 피흘리며 죽어가는 병사들의 비참한 모습 등은 왜 이 영화는 대형극장에서 봐야 하는가를 잘 설명해 준다. 반드시 음향시설이 우수한 곳에서 관람하기를 강력하게 권하는 바이다. 나폴레옹으로 분한 배우는 호아킨 피닉스, 조세핀으로 열연한 배우는 바네사 커비다. 호아킨 피닉스는 영화 글라디에이터에서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아들 코모두스로 나왔던 배우로 낯이 익었다. 바네사 커비는 영국 여배우로 넷플릭스 드라마인 '더 크라운'에서 마가렛 공주역을 맡았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장면은 눈덮힌 광활한 얼음호수 배경을 만들기 위해 직접 농경지를 파서 얼음호수를 재현했고,&amp;nbsp;의상과 음악도 나폴레옹 시절의 것 활용하는 등 공들인 흔적도 많이 볼 수 있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역사적 배경을 알고 가야 재미있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영화를 보러가기 전에 프랑스 대혁명 진행과정, 나폴레옹의 부침에 대하여 미리 공부를 하고 가야 영화를 제대로 감상이 가능할 정도로 영화줄거리가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관객들이 상식을 가지고 있는 교양인이라 하더라도 남의나라 역사의 맥락을 다 알고 있을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이지 않을까? 나폴레옹은 1769년 프랑스 왕국의 변두리 코르시카 섬에서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나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혼란한 시대 속에서 탁월한 군사적 성과를 이뤄내면서 프랑스의 영웅으로 부상한다. 1793년 툴롱 포위전에 참여하여 승리함으로써 24살의 젊은 나이에 장군이 된다. 프랑스 혁명전쟁을 승리로 이끈 나폴레옹은 1799년 쿠데타로 집권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프랑스 혁명을 통해 수립된 자유주의 이념을 전 유럽에 전파시켰다. 법치주의, 능력주의, 시민평등사상 등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이념들이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탄생했고 나폴레옹에 의해 유럽 전역에 퍼진 것이다. 나폴레옹 법전은 전세계 민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연하게도 민주주의의 확산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고자 하는 오스트리아, 영국, 러시아 등 유럽제국들 연합군과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폴레옹의 몰락은 1806년 대륙봉쇄령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대륙봉쇄령은 영국과 유럽본토와의 통상을 금지한 것이기 때문에 이로인해 유럽각국의 물자와 생필품 부족이 야기되어 민생이 고통받게 되므로 반 나폴레옹 정서가 고조된 것이다. 대륙봉쇄령 위반을 응징하기 위해 출정한 러시아 원정의 실패(1812년)는 프랑스에 큰 손실이었다.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한 후 유럽 왕국들의 연합군은 1814년 파리에 입성하고 나폴레옹은 엘바섬으로 추방된다. 1815년 엘바섬을 탈출하여 재기에 성공하는 듯 했으나 동년 6월에 워털루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완전 몰락하게 된다.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추방되어 6년을 지내다가 그곳에서 죽는다. 우리는 그는 유럽제국 연합군을 상대로 얻은 많은 승리를 통하여 프랑스를 유럽의 패권국가의 하나로 만들었고 민주주의를 전파시키는데 혁혁한 공헌 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총평 및 시사점&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quot;&gt;기록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극적 상상력을 가미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너무지나치면 역사적 실인물과 사건에 대한 왜곡이 될 수 있어서 냉정한 평가는 피하기 어렵다. 나폴레옹의 부정적 측면이 많이 노출된 영화이다. 나폴레옹이 조세핀의 농간에 놀아나는 바보같은 사람으로 묘사하고 싶었을까? 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미국에서 만들어져서 그런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인들은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나폴레옹은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전 유럽제국들을 적으로 두고 전쟁을 치렀다. 결국 이영화가 영국의 앵글로 색슨족이 주축이 되어 건국한 미국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프랑스 영웅을 이렇게 묘사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보아서 그런지 몰라도 이야기의 흐름도 자연스럽지 못하고 중간중간 많이 끊겨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헛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인, 군인, 정치인 등 나폴레옹의 정체성은 다양할 수 있다. 인간은 복합적이고 복잡해서 그 것들을 다 표현하기 어렵다하더라도 한 작품속에 넣을 때에는 적어도 상호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 가끔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드는 연결도 많았는데 그래서야 될 일인가? 마치 영화검열로 인해 무자비한 가위질로 중요부분이 많이 잘려나간 것 같았다. 그래도 아우스테리츠 전투같은 &lt;/span&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quot;&gt;전쟁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고 압권이었다. 얼어붙은 호수로 퇴각하는 연합군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여 수장시키는 장면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는 부분이 많이 않다고 하더라도 꽤 장엄하고 비참하였&lt;/span&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quot;&gt;다. 전쟁에서 희생당한 많은 군인들의 참상을 처절하게 보여줌으로써 전쟁에 반대하는 메시지는 확실하게 전달된 듯하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영화포스터.webp&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1432&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dW4Hzm/btsCKsefutu/ffkgT4ZEbX7udVF26uabw1/img.webp&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dW4Hzm/btsCKsefutu/ffkgT4ZEbX7udVF26uabw1/img.webp&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W4Hzm/btsCKsefutu/ffkgT4ZEbX7udVF26uabw1/img.webp&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dW4Hzm%2FbtsCKsefutu%2FffkgT4ZEbX7udVF26uabw1%2Fimg.webp&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000&quot; height=&quot;1432&quot; data-filename=&quot;영화포스터.webp&quot; data-origin-width=&quot;1000&quot; data-origin-height=&quot;1432&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영화감상</category>
      <category>나폴레옹</category>
      <category>나폴레옹 영화</category>
      <category>리틀리 스콧</category>
      <category>바네사 커비</category>
      <category>조세핀</category>
      <category>프랑스</category>
      <category>프랑스 대혁명</category>
      <category>호아킨 피닉스</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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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7 Dec 2023 23:57:5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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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백제에 불교 처음 도래한 곳, 불갑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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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edited_1700395178267.jpg&quot; data-origin-width=&quot;800&quot; data-origin-height=&quot;449&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sKES/btsAvhNAhbv/vbANpv7Qx2fAOIRmmkEBD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sKES/btsAvhNAhbv/vbANpv7Qx2fAOIRmmkEBD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sKES/btsAvhNAhbv/vbANpv7Qx2fAOIRmmkEBD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sKES%2FbtsAvhNAhbv%2FvbANpv7Qx2fAOIRmmkEBD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800&quot; height=&quot;449&quot; data-filename=&quot;edited_edited_1700395178267.jpg&quot; data-origin-width=&quot;800&quot; data-origin-height=&quot;449&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동북아시아 불교&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인간은 무언가 섬기면서 살아야 하는 운명인듯 하다. 돌도끼들고 사냥하던 선사시대에도 토테미즘, 애니미즘, 샤머니즘, 영혼 숭배사상등이 있었음이 이를 증명한다. 이러한 원시종교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 단지, 정령이나 영혼이 있어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잘 보살핌을 받으려면 정성들여 숭배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논리이다. 동아시아의 기본사상이면서 공자를 종조로 삼는 유교에서도 더불어 잘 살아가는데 필요한 규범과 행동양식은 잘 설명하고 있지만, 죽음이후의 문제에 대하여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는 아주 매력적이었다. 불교는 기원전 4세기경 인도에서 석가모니에 의해 시작되어 중국의 동한시절(유수에 의해 건국된 후한)에 중국에 전래되어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다가, 위진남북조시절에 중국 사상계를 장악하였다. 위진남북조시대는 동한(후한)에 이은 삼국시대(나관중의 &amp;lsquo;삼국지연의&amp;rsquo; 참조)부터 수나라가 전국통일을 할 때까지의 약 400년을 지칭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이은 제2의 분열의 시기로 혼탁한 전쟁의 시대이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불교는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국가종교로서 자리를 잡게되는 것이다. 유교나 도교적 세계관이 주지 못하는 마음의 위안과 정신적 세계를 불교는 체계적으로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사성제나 연기론 등 불교 사상은 동아시아의 중심사상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삼국시대 불교전래&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중국이 서기 184년 황건적의 난을 시작으로 동한(후한)이 멸망하고 수나라가 통일하기까지의 약 400년동안 위진남북조시대를 거치는 동안,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사상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이웃으로서 중국의 사회경제적 변화는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분열의 시기가 한반도에는 기회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위진남북조시절에 고구려는 만주지역 등 중국북부를 영역으로 차지하고 동아시아 맹주역할을 한 것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중국이 통일된 수나라 당나라 시절에는 고구려가 침공당하여 결국 멸망하고 한반도 남쪽만 통일한 통일신라, 한반도 북부에는 발해, 즉 남북조시대를 이루게 된다. 삼국시대 불교 유입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각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반도 북쪽에 위치한 고구려는 육로를 통하여, 백제 및 신라는 해상교통로를 통하여 불교가 유입되었다. 고구려는 중국북방을 평정한 나라인 전진으로 부터 불교가 전래되었다. 남쪽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서 우호적 관계가 필요하였던 전진 왕 부견은 서기 372년 인도승려(법명 순도)와 불경을 이웃나라인 고구려에 보냈던 것이다. 백제는 중국남부에 위치해 있던 동진으로 부터 불교가 전래되었다. 서기 383년 북중국을 평정한 전진은 백만대군으로 남쪽의 동진을 공격하게 되는데 &amp;lsquo;비수대전&amp;rsquo;에서 8만명의 동진에 패배한다. 한반도에서도 한강유역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던 백제는 승리한 동진에 축하사신을 보내게 된다. 서기 384년에 동진은 귀국하는 백제사신 편에 인도승려 마라난타와 불경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신라의 영역인 경상도 지역에 불교전래는 고구려나 백제보다 훨씬 전에 이루어졌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가 병합한 가야국은 고구려보다 300여년 앞서서 불교를 받아들였다. 금관가야의 개국시조인 김수로왕과 결혼한 허황옥은 서기 48년에 인도로 부터 수행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왔고 불교도 함께 전래된 것이다.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고려승려 묵호자에 의한 것이고 법흥왕때인 527년에 이차돈의 순교를 통해 국가종교로 공인받게 되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호국불교&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불교가 전래된 초창기에 불교의 연기설, 즉 좋은 인연을 맺고 착한 행동을 하면 내세에 복을 받는다는 생각 등이 토속신앙과 융합되어 기복신앙으로 발전되었고, 결국 국가전체적으로는 호국신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불교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낸다는 호국불교사상은 한국 특유의 사상으로서 국가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삼국시대의 불국토사상과 호국불교사상이 삼국통일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호국불교사상은 고려의 대장경판 사업, 조선시대 승병활동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동진으로 부터 백제사신들과 함께 온 인도승려 마라난타는 이곳 불갑사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불교는 민중들을 교화시켜 동질감을 부여함으로써 중앙집권 정치체계를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그 역할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는 듯하다. 부처님의 가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극락의 행복을 모두가 맛볼수 있기를 모악산 불갑사에서 빌어본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700395183877.jpg&quot; data-origin-width=&quot;800&quot; data-origin-height=&quot;450&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cv3xe/btsAxaULJzr/QfDuzMmkdtCgZs2M4LXbk0/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cv3xe/btsAxaULJzr/QfDuzMmkdtCgZs2M4LXbk0/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cv3xe/btsAxaULJzr/QfDuzMmkdtCgZs2M4LXbk0/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cv3xe%2FbtsAxaULJzr%2FQfDuzMmkdtCgZs2M4LXbk0%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800&quot; height=&quot;450&quot; data-filename=&quot;edited_1700395183877.jpg&quot; data-origin-width=&quot;800&quot; data-origin-height=&quot;450&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전라도</category>
      <category>기복신앙</category>
      <category>마라난타</category>
      <category>모악산</category>
      <category>불갑사</category>
      <category>불교전래과정</category>
      <category>삼국시대 불교신앙 연구</category>
      <category>호국불교</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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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0 Dec 2023 21:08: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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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과거로의 여행, 낙안 읍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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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4235228.jpg&quot; data-origin-width=&quot;900&quot; data-origin-height=&quot;506&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hgFV/btsAcQIpbSJ/pJRygERwKh5iwf8RO6V2g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hgFV/btsAcQIpbSJ/pJRygERwKh5iwf8RO6V2g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hgFV/btsAcQIpbSJ/pJRygERwKh5iwf8RO6V2g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hgFV%2FbtsAcQIpbSJ%2FpJRygERwKh5iwf8RO6V2g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900&quot; height=&quot;506&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4235228.jpg&quot; data-origin-width=&quot;900&quot; data-origin-height=&quot;506&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세월에 곰삭은 것들은 모두 편안하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세월이 흐르면 모난 것은 마모되어 매끈해지고 강한 것은 부드러워진다. 강가에 나아가 조약돌을 보라. 한 때는 큰 바위였던 것이 깨어져 울퉁불퉁한 돌이 되고 그것들이 물길에 서로 부딪치면 매끄럽고 예쁜 조약돌이 되는 것이다. 한 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뽐내던 콧대도 세상 도처에 저보다 잘난 사람 많다는 것을 알게되고, 운좋게 성숙한 위인을 만나게 되면 더욱 부드럽고 겸손해지는 것도 세월의 힘인 것이다. 그래서 세월은 모든 것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만든다. 세월이 가면 팔팔하던 만물이 약해지고 시들고 병들기도 한다.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은 살아있는 것들의 숙명이다. 우리는 하루 하루 세월을 살아가면서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하루 하루 죽음에 가까워 진다고 해서 그렇다고 해서 마냥 슬퍼하고 불행해 할 일인지는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청춘이 좋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의향이 있는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그냥 세월이 흐르는 대로 그를 따라서 늙어 갈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사는 모든 세월이 나름대로 모두 저마다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어서 딱 그 세월에 맞는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세월은 힘을 갖고 있다. 갈등도 세월이 지나면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지나친 부분은 떨어져서 균형을 찾고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고 심지어 나라나 인류의 역사도 그렇다. 그래서 세월앞에서 겸손해져야 하고, 겸손하게 세월에 순응하다 보면 마음이 허허롭고 편안해지는 것이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낙안읍성 민속마을&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라남도 순천에 있는 낙안읍성 민속마을을 돌아보며 이러한 세월의 힘과 넉넉함을 느꼈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에 들어서면 초가집, 기와집, 집 뒤안의 장독대 등이 우리를 맞아준다. 이곳은 박제화된 민속촌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살면서 생활하는 생동하는 삶의 현장이다. 그 분들이 이곳 풍경에 어울리게 한복을 입고 있다. 농기구도 낫, 괭이, 호미 등 옛것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요즘 현대 자동화된 농기구는 사용하지 않고 있어서 마치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로 과거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낙안읍성은 금전산을 배경으로 완전히 평야지역에 건축한 평지읍성이다. 이 성은 조선 태조 6년(1397년)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위해 이 고장 출신인 낙안김씨 반길 장군이 토성을 쌓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석성으로의 증축은 조선 4대왕인 세종9년(1426년)에 이루어 졌다. 그 후 조선 인조 4년(1626년)에 임경업장군이 낙안 군수로 부임하여 현재의 석성으로 중수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낙안읍성안에는 임경업 장군을 모신 사당이 모셔져 있다. 넓은 평야에 큰 정방형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높이 4미터,너비 3~4미터, 성의 총길이는 1.4킬로미터로 성내 면적은 약 4만 1천평이라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성곽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고 지금도 성내에 100여호 이상의 주민이 실제 거주하고 있는 살아 숨쉬는 민속마을인 것이다. 그래서 낙안 골목길을 걷다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조선시대의 어느 마을로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어서 참 좋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아담한 읍성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읍성이란 한 읍을 둘러싼 성으로서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기능을 담당하던 곳으로 우리나라는 주로 해안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고창, 거제, 낙안, 동래 등 우리나라에 15개의 읍성이 남아 있는데 모두 해안지방에 있는 것을 보면 왜구(일본 해적) 등 외부 침입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성종때 전국 330개 행정구역중에서 190개가 읍성이었다. 이러한 읍성은 한국만의 고유한 성곽제도라 할 수 있다. 읍성들은 우리나라 지방 마을의 특성에 따라 평지에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서울 즉 한양도성의 배치를 축소해 놓은 것으로 이해하면 거의 틀림없다. 한양도성이 북한산을 뒤에 두고 성곽 북쪽 중앙에 경복궁이 있듯이 읍성에는 지방의 진산을 배후에 두고 관아를 배치한다. 관아 앞으로는 동서와 남북대로가 있다. 한양의 남북대로(주작대로) 주변에 상점인 육의전과 관영건축물이 배치되었듯이 읍성도 비슷하다. 살림집들의 배치도 조사해 보면 비슷한데, 신분에 따라 성곽내에서의 거주 구역이 구분되었다. 이러한 읍성제도 때문에 외부 침략이 발생하면 민관군등이 모두 합동하여 전쟁을 치를 수 있었다. 모든 백성들이 읍성안에서 자신의 거주지를 위하여 도시 방어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다. 외부 침략에 대한 대비 시설로서 대부분의 읍성이 성곽주변에 해자, 치, 문루 및 옹성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낙양읍성 같은 민속마을을 둘러보면서 조선시대의 도시배치, 방어시설 등 건축술 및 역사 문화사적 관점에서 조사해 보는 것도 지적호기심을 만족하고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사전에 미리 준비하고 현장에 가면 여행이 더욱 풍성해지므로 자료조사 후에 여행을 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싶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4235290.jpg&quot; data-origin-width=&quot;900&quot; data-origin-height=&quot;506&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zLWb4/btsAakpVWly/ZjdrpCIPZzgo06fl4A8f6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zLWb4/btsAakpVWly/ZjdrpCIPZzgo06fl4A8f6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zLWb4/btsAakpVWly/ZjdrpCIPZzgo06fl4A8f6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zLWb4%2FbtsAakpVWly%2FZjdrpCIPZzgo06fl4A8f6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900&quot; height=&quot;506&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4235290.jpg&quot; data-origin-width=&quot;900&quot; data-origin-height=&quot;506&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전라도</category>
      <category>낙안</category>
      <category>낙안민속촌</category>
      <category>낙안읍성</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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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4 Nov 2023 06:48:0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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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생사를 넘나드는 사랑, 만복사 저포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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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edited_1699787320108.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tEKOM/btsAcSFV1ru/yw3ziuhZzFrOcSlKl7WhL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tEKOM/btsAcSFV1ru/yw3ziuhZzFrOcSlKl7WhL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tEKOM/btsAcSFV1ru/yw3ziuhZzFrOcSlKl7WhL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tEKOM%2FbtsAcSFV1ru%2Fyw3ziuhZzFrOcSlKl7WhL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393&quot; data-filename=&quot;edited_edited_1699787320108.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김시습의 금오신화 현장&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우리나라의 최초 한문소설은 김시습의 &amp;lsquo;금오신화&amp;rsquo;로 알려져 있다. 매월당 김시습이 조선 세조때 경주 남산인 금오산 용장사에서 쓴 소설이다. 금오신화는 중국의 &amp;lsquo;전등신화&amp;rsquo;를 본떠서 쓴 것이다. 이러한 형식은 당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에서 크게 유행하였는데, 이 전등신화도 실은 당나라때의 소설을 따라한 것으로 고금의 괴담을 역은 전기소설인 것이다. 김시습은 조선전기의 문신이자 생육신의 한사람이다. 조선 전기의 역사를 보면 계유정난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나온다. 이 사건은 조선 4대왕 세종의 아들중 하나인 수양대군이 조선 6대왕인 단종(수양대군의 조카)을 몰아내고 7대왕 세조가 된 정치사건이다. 이 사건에 반대하여 죽음으로 충절을 지킨 6명의 신하를 사육신, 목숨을 부지하였지만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반 미치광이 행세 등 소극적으로 반항한 6명의 신하를 생육신으로 칭하는데, 매월당 김시습은 그 생육신의 한 사람인 것이다. 머리가 매우 좋아서 그 시절 천재로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자마자 정치에 뜻을 버리고, 승려가 되어 조선 전국을 유람하였다. 세조 11년(서기 1465년)에는 경주 금오산의 용장사에서 금오신화를 비롯한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현존하는 금오신화속 소설은 &amp;lsquo;만복사 저포기&amp;rsquo;, &amp;lsquo;이생규장전&amp;rsquo;, &amp;lsquo;취유부벽정기&amp;rsquo;, &amp;lsquo;남염부주지&amp;rsquo;, &amp;lsquo;용궁부연록&amp;rsquo; 등 5편이다. 이 5개 소설 중 사건 현장이 구체적으로 나타는 것은 &amp;lsquo;취유부벽정기&amp;rsquo;의 현장인 대동강변 부벽정, &amp;lsquo;만복사저포기&amp;rsquo;의 현장인 전라도 남원시에 있는 만복사 등 두 곳이 있다. 이 글에서는 &amp;lsquo;만복사저포기&amp;rsquo;와 그 현장을 알아보기로 한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사랑&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squo;만복사저포기&amp;rsquo; 대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려서 고아가 된 양씨 성을 가진 총각이 만복사에 살고 있었다. 부처님탄신일인 사월 초파일은 날씨가 온화하여 만물이 생동하고 꽃들이 만발하는 좋은 계절인데, 노총각인 양씨 총각은 일가친척없는 쓸쓸한 처지라, 초파일 모든 행사가 끝난 한적한 저녁에 대웅전에 들어가서 부처님께 하소연을 하게된다. 그러면서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부처님과 저포놀이로 내기를 하자고 하는 것이다. 양씨 총각이 첫번째 던지는 것은 부처님이 던지는 것으로, 두번째 것은 양씨 총각 자신의 것으로 하자고 하면서 만일 자신이 이기게 되면 부처님께서 소원을 들어줘야 한다고 스스로 정한 것이다. 다행히 이 저포놀이에서 양씨 총각이 이기게 되는데, 부처님께 소원을 빌기를 &amp;lsquo;아름다운 처녀를 아내로 달라&amp;rsquo;고 하였다. 그렇게 기도를 한 후 부처님 뒷편 공간에 숨어서 지켜보게 되는데 조금 있으니, 아주 예쁜 처녀가 와서 기도를 하였다. 가만 기도내용을 들어보니 그녀도 &amp;lsquo;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면서 아름다운 신랑으로 배필을 정해달라&amp;rsquo;고 하는 것이었다. 부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준 것으로 생각한 양씨 총각은 처녀 앞으로 나아가 저포놀이를 하여 부처님을 이긴 사정, 자신의 기도 등 전체 상황을 설명하면서 &amp;lsquo;이는 부처님께서 혼인을 맺어 준 것&amp;rsquo;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처녀도 부끄럽지만 뜻을 받아들여 부부가 되기로 한다. 그래서 그 둘은 그 밤에 결혼을 하고 합방을 한다. 다음날 날이 새기 전에 처녀가 자기집으로 가자로 해서 같이 새벽길을 나서게 되는데, 이상한 것은 길에서 만난 동네사람 눈에는 양씨 총각만 보이고 그 처녀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 둘은 개녕동이라는 동네로 가서 행복하게 몇 년을 살게 되는데, 그러던 어느 날 그 &amp;lsquo;처녀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헤어질 날이 왔다&amp;rsquo;고 말한다. 사실은 &amp;lsquo;자신은 왜란(고려말 일본출신 해적들을 의미하는 듯)에 억울하게 처녀몸으로 죽은 원혼인데, 부처님의 은혜로 그동안 양씨 총각과 결혼생활을 하였는데 이제 그 인연이 다해서 헤어져야 한다&amp;rsquo;는 것이었다. 결국 양씨 총각은 절에서 처녀부모들이 지내는 제사에 참석하고, 귀신인 아내와 이별을 고한 후 지리산에 들어가 자기 아내를 그리워하며 여생을 마쳤다고 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이처럼 비현실적이면서도 매우 아름답고 안타까운 사랑이야기가 &amp;lsquo;만복사저포기&amp;rsquo;인 것이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만복사와 주변 관광&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라북도 남원에 있었던 만복사는 김시습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매우 큰 사찰이었던 것 같다. 전해져 오는 내용으로는 도선국사(신라말 고승, 풍수지리설 도입)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이는 과장된 내용인 듯하다. 기록을 찾아보면 동국여지승람이라는 책에 11세기 고려문종때 건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러 기록에 보면 만복사는 매우 큰 사찰로 대웅전을 비롯한 많은 건물과 수백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아깝게도 이 큰 절 만복사는 1597년에 발발한 정유재란(1592년 임진왜란에 이어 일본군의 2차 침입)때 일본군에 의해 화재로 불타고 이후에는 중건되지 못하였으며 현재는 절터만 쓸쓸하게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장군이 해로 차단, 권율장군 등의 웅치 전투 승리 등으로 전라도는 전란의 피해를 입지 않았으므로 만복사도 온전했었다. 그런데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이끈 조선수군의 궤멸로 인해 일본군을 전라도를 침범하여 남원성, 전주성을 함락하게 된다. 이 남원성 전투 때에 만복사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남원에 가면 &amp;lsquo;만인의 총&amp;rsquo;이라는 무덤도 볼 수 있는데 이 무덤도 정유재란시 남원성 전투에 참가하였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조선군과 백성들의 무덤인 것이다. 무려 만명이라는 생명이 전사하였으니 정말 처절한 저항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만복사 절터에 가면 &amp;lsquo;만복사지 5층석탑&amp;rsquo;, &amp;lsquo;만복사지 석좌&amp;rsquo;, &amp;lsquo;만복사지 당간지주&amp;rsquo;, &amp;lsquo;만복사지 석불입상&amp;rsquo; 등 많은 석물 들이 남아서 옛 영광을 쓸쓸하게 말해주고 있다.&lt;/p&gt;</description>
      <category>전라도</category>
      <category>금오신화 이야기</category>
      <category>만복사</category>
      <category>만복사저포기</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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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2 Nov 2023 22:50:3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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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제, 조상 봉제사가 계속될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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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시제1.jpg&quot; data-origin-width=&quot;800&quot; data-origin-height=&quot;450&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EzM0j/btsz9mandAB/sgiV9AlkMmQ0nIRP4T7io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EzM0j/btsz9mandAB/sgiV9AlkMmQ0nIRP4T7io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EzM0j/btsz9mandAB/sgiV9AlkMmQ0nIRP4T7io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EzM0j%2Fbtsz9mandAB%2FsgiV9AlkMmQ0nIRP4T7io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800&quot; height=&quot;450&quot; data-filename=&quot;edited_시제1.jpg&quot; data-origin-width=&quot;800&quot; data-origin-height=&quot;450&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제사의 의미&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국인들은 해마다 조상이 돌아가신 날이 돌아오면 제사를 지낸다. 전통적으로는 종가댁에는 사당이 있어서 4대조까지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었다. 부모,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까지가 4대 조상이고 이러한 제사 행위를 '사대봉사'라고 한다. 4대조 이상의 조상은 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고 산소에 가서 봄이나 가을날 하루를 정하여 합동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시제라고 한다. 한국의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시골에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것이 보통이었고 조상들 묘는 문중 소유의 선산에 모시게 되므로 묘들이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동조상의 시제를 함께 지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었다. 제사를 지내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우리사회를 이루는 기본사상과 생활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조상들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계속 존재하면서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죽은 조상을 잘 받들고 제사를 잘 모시면 그 분들이 가신 저 세상에서도 복을 받아 잘 살게되고, 그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살아있는 후손들을 조상들이 잘 보살펴 준다는 것이다. 두번째 생각할 수 있는 제사의 의미는 문화적, 정신적 가치이다. 제사는 공동의 조상을 가진 자손들이 참여할 것이므로 가족, 씨족간의 유대감, 소속감, 단결심 및 협동심을 고양한다. 이러한 공동의식의 형성은 전통 농경사회를 경영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조상을 숭배하고 윗어른, 연장자를 공경하는 윤리의식은 사회 질서형성의 기본이 되며 생활양식의 뿌리로 작용한다. 이러한 제사의식이 언제부터 있었을까? 아마도 인류가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던 선사시대로부터 유래하였을 것이다. 인간을 감정을 가지고 생각을 할 수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할 것인가?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이해체계로서 제사는 훌륭한 답변이 되었다고 생각된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제사, 시제 절차&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집제사나 '시제'라고 불리는 한국인들이 조상무덤을 방문하여 제사지내는 추모 행사는 한국에서 오랬동안 이어져 온 민족풍속이며 정신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통이지만, 유교와 성리학이 국가 지도이념이 된 조선 후기에 활성화되고 일반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제사의 형식과 절차도 표준화 되었는데, 사실 제사지내는 법은 집집마다 다르다는 말도 있다. 그래도 제례는 몇 가지 필수 구성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조상 위패(신주)가 제사의 중심이 되기 때문에 조상의 사당이나 제사상 위에 놓인다. 위패에는 성명과 관직이 쓰여있는데 조상의 영혼이 그 속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위패 앞에 음식과 술을 진열한다. 전통 음식, 과일, 음료를 준비하여 조상의 영혼에게 바치는 것이다. 이러한 제물은 고인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상징한다. 제사를 지내는 절차는 조상신을 맞아들이고, 축문을 읽고, 참가자들이 연장자부터 조상 앞에서 차례로 술을 올리고 절을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조상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고 조상의 축복과 보호를 구하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조상신을 보내드린다. 고대 역사에서 시작된 제례는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고,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간극을 좁히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가치를 지키는 역할을 하였다. 문론 한국의 묘와 매장제도는 개선을 해야한다는 주장에는 공감한다. 죽는 사람 마다 묘를 쓰면 이론적으로 언젠가는 국토가 전부 묘로 가득 찰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화장 및 납골묘가 일반적이다. 사람이 죽으면 과거에는 선산에 뭍혔지만 이제는 화장되어 납골당으로 간다. 그래서 선영의 묘도 없어진다. 이것을 국가에서 장려하기도 하고 자연보호측면에서도 권장할 일이지만, 전통문화가 소멸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풍속의 계승&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도시화로 진행되면서 제사문화가 많이 퇴색하였다. 전통한옥집에서는 사당을 유지할 수도 있겠으나, 아파트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사당에 모시던 신주만 따로 아파트 한 편에 모시는 방법도 있겠으나 유교의 신주, 제사의식은 종교라기 보다는 생활양식에 가깝다고 인식되어, &amp;nbsp;불상이나, 성모상, 십자가를 모시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래서 도시에 사는 아파트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제사도 마찬가지다. 제사는 해당 자손들이 모여서 지내야 하나 바쁜 도시생활에다가 사는 곳도 서로 멀다보니 참석하기가 어렵다. 또한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주부들도 직장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당일날 제사를 모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함께 모일 수 있는 토요일 저녁을 택일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제사를 지내는 경우는 주부의 양해가 있어야 가능하다. 모처럼 쉬는 주말에 제사음식 준비하랴, 손님치르랴 신경을 많이 써야 하기 때문에 현대의 도시 주부들은 제사를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득히 간단하게 제수를 준비하고, 같이 모여 저녁을 함께 먹는 정도로 의미가 축소되었다. 또한 한국사회의 기독교화가 제사문화 퇴조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조상제사의식을 우상숭배의 하나로 가르쳤다. 그래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사지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나마 타협해서 하는 방법이 제사상은 준비하되 절은 하지 않고 추모예배만 드리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봄, 가을에 모시는 시제도 마찬가지다. 음식준비를 해야하는 여자어른들이 별로 없고 계신다 해도 다 늙으셔서 일하시기가 어렵다. 그리고 시제에 참석하시는 분들도 다 노인분들 뿐이다. 시제지내는 날이 평일이라면&amp;nbsp; 휴가를 내야 하는데 그런 정성은 찿기 어렵다. 그래서 제사문화나 시제, 성묘문화는 시간이 갈수록 없어질 수 밖에 없다. 그와 더불어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 친척간의 교류, 유대강화는 옅어지고 개인화되어 도시의 소시민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4219280.jpg&quot; data-origin-width=&quot;900&quot; data-origin-height=&quot;506&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dLbWnW/btsz87RKZI5/d4FRfME5RFetRlsbWCrLM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dLbWnW/btsz87RKZI5/d4FRfME5RFetRlsbWCrLM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LbWnW/btsz87RKZI5/d4FRfME5RFetRlsbWCrLM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dLbWnW%2Fbtsz87RKZI5%2Fd4FRfME5RFetRlsbWCrLM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900&quot; height=&quot;506&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4219280.jpg&quot; data-origin-width=&quot;900&quot; data-origin-height=&quot;506&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역사 문화</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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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8 Oct 2023 17:52:5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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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목포는 맛의 도시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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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8298927048.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9PHK/btsAamnpLSg/78VbijnlqkKQ222Dbs9Rx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9PHK/btsAamnpLSg/78VbijnlqkKQ222Dbs9Rx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9PHK/btsAamnpLSg/78VbijnlqkKQ222Dbs9Rx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9PHK%2FbtsAamnpLSg%2F78VbijnlqkKQ222Dbs9Rx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600&quot; height=&quot;901&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8298927048.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목포는 항구&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목포는 항구다'라는 노래가 있었다.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아래 갈매기 우는~' 이렇게 시작되는 일제 말기의 트롯트 가요다. 이난영씨가 이 노래를 가장 멋들어지게 부른다. 기적도 울고 갈매기도 울고 똑딱선도 울고....노래는 부르는 이도 듣는 이도 가슴아픈 사연들이 절절해서 아마도 함께 우는 것일 것이다. 10대 소녀시절 유랑극단 가수로 출발하여 시린 가슴들을 달래주던 가수, 이 노래 중간에 한국전쟁당시 북으로 끌려가서 다시는 못 만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사설을 들으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린시절에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뭐 그런 당연한 소리를?' 했었는데, 나이 들어 세상풍파를 겪고나서 이 노래를 들으니 시대의 아픔과 더불어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듣게되면 막걸리라도 한사발 하지 않을 수 없게 기분이 멜랑꼴리 해진다. 한국 지도에 조금이라고 관심이 있다면, 목포가 항구라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한반도 동남쪽 맨 끝자락에 목포가 있다. 유달산에 올라 바라보면 주변 바다에는 무수한 크고 작은 섬들을 거느리고 있는 곳이 목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4시간이상 달려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영광, 함평, 무안을 거쳐 가다가 보면 목포에 도착한다. 서해안 고속도로 끝이며, 호남선 철도의 마지막 역이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해산물 천국&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목포는 영산강 하구를 거쳐 다도해에 나가는 길목이라서 해산물 생산이 풍부하다. 그 중에서 제일먼저 생각나는 해산물은 홍어다. 특히 흑산도 홍어! 잘 삭인 홍어를 고추가루 섞은 굵은 소금에 찍어서 먹으면 시큼한 홍어 본연의 맛이 일품이다. 소금은 오랜기간 간수를 뺀 천일염이면 더욱 좋다. 홍어삼합이라면 홍어를 돼지고기 삶을 것과 함께 잘 숙성된 신 김치에 싸서 먹는 것인데, 이 맛도 좋지만 아무래도 홍어만 소금에 찍어 먹느니만 못하다. 홍어 본연의 맛이 김치의 신맛이나 돼지고기의 기름진 맛에 섞여 버리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해산물은 낙지다. 서해바다 뻘에서 사는 세발낙지는 그 쫄깃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살아 움직이는 낙지 그대로를 참기름 장에 찍어서 먹으면 낙지다리의 빨판이 입술이나 얼굴 따위에 달라붙는데 그것을 떼 내며 먹는 재미도 있다. 좀 잔인하기는 하다. 낙지를 도마에 놓고 탕탕 쫏아서 거기에다가 품질좋은 육회를 섞어서 먹어도 좋다. 낙지 육회는 목포, 무안지방에서 처음 맛보았는데 그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밖에도 문저리 무침, 백합탕 등 다양한 해산물 먹거리가 있다. 홍어, 문어, 낙지, 송어 등 타 지역에서도 즐길 수 있지만 목포에서는 그 요리법이나 손 맛이 특별하다는 느낌이 든다. 조미료의 조합, 함께 나오는 밑반찬의 다양성 및 깊은 맛 등은 목포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 그래서 목포의 해물요리는 특별하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좋은 사람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무리 맛있고 좋은 음식이라도 함께하는 사람이 좋아야 더 맛있다. 좋은 사람이란 우선 뜻이 맞아야 한다. 살아가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면 대화가 재미 있을 수가 없다. 게가다 음식에 대한 기호가 비슷하면 더욱 좋다. 나는 해산물을 먹고 싶은데 육고기를 고집한다든지 하면, 음식을 함께 즐기기 어렵다. 제일 좋은 경우는 무엇이든 즐길줄 아는 경우가 아닐까? 바다나 육지나 하늘에 나는 새 종류나 나름대로 특색과 맛이 있으니 그것을 즐길 줄 알면 되는 것이다. 좋은 요리를 먹을 때는 술을 곁들이면 흥취가 더 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알코올을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사람이면 금상첨화다. 술을 마시면 긴장이 풀리고 서로의 마음 깊은 속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하루저녁 함께 먹고 나서는 십년지기 만큼 친한 친구가 되기도 한다. 음식을 먹을 때에는 좋은 이야기거리가 있는 것이 좋다. 그냥 묵묵히 음식만 먹는다면 참 맹숭맹숭할 것이다. 물론 정치적, 종교적 문제 등 민감한 주제는 반드시 피할 일이다. 그래서 옛이야기, 그 고장의 노래, 역사 등을 주제로 삼으면 참 좋다. 내가 아는 목포 친구들은 위에 언급한 좋은 사람으로서의 덕목을 모두 갖췄다. 게다가 오래된 도시에 사는 사람들답게 예술에 조예가 깊다. 육자배기 등 남도 전통음악도 좋아하고 또 목포의 눈물같은 트로트도 좋아한다. 그리고 미술작품도 좋아해서 음식점 어디를 가도 항상 동양화나 서예작품 한 개 이상씩 걸려 있는 곳이 목포이다.&amp;nbsp; 음악, 미술 등 예술을 아는 사람들이 사는 곳, 목포에서 남도의 맛있는 음식을 맛보시기를 추천드린다.&lt;/p&gt;</description>
      <category>남도음식</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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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6 Oct 2023 15:06:4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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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평화의 소녀상, 전쟁 중 국가에 의한 성 착취 반대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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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7783970705.jpg&quot; data-origin-width=&quot;901&quot; data-origin-height=&quot;1600&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rNrRP/btsAfDuMFtJ/lMyyilE3PtfS6Fe4ryLkN0/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rNrRP/btsAfDuMFtJ/lMyyilE3PtfS6Fe4ryLkN0/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rNrRP/btsAfDuMFtJ/lMyyilE3PtfS6Fe4ryLkN0/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rNrRP%2FbtsAfDuMFtJ%2FlMyyilE3PtfS6Fe4ryLkN0%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901&quot; height=&quot;1600&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7783970705.jpg&quot; data-origin-width=&quot;901&quot; data-origin-height=&quot;1600&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평화의 소녀상&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들을 기리기 위한 조형물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 의한 야만행위에 항의하기 위한 1000번째 수요 집회인&amp;nbsp; 2011년 12월 14일에 일본 대사관 앞에 처음으로 설치 되었다.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가 되신 분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할머니 들이다. 빈 의자는 고인이 되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자리이며, 그들이 꽃다운 나이에 끌려갔으므로 소녀로 표현되었다. 소녀는 한복 치마 저고리를 입고 있으며 의자에 단정하게 앉아있다. 얼굴은 둥글고 쌍꺼플은 없으나 일자로 굳게 다문 입과 주먹진 손은 결연한 의지, 저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눈빛은 똑바로 상대방을 처다보면서 '너희들이 한 행동을 봐라'하며 반성을 촉구하고 있는 듯 하다. 단발머리의 끝을 자세히 보면 가지런하지 않은데 이는 일본군에 의해 댕기머리가 강제로 잘려나간 것을 의미한다.&lt;span&gt; 소녀는 맨발이며 뒷꿈치를 들고 있다. 신발도 못신고 급하게 끌려왔고, 땅에 온전하게 발 디디며 뿌리내리고 살 수 없었던 위안부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소녀의 왼쪽어깨에 새가 한마리 앉아 있다. 하늘과 인간세계를 매개하는 새, 하늘을 자유롭게 날으며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로 생각되었다. 소녀상 바닥의 그림자는 할머니 모습이고 나비가 한마리 날고 있다. 소녀가 세월에 따라 할머니가 되고, 나비는 환생과 꿈을 표현하고 있다. 이 조형물을 보면 전쟁과 인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고, 할머니들의 꿈많았을 소녀시절이 일본군에 의해 무참하게 짙밟힌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척 아프다.&lt;/span&gt;&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일제의 만행&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일본군 위안부란 제 2차세계대전이 한참일 때,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각국에서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끌려가 위안소에서 성노예를 강요당한 젊은 여성들을 의미한다. 당시 일본정부는 일본군의 사기진작과 성병예방이라는 명목하에 이러한 만행을 저질렀다. 이렇게 젊은 여성을 위안부로 끌고 간 사실, 즉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중국, 핀리핀, 동남아시아 등 많은 나라에서 조직적으로 시행되었음이 무수한 증언 또는 문서로 증명되고 있다. 일본군 70명당 1명의 위안부가 필요하다는 일본정부의 문서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쟁 막바지인 1937중일전쟁부터는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들을 강제로 징집하여 전쟁터로 내모는 것이 더욱 심해졌다. 우리나라의 젊은 학생들을 학도병으로 끌고가고, 꽃같은 소녀들로 위안부로 끌려갔다. 이 야만적 행위에 대한 역사적 증거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가해자인 일본은 위안부의 존재를 아직도 공식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국가차원에서 시행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하거나 그러한 사실 자체를 부정하여 피해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아직도 일본정부가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서 공식적인 사과도 없고 피해보상 없다. 그 사이에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가 젊은 청춘시절을 희생당했던 분들은 한 분 두 분 고인이 되어가고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위안부 문제 극복&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러한 잔악하면서도 반 인류적 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의미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평화의 소녀상은 우리나라 전국적으로 124개(2019년 현재)가 설치되어 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 그렌데일, 독일 베를린 등 외국에도 많이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전쟁범죄 행위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전쟁은 인류역사상 많이 존재했고 지금 이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국가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성 착취는 일본군 위안부 사례가 유일한 것 같다. 세계적으로도 위안부 문제는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않될 인류 보편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amp;nbsp; 선진 외국에도 많은 숫자의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것이다. 단일 조형물로서 이렇게 많이 설치된 사례는 평화의 소녀상이 으뜸이라고 생각된다. 전쟁속에서 사회적 약자, 어린이와 여성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를 이 조형물이 잘 표현하고 있고 우리는 이 조형물을 통해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의 사건이고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실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면 위안부같은 만행이 되풀이될 것이다. 아무리 부끄럽더라도 명백하게 밝혀진 사실에 대하여 철저하게 반성하며, 피해자 보상 등 책임있는 조치를 철저하게 이행하고, 다시는 재발되기 않도록 대책을 강구하는 것에서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극복될 수 있다.&lt;/p&gt;</description>
      <category>역사 문화</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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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Oct 2023 11:02:3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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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무장지대(DMZ)에서 평화와 통일을 빌어보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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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550&quot; data-origin-height=&quot;344&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uT22S/btsyMc7TVMm/EC3zDpTQvR4YBambx8fgO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uT22S/btsyMc7TVMm/EC3zDpTQvR4YBambx8fgO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uT22S/btsyMc7TVMm/EC3zDpTQvR4YBambx8fgO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uT22S%2FbtsyMc7TVMm%2FEC3zDpTQvR4YBambx8fgO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550&quot; height=&quot;344&quot; data-origin-width=&quot;550&quot; data-origin-height=&quot;344&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DMZ가 평화와 자연을 보호하는 중&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국 비무장지대(DMZ)는 한반도를 동해에서 출발하여 서해까지 가로지르며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는 땅으로서, 분단과 군사적 긴장을 상징하는 가슴 아픈 장소다. 한국전쟁을 정전하는 휴전(1953. 7.27일 합의)선은 길이 약 248킬로미터(155마일)인데, 이 휴전선으로 부터 2Km위쪽은 북방한계선, 2km아래는 남방한계선으로 이 사이 폭 4km(2.5마일)의 땅이 DMZ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견고하게 요새화되고 면밀히 감시되는 국경 중 하나이며, 남북을 분리하는 완충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비무장지대의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반도가 38선을 따라 소련이 진주한 북쪽과 미국이 진주한 남쪽의 두 점령 지역으로 나뉘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분단은 단일 정부 아래 통일을 염두에 둔 일시적인 것이었지만, 냉전이 심화되면서 소련의 지원을 받는 북쪽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남쪽의 이념적 차이는 점점 더 고착화되었고, 남한과 북한에 각자 정부를 수립하게 되었다.&amp;nbsp;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는데 3년간 지속되어 엄청난 파괴와 인명 손실을 초래했다. 1953년 정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적대 행위가 공식적으로 중단되었지만 평화 협정이나 한반도 통일로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DMZ에는 군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수십 년 동안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환경이 보존되어 있다. 그 결과 야생동물과 생물 다양성이 잘 보존된 장소가 되었다. 수많은 희귀종과 멸종 위기에 처한 종들이 이곳에 서식하며 인간의 간섭이 없이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비무장지대는 지정학적으로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지만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 되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분단의 원인을 알아야 통일 방법도 안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국분단은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과 역사적 사건의 연속으로 인해 발생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주범중 하나인 일본제국이 1945년 연합국에 항복함으로써 한국이 해방되었다. 이후 한반도의 일본군 무장해제을 위해 위도 38도선을 기준으로 위쪽은 공산주의 소련군이 남쪽은 자유주의 미국이 진주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분단의 근본 원인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화에 원인이 있다. 이러한 역사가 없었다면 한반도가 분할되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둘째, 38선으로 나눠 남북에 다른 나라 군이 진주한 것. 한반도를 나눌 것이 아니라 일본을 나줘서 진주했어야 했다. 독일의 경우 동서독으로 나눠서 나찌독일을 무장해제 하지 않았는가? 왜 침략국이 아닌 피해국을 분단시켰는지 이해가지 않는 사태이다. 셋째, 한반도 정치세력이 좌파와 우파로 분열되어 있었다. 민족통합을 우선하여 뭉첬더라면 분단은 없었을 것이다. 넷째, 중국의 공산화. 중국대륙이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에 장악되었다면 북한의 공산화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다섯째, 한국전쟁의 허무한 결말. 이 정도 큰 전쟁 피해를 봤으면 분단문제가 극복되었어야 한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되었어야 했다는 말이다. 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국토파괴, 수많은 무고한 생명 죽음만 초래하고 한반도 분단만 더욱 고착화 되었다. 위에 정리한 분단 원인은 역사를 보는 시각에 따라서, 각 국가나 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의 냉각이 더욱 심화되었고, 아직도 한반도는 아산가족의 아품, 문화 및 경제적 불리, 정보의 차단, 남북한 군사적 대치로 인하 경제적 인적손실 및 군사적 긴장 등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DMZ가 사라지는 그날까지&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우리 민족에게 남북통일은 한반도 분단 해소와 평화 구축을 위해 필수목표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레벨에서 노력과 협력이 필요하다. [정치적 대화 강화]가 필요하다. 남북 정상 간의 대화를 지속하고 확대하여 신뢰와 협력을 증진시켜야 한다. 북한은 핵개발의 야욕을 버리고, 민족통일을 위해 긴장완화를 위한 조치와 안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경제 협력과 통일 준비]를 하자. 경제적 상호협력을 강화하고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데 노력해야 한다. 통일을 대비한 구체적인 경제 계획과 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것이 급선무다. [역사 문화 교류 강화]하여야 한다. 남북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협력 프로젝트를 많이 개발하여 구체적으로 실행하여야 한다. 이산 가족들 간의 연락과 교류를 자유롭게 하여 문화와 감정적 연결을 회복하여야 한다. [국제 사회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남북통일의 지지와 지원을 얻어야 한다. 평화 프로세스에 대하여 국제적 지지를 확보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하여야 한다. [교육 및 정보 교류]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남북 간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여 상호 이해와 문화 교류를 증대시켜야 한다. 정보 흐름을 활성화하여 북한 주민들에게 현대 세계에 대한 정보에 접근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비핵화와 안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력을 강화하고 국제적 지지를 확보하여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 의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남북통일에 대한 국민 의식 개선을 촉진하는 교육 및 정보 캠페인을 실시하여야 한다. 남북 국민들 간의 통일에 대한 열정과 참여를 끌어올리는 활동을촉진하여야 한다. [평화프로세스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자. 지속적인 외교 노력을 통해 남북통일의 핵심 원칙과 방향을 명확히 하고 추진하여야 한다. 협상과 타협을 통해 실질적인 결과를 얻고, 남북통일을 점진적으로 달성해 나가야 한다. [지속성과 인내]가 필요하다. 남북통일은 오랜 역사와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로 가득 차 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결의와 끈기를 유지해야 한다. 남북통일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지만, 한국과 국제사회가 함께 노력하고 협력하면 달성 가능한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국민 개개인이 통일을 위해 할 수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겠다. 임진각 DMZ에 놓여 있는 이 철마가 남북으로 자유롭게 달릴 수 있는 그날을 기원한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7775773837.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pP6Vp/btsz85z00MF/kWgao7fWkcoNlMcDG2qNM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pP6Vp/btsz85z00MF/kWgao7fWkcoNlMcDG2qNM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pP6Vp/btsz85z00MF/kWgao7fWkcoNlMcDG2qNM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pP6Vp%2Fbtsz85z00MF%2FkWgao7fWkcoNlMcDG2qNM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600&quot; height=&quot;901&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7775773837.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역사 문화</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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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0 Oct 2023 13:37:5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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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드리는 남북 통일 기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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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7550624862.jpg&quot; data-origin-width=&quot;600&quot; data-origin-height=&quot;337&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cObOR/btsAaYs5z0c/mcMjkDG7moMCaVP7JZ5rD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cObOR/btsAaYs5z0c/mcMjkDG7moMCaVP7JZ5rD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cObOR/btsAaYs5z0c/mcMjkDG7moMCaVP7JZ5rD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cObOR%2FbtsAaYs5z0c%2FmcMjkDG7moMCaVP7JZ5rD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337&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7550624862.jpg&quot; data-origin-width=&quot;600&quot; data-origin-height=&quot;337&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남북 합작품&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파주군 탄천면 성동로 111번지에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과 '민족화해센터'가 있다. 자유로를 달리다가 성동 IC에서 빠져서 파주시청쪽으로 가다가 두번째인 헤이리 예술마을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갈 수있다. 성당에 들어서면 한옥식 2층 지붕건물이 눈에 띈다. 성당 내부에 들어가면 제대 주변의 하단벽이 한옥집 나무로 만든 창호문으로 둘러져 있고 그 윗단에 유리 모자이크 화를 볼 수있다. 예수님 십자가 위쪽 중앙에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아 계시고 좌우로는 한복을 입은 남녀 순교자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 왕께서 한반도에 평화를 선포하고 계시고 남북의 순교자들이 전구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 성당은 한반도의 평화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교육하는 장소를 마련하자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제안으로 1990년대부터 건립이 준비되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자신의 참회와 속죄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건물의 외부나 내부가 모두 한옥식으로 지어져 있어서 무척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성당의 외관은 평안북도 신의주 진사동성당의 옛 모습이다. 독일과 미국에 남아있던 사진자료를 토대로 당시의 벽돌크기를 역으로 계산하여 설계하여 지었다고 한다. 성당의 내부는 함경남도 덕원에 위치하였던 베네딕도 수도원 대성전 내부모습을 토대로 꾸며졌다. 민족화해센터는 평양 외곽 서포에 있던 메리놀 선교회 본부 건물을 복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전쟁 전의 모습일텐데 북쪽의 원 건물들이 지금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2006년 4월에 착공미사봉헌 및 기공식, 2008년 8월 완공, 2013.1월 참회와 속죄의 성당과 민족화해센터 소유 및 관리권을 서울대교구에서 의정부 교구로 이관하였으며, 2018년 6월 25일에는 북한지역 순교자들을 위한 순례지로 선포되었다. 한국전쟁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한반도에 전쟁이 아닌 진정한 평화가 함께하기를 모두가 함께 기도하는 성당이 되었으면 좋겠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자생적 천주교회 탄생, 신앙의 기적 !&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왜 북쪽에서 먼저 성당이 건축되었을까? 당연히 천주교가 육로로 북쪽의 중국을 거쳐 들어왔기 때문이다. 만일, 남쪽 바다를 통해 들어왔다면 이양선을 타고 온 상인이나 군인들이 들여왔을 테니 스스로 받아들인 조선천주교 전통은 세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천주교는 본래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조선후기 실학자들에 의해 도입되고 연구되었다가 결국 종교로 정착하는 과정을 거쳤다. 외국의 무력이나 강압에 의해 강요된 믿음이 결코 아니었다. 스스로 사회변혁의 한 방편으로 천주교 교리를 함께 공부하면서 매료되어 신앙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도입 초창기에는 신부도 없이 신도들끼리 예배를 봤으며, 대표를 중국에 보내어 세례를 받고 오게 하기도 하는 등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도 한번 신앙인이 된 후에는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그 신앙을 지켰다. 천주교 교리는 많은 부분 조선 유학전통과 맞지 않아서 보수 유학자들이나 정치가들에게 혹독하게 여러번 박해를 받았다. 특히 조상에 봉제사하는 것을 충효의 기본으로 삼던 사회에서 제사를 부정하고 신주를 없애는 것은 용납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중앙정부 차원 박해을 받을 때는 배교를 강요당하고 거절한 경우에는 사형을 당하였다. 그 당시 목숨으로 신앙을 지켰던 분들이 후에 성인 성녀로 축성되었다. 1984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으로 한국에 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때 돌아가신 한국순교복자 103위를 성인 성녀로 축성한 것이다. 이렇게 자생적으로 천주교를 믿고 목숨으로 신앙을 지킨 사례는 한국천주교가 유일하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남북 믿음 공동체를 복원해 주소서&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지금도 한반도는 한국전쟁이후에 휴전상태로 남아있다. 정전협정만 있고 평화협정이나 상호불가침조약체결 단계까지 가지 못하였으니 한반도는 아직 전쟁중인지도 모른다. 남과 북에 사는 우리는 공동의 조상과 역사를 가진 동포요 민족이다. 언어나 생활방식도 똑같다. 아직도 남북분단 이래로 가족이 남과 북으로 헤어져서 오랬동안 만나지 못한 분들이 많이 있다. 이산가족 1세들은 연세가 많이 되셔서 살아계실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고향땅을 밟아보고, 일가친척과 부모형제 상봉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남과 북이 지금처럼 서로 왕래하지 않고 적대시하며 오랜시간 보낸다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남이 될지도 모른다. 세계 어느 곳에 이와 같이 아품과 서러움을 주는 곳이 있는가? 나라가 분단되었던 독일, 베트남은 벌써 통일을 달성하였다. 우리도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해서 하루빨리 하나가 되어야 한다.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왕래가 가능하고 경제활동을 함께 하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남북 믿음 공동체의 복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이렇게 크고 중요한 의미가 있다. 참회와 속죄는 내가 먼저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말자. 남에게 먼저 하라고 강요해서는 않된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려면 북의 잘못지적이나 회개를 먼저 요구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잘못을 반성하고, 통일을 위해 뭘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실천하여야 하겠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7550624796.jpg&quot; data-origin-width=&quot;600&quot; data-origin-height=&quot;337&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xyyOx/btsz6lJVhIE/TlTqT2MOb75Jz6wXxmbJp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xyyOx/btsz6lJVhIE/TlTqT2MOb75Jz6wXxmbJp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xyyOx/btsz6lJVhIE/TlTqT2MOb75Jz6wXxmbJp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xyyOx%2Fbtsz6lJVhIE%2FTlTqT2MOb75Jz6wXxmbJp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337&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7550624796.jpg&quot; data-origin-width=&quot;600&quot; data-origin-height=&quot;337&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경기도</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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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8 Oct 2023 05:54:2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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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심곡서원, 정암 조광조의 개혁과 좌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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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심곡서원_전경 (1).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1200&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9AV88/btsAaGMC5zY/uiLKeLdWafLGlo9R7BKFY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9AV88/btsAaGMC5zY/uiLKeLdWafLGlo9R7BKFY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9AV88/btsAaGMC5zY/uiLKeLdWafLGlo9R7BKFY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9AV88%2FbtsAaGMC5zY%2FuiLKeLdWafLGlo9R7BKFY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600&quot; height=&quot;1200&quot; data-filename=&quot;edited_심곡서원_전경 (1).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1200&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심곡서원에 배향된 정암과 학포선생&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서울에서 멀지않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에 가면 심곡서원이 있다. 서원은 사설교육기관(정부기관에서 설치한 것은 향교)으로서 성현에 대한 제사도 지내며 또한 지방유지들의 모임 공간이기도 했다. 심곡서원은 정암 조광조 선생과 학포 양팽손 선생을 배향하고 있다. 1650년(효종 1년)에 유림들의 뜻을 모아 정암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를 모셨었다. 이곳에 서원을 세우자는 논의가 일찍부터 있었는데 이는 선생의 무덤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한양조씨 조광조 일가의 선영이기 때문에 정암선생의 부모 형제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있다. 초기에는 재원이 부족하여 포은 정몽주를 배향하는 충렬서원(용인시 모현면 소재)에 잠시 모셨다가, 심곡서원 건립 후 모셔오게 되었다. 충렬서원에 포은과 함께 잠시 배향된 인연은 우리나라 성리학 도통이 '포은 정몽주--&amp;gt;야은 길재--&amp;gt;강호 김숙자--&amp;gt;점필재 김종직--&amp;gt;한훤당 김굉필--&amp;gt;정암 조광조'로 이어졌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설립과 동시에 '심곡서원'이라는 사액(임금이 서원의 이름을 지어 그것을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을 받았고, 나중에 학포 양팽손을 함께 배향하였다. 학포 양팽손은 정암 조광조와 함께 과거에 합격하고 벼슬을 함께하며 학문을 토론하던 동지였다. 정암선생이 기묘사화로 실각하자 당시 임금인 중종에게 상소문을 올려 정암선생 등을 변호하였으나 이일로 삭탈관직되었다. 고향인 능주로 귀향하여 학포당이라는 작은 집을 짓고 독서로 소일하였기 때문에 호가 학포인 것이다. 특히 능주로 유배온 정암 조광조 선생과 매일 경론을 탐구하며 지내다가, 불행히 정암선생이 사약을 먹고 돌아가시자 어명을 어기고 시신을 수습하여 가매장하였으며 나중에는 용인 선영으로 묘를 이장해 주었다. 정암선생이 돌아가신 후로는 학포선생도 다시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심곡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존속하였고 개화기에는 학교로 쓰이기도 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정암 조광조, 도학정치의 나래를 펴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정암 조광조 선생은 사림파의 정계진출을 확립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대사헌으로서 현량과를 처음 실시하여 소장학자들을 뽑아 요직에 채용, 추천하여 사림파가 중앙 정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양조씨는 태조 이성계의 함흥지방 군벌시절부터 함께한 개국공신 집안이므로 정암선생은 훈구파 출신이라고 할 수 있다. 사림파인 김굉필이 무오사화(1498년, 연산군 4년)로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어 있었는데, 마침 선생의 부친이 그곳에 벼슬을 하고 있어서 정암선생이 김굉필에게서 학문을 배우게 되었다. 이로써 정암선생은 사림파와 깊게 학연을 맻게 되고 사림으로 불리게 되었다. 정암선생은 중앙정계에 진출한 후 개혁정치를 시행하였다. 유학의 정통으로 돌아가 바른 정치를 실천하자는 것이 핵심요지였다. 스스로 유교의 가르침을 엄격히 실천하였고 관직에 오른 후에는 임금과 백성을 교화하여 유교적 이상 정치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선생은 조선의 도학 및 실천유학의 시조로 추앙되었고 율곡이이를 비롯한 후대 학자들의 모범이 되었다. 비록 37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조선의 정치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부패하고 침체된 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열망하던 신진 사림들에게는 이념과 실천을 겸비한 개혁의 지도자였던 것이다. 신진적인 개혁정책(과거제, 향약실시,권력자의 토지 및 노비 몰수 등)이 국왕 중종의 적극적인 지원아래 추진되었던 것이다.&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기묘한(?) 기묘사화로 좌절된 개혁&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기묘사화는 1519년(중종 14년)에 중종과 훈구세력이 조광조 등 핵심세력을 몰아내여 죽이거나 유배보낸 사건이다. 사림파의 세력확장과 위훈삭제에 대한 불만이 주요 발생 이유였다. 위훈삭제란 중종반정(1506년,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왕으로 세운 사건)의 공신중에 공로가 과대평가된 거짓 녹훈자가 있음을 비판하고 결국 105명 공신 중에 76명을 공신훈적에서 깍아 버린 사건이다. 이는 중종반정으로 비대해진 훈구파 권신, 척신들의 전횡을 타파하고 강력한 왕권 확립을 위한 것으로 중종이 바라던 바였다. 사실, 중종이 이 훈구파를 다스리기 위해 신진 사림인 정암선생을 중용하여 개혁을 맡긴 것이었다. 그런데 중종은 훈구파대신에 사림파가 또 다른 세력으로 부상하는 것을 경계, 즉 정암선생 일파의 개혁을 배신한 것이 기묘사화의 핵심 원인인 것이다. 정암선생이 기묘년(1519년) 11월16일 옥에 갖혔고 화순 능성으로 떠났다가 동년 12월 20일에 사약을 받았으니 유배 한 달만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정암선생이 옥에서 중종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하면서 하신 말씀에서 사건의 전말을 이해할 수 있다. '신은 뭇 사람과 뜻이 어긋나더라도 임금이 계신 것만 믿고 정책을 펴 왔습니다. 친히 심문하신다면 만 번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중종은 정암선생을 만나주지 않고서, '붕당을 만들고 국론과 조정을 어지렵혔다'는 죄목으로 단죄한다. 기묘사화는 중종의 배신이 주요원인이라 할 수있으나 신진 변혁주체세력이 대부분은 젊고 정치적 경륜도 일천하였다는 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급진적이고 다소 과격한 개혁추진은 노련한 훈구세력의 반발을 샀고, 조금이라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 모두를 적으로 만듦으로써 반대세력이 많아진 것이었다. 정암선생 사후에 중종말년부터 조광조에 대한 재평가와 관직 복구요청이 지속적으로 이루어 진다. 선조 즉위한 그 해인 서기 1567년 4월에 기대승 등의 상소로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선조 3년에 문정이라는 시호가 주어졌고, 선조 38년에는 심곡서원터에 사우(신주를 모셔놓은 집)를 만들었다. 1650년 사액서원이 된 이후에 심곡서원은 충렬서원과 함께 기호유학(율곡 이이의 주기론을 주로 신봉한 성리학파, 노론의 핵심세력)을 이끄는 서인들의 본거지가 되었다.&lt;/p&gt;</description>
      <category>경기도</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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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7 Oct 2023 05:10:3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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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 삼전도비, 청나라에 항복한 굴욕의 기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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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7366827478.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887&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iS8GT/btsz9m9iQVl/djDtJHkErWKDBi1ifnE7x0/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iS8GT/btsz9m9iQVl/djDtJHkErWKDBi1ifnE7x0/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iS8GT/btsz9m9iQVl/djDtJHkErWKDBi1ifnE7x0/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iS8GT%2Fbtsz9m9iQVl%2FdjDtJHkErWKDBi1ifnE7x0%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887&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7366827478.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887&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서울 삼전도비, 잊지못할 치욕의 증거&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서울 잠실 석촌호수 부근에는 삼전도비가 서있다. 높이 3.95m, 폭 1.4m이다. 정식명칭은 서울 삼전도비 또는 대청황제공덕비이다. 우리나라 역사유적인 효자비나 열녀문 등을 보호하는 전통방식과 다르게 이 비석은 철제 기둥과 유리 지붕으로 보호되어 있다. 비석이 비바람에 의해 마모 침식되는 것을 방지할 뿐이지 소중한 문화재는 아니라는 숨은 뜻이 있어서 이렇게 취급되는 것 같다. 삼전도비 옆에는 받침대 하나가 비석없이 놓여있다. 청나라 측에서 처음 만든 비석 받침대를 맘에 안들어 해서 새로 제작하였던 것, 즉 갑질을 한 흔적이다. 비문은 1637년에 도승지 및 예문관 제학이었던 '이경석'이 지었고 글씨는 한성판윤이면서 한석봉의 제자인 '오준'이 썼다. 비석 앞면의 왼쪽에는 몽골글자, 오른쪽에는 만주글자, 뒷면에는 한자로 쓰여져 있다. 청나라에 항복하게 되는 사건, 즉 병자호란의 진행상황과 비석건립과정은 다음과 같다. 서기 1636년(인조 14년) 12월 6일 청태종은 12만 대군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침공을 시작하여, 12월 15일에 한양이 함락된다. 인조는 당초 강화도로 도망가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남한산성으로 피난하는데 1637년 1월 22일 강화도가 함락되자, 1월 30일 삼전도에 나가 청태종에게 항복을 했다. 청나라는 1637년 3월에 대청황제공덕비를 세우라고 명령을 하고, 동년 11월3일 비석을 세울 단을 준공하자, 동년 11월 25일에는 사신(마부대)을 보내 검수하게 한다. 1639년(인조 17년)에 비석이 완성되었다.&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삼전도 굴욕의 날 항복의례&lt;/h2&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남한산성에서 공방전이 이루어지는 동안 막후에서는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조선 정부의 치욕은 오랑캐에 머리를 조아리고 군신의 관계를 맻은 것이며 명나라와의 관계를 끊은 것이었다. 인조는 1637년 1월 30일 용포(임금의 옷)를 벗고 청색 옷으로 갈아입은 후 어가를 타지도 못하고 백마를 타고서 서문을 나와 삼전도로 향하였다. 신하이므로 용포를 입을 수 없었고, 죄를 지었으니 정문으로 나올 수 없었으며, 항복을 하였으니 백마를 탄 것이었다. 인조는 세자와 대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청나라 군사들의 호령에 따라 '삼궤구고두례'를 행하였다. 당시 조선정부가 항복협상을 잘 했는지 항복의 형식이 그리 비참한 것은 아니었다. 항복의식으로 삼궤구고두례를 행하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절을 세번하고 머리를 아홉번 조아리는 것인데, 이것은 신하 나라가 큰 나라를 만났을 때 행하는 예법이었다. 중국의 전통적인 항복의식은 함벽여츤(銜壁輿櫬, 옥을 입에 물고 관을 등에 진다는 의미)이었다. 항복하는 나라의 인장을 바치고, 아울러 스스로 시체에 입히는 옷을 입으며, 머리를 풀어 헤친 후 관을 등에 지고 항복하는 의식인 것이다. '머리를 풀어헤친다'는 것은 '죄인이나 다름없다'는 의미이고, '관을 등에 졌다'는 것은 '자신을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인조가 함벽여츤 의식을 행하였다면 전쟁 후에 인조의 권위는 다시 세울 수 없었을 것이며 조선은 그때 멸망하였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청나라는 자국의 대외적 권위만을 확립하는데 그쳤고, 항복을 받고나서 오래지 않아 본국으로 철군하였다. 청군이 서둘러 항복을 받고 철군한 것은 당시 조선에 유행하던 천연두가 청나라 군사에게 전염되는 것을 염려한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만주족은 유전적인 특성상 조선인이나 한인보다 천연두에 취약하였는데, 청태종도 천연두 항체가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전쟁패배의 피해는 죄없는 백성 몫&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삼전도 굴욕을 계기로 조선은 청나라와 조공책봉관계를 맺게 되었다. 명나라와 단교를 하고, 왕자와 대신들을 볼모로 보냈다. 청나라의 신하국으로서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할 때는 원병을 파병하기로 약속했다. 조선의 많은 백성들이 청나라에 노예로 끌려갔다. 이러한 나라의 재앙과 백성들의 고초보다도, 소중화 사상(명나라가 망한 후 공자로부터의 유교전통을 조선이 물려받았다는 생각)에 찌든 조선 사대부들에게는 삼전도비가 치욕의 역사였다. 그 비문은 조선정부에서 써서 청나라 허락을 받았고, 조선이 자발적으로 건립한 형식이었으니, 씻을 수없는 수치였다. 어쩔 수 없이 비문을 쓴 이경석(문충공, 영의정 등 보직)이나 글씨를 쓴 오준은 죽을 때까지 후회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의 재발을 막기위해서는 그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경석이 발탁하여 성장시킨 우암 송시열을 비롯한 노론세력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구해준 은혜를 저버리고 오랑캐들에게 머리를 조아렸다고 공격하였다. 심지어 백헌 이경석 무덤앞 비석의 내용을 정으로 쪼아 파내버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인조를 이어 임금된 효종과 노론세력은 북벌을 주장하였으나, 과연 전쟁수행 능력이나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오직 그들 정파의 이익, 정권장악 유지를 위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이데올로기로 이용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결국 청나라의 선진문물, 청나라를 통해 들어올 수 있었던 서양의 과학지식을 배척함으로써 자주적 근대화 기회를 상실하는 원인이 되었다. 삼전도비는 치욕이라는 단어를 빼고는 설명이 불가능한 유적이지만 역사는 가슴아파도 되돌아 보아야하고 교훈으로 삼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벽안시 하지 말아야 할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의 중요한 장소다. 청나라 사신들은 조선에 올 때마다 이 비석을 살피는 것이 필수 코스였다. 그들에게는 영광이기도 하고 조선이 변심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척도였는지도 모른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7366827330.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887&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18NYG/btsz82QOVUs/kJYOT0Zrj32VH0xUfKiSG0/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18NYG/btsz82QOVUs/kJYOT0Zrj32VH0xUfKiSG0/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18NYG/btsz82QOVUs/kJYOT0Zrj32VH0xUfKiSG0/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18NYG%2Fbtsz82QOVUs%2FkJYOT0Zrj32VH0xUfKiSG0%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887&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7366827330.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887&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역사 문화</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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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6 Oct 2023 06:16:5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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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장준하 공원, 독립과 민주화 투사의 허망한 최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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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7362787015.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887&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8KcSE/btsAaHSgbbm/PIzY6LncGSqpjbPcCzRlJ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8KcSE/btsAaHSgbbm/PIzY6LncGSqpjbPcCzRlJ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8KcSE/btsAaHSgbbm/PIzY6LncGSqpjbPcCzRlJ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8KcSE%2FbtsAaHSgbbm%2FPIzY6LncGSqpjbPcCzRlJ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887&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7362787015.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887&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장준하 공원과 묘지&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성동리에 가면 '장준하 공원'이 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가까운 곳이라서 그 곳을 관광하고 잠시 들르기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공원이라고 해도 그리 넓지는 않은 소공원이다. 잔디밭이 아담하게 조성되어 있고 조형물에는 장준하 선생의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다. 조형물 뒷 쪽 산길을 조금 올라가면 장준하 선생 묘소가 있다. 묘소는 조그마한 돌로 만들어져 있고 묘소 주위에는 기념물들이 서있는데 여기에는 장준하 선생이 쓴 글들이 새겨져 있다. 특히, 사상계라는 잡지에 기고하신 글이 선생의 필적으로 새겨져 있는 기념물이 있어서 읽어보니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자손만대에 누를 끼치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지성일관 용왕매진하자'라고 써 있었다. 장준하 선생의 묘소 모습은 자신의 자서전 제목인 '돌베개' 비슷하였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에도 작은 넙적돌하나 놓여있는 모습이었는데,&amp;nbsp; 장준하 선생 묘소의 돌이 노무현 대통령 묘소 돌보다 크기는 좀 더 크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기반식(바둑판식) 고인돌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이 돌아가신 후 원래는 광탄면의 나사렛 묘지에 묻히셨는데 2012년 8월에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고 이장하였다고 한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일본 학도병 탈출하여 독립군에 입대&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18년 출생하셨고 1975년 8월 17일 별세하셨다. 독립운동가, 정치가, 언론인, 사회운동가, 종교인이셨다. 장준하 선생의 아버지 장석인(1901~1966)도 독립운동가이며 목사셨다. 장석인은 민주화 운동가로 유명하며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로 유명한 함석헌 선생과 동갑이고 함석헌의 장남 함국용은 장준하선생과 같은 1918년 생이므로 이들의 동지애는 남달랐을 것으로 생각된다. 장준하 선생은 세계2차대전 말기인 1944년 일본신학교에서 수학하던 중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끌려 갔다가, 6개월만에 탈출하여 독립군에 입대하게 된다. 광복군에 합류하기 위해 평생의 친구였던 김준엽 등과 함께 2,500KM를 약 7개월 동안 걸어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중경까지 갔다. 도중에 검문에 걸리지 않기 위해 중국 농부나 상인으로 변장하기도 하였다. 탈출 성공 직후에는 중국중앙군관학교 임천분교 한국광복군 간부 훈련반에 입대한다. 그러나 이곳 훈련의 한계를 느끼고 1945년 1월 30일 중경의 대한민국임시정부로 가게 되었다. 도착 후 서안의 한국광복군 제2지대 이범석 휘하에 배속되고, 유엔군 중국전구 사령부 웨드마이어 휘하에서 미국전략정보국이 주관하는 한미합작 특별군사훈련(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을 받았다. 한국 후방 침투를 목적으로 조직된 국내정진군에 자원하여 수송기를 타고 작전에 투입되었으나 일본의 항복으로 귀환하였다. 그후 1945년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비서 자격으로 귀국하였다. 1946년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하였고, 1953년에는 사상계라는 잡지를 창간하였다. 사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독립과 민주화운동가의 허망한 최후&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장준하 선생은 1961년 516군사정변이후 민주화 투쟁에 나서 여러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그가 만든 '사상계'는 군사독재시설에 참 지성으로 존경받던 월간지였다. 그는 1967년 동대문에서 제 7대 국회의원 당선되어 정치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였다. 1972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목적으로 유신체제를 수립하게 된다. 장준하 선생은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하는데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에 있는 약사봉을 등산하다가 의문의 등산사고로 사망하였다. 유신정권의 엄중한 상황속에서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운동본부 이름으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한 그 해에 의문사 한 것이다. '민주헌법을 만들고, 자유언론을 보장하라'. 유신정권에 대한 장준하 선생의 요구는 지금 시각으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장준하 선생같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우리나라가 독립할 수 있었고, 민주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덕분으로 자유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장준하 선생 사망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사인에 대한 의문점이 제기 되었으나 제대로 규명되지는 않았었다. 마지막 조사는&amp;nbsp; 2012년에 이루어 졌다. 장준하 공원묘지 조성을 위해 묘지를 이장할 때 유골검사를 하였는데 머리에서 가격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는 골절된 흔적이 없으므로 타살가능성에 무게가 더 실렸으며 2013년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타살후 추락'으로 결론내렸다. 장준하 선생의 신학교 졸업, 군 장교출신 등 경력을 감안하면 진보주의자라기 보다는 민족주의자이며 보수주의에 가까운 듯하다. 해방후 1970년대까지 군부독재에 맞서 싸운 선생의 이력으로 인해 장준하 선생의 역량이나 조국에 대한 기여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 같아 쓸쓸한 마음이 드는 여행이었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7362787077.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887&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EX9Yj/btsAaZyH6q4/M5Nlax5CDRBTaFv7887f6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EX9Yj/btsAaZyH6q4/M5Nlax5CDRBTaFv7887f6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EX9Yj/btsAaZyH6q4/M5Nlax5CDRBTaFv7887f6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EX9Yj%2FbtsAaZyH6q4%2FM5Nlax5CDRBTaFv7887f6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887&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7362787077.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887&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경기도</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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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5 Oct 2023 18:41:3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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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화청지에서 양귀비의 사랑에 망가지는 나라와 장한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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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edited_20161105_110603.jpg&quot; data-origin-width=&quot;800&quot; data-origin-height=&quot;600&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Fe39L/btsAaWPxeCi/KqQwtNVoHv5A83tiUk93U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Fe39L/btsAaWPxeCi/KqQwtNVoHv5A83tiUk93U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Fe39L/btsAaWPxeCi/KqQwtNVoHv5A83tiUk93U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Fe39L%2FbtsAaWPxeCi%2FKqQwtNVoHv5A83tiUk93U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800&quot; height=&quot;600&quot; data-filename=&quot;edited_edited_20161105_110603.jpg&quot; data-origin-width=&quot;800&quot; data-origin-height=&quot;600&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화청지, 양귀비와 당현종의 로멘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중국 산서성 서안에서 동쪽으로 30여km 떨어져 있는 여산아래에는 화청지라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 이곳은 고대 중국왕조인 주나라 시절부터 온천이 유명하였는데, 당나라시절에는 화청궁이라는 궁전이 있었다. 이 곳은 당나라 황제였던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기로 유명한 곳이다. 위 사진의 조각상은 막 온천욕을 마치고 나온 양귀비의 모습이다. 화청궁은 '안록산의 난'으로 대부분 불타 없어진 것을 청나라, 중국정부에서 약 30%만 복원하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 넓이와 화려함이 대단하니 원래 모습의 화려함은 어쨌을까 상상하기 어렵다. 서안은 당나라 시절에 장안이라고 불리었다. 장안은 유방이 세운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의 수도였다.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나라 수도 함양도 서안 근처에 있어서 오늘날 서안은 관광지로서 중국여행에서 빼놓을 수없는 부분이다. 화청궁은 현대 중국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순간인 서안사변이 일어난 현장이기도 하다. 1930년대 일본의 대륙침략에 맞서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항쟁하고 있었는데,장개석이 이끄는 중국 국민당은 공산당 홍군을 먼저 없앤 후에 일본과 싸우겠다는 전략을 수립하였다. 만주군벌의 후예인 장학량은 당시 장개석의 국민당 소속이었는데, 국내문제보다는 모두 힘을 합쳐 일본군과 싸워 이기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였다. 장개석이 전선 시찰차 서안을 방문한 기회를 잡아 장개석을 화청궁에 유폐하고 국공합작을 강요하게 된다. 결국 이 작전이 성공하여 중국 공산당은 기사회생하고 결국은 일본 패망후 중국대륙의 주인이 되었으니 시안사변은 현대 중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인 것이다. 지금도 화청궁에 가면 장개석을 유폐하였던 사무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양귀비는 동북아시아에서 미인의 대명사로 통한다. 꽃이름중에도 양귀비가 있다. 꽃이 매우 아름답지만 아편의 일종으로 순간적인 쾌락을 주지만 그 중독성으로 결국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식물이라는 점에서 보면 참 이름을 잘 졌다는 생각이 든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경국지색,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26&quot;&gt;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기는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린다. 나라를 기울어지게 할만한 미인이 경국지색인데 이로 인해 임금이 정사를 돌보지않고 사치에 빠지는 것이다. 양귀비는 원래 현종의 며느리(아들의 아내)인데 미모에 반해서 아들로부터 빼앗아 애인으로 삼은 것이니 이같은 막장드라마가 또 있을까 싶다. 양귀비를 만나기 전에는 당현종은 정치를 잘하여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누렸으나 양귀비와 사랑에 빠진 이후에는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반란이 일어나서 결국 국력이 매우 쇄악해 질대로 쇄악해지게 된다. 중국의 역사에서 여러명의 경국지색이 등장하는데 은나라를 망하게 한 달기, 주나라를 망하게 한 포사, 삼국지의 초선, 초한지 항우의 연인 우희 등. 대부분 미모의 매력으로 나라를 망하게 하거나 역사를 바꾼 경우들이다. 당현종이 양귀비를 만나기 전에 백성을 위해 힘써 정치를 했던 증거는 많다. 중앙의 유능한 관리를 지방에 도독이나 자사로 파견하고 부패한 관리는 교체하였다. 가믐에는 황궁의 식량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환관과 인척들이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여 정치가 문란해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사찰과 승려의 수를 줄이고 권력가들의 전횡을 막고 상벌을 엄격하게 하는 등의 조치로 이 시대를 '개원의 치'라고까지 부르며 중국역사의 몇 안되는 태평성대의 하나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성과가 양귀비라는 미인에 의해 허물어지고 결국 대규모 국내반란을 초래하여 당나라가 쇄락하게 되니 미인은 좀 멀리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장한가, 긴 탄식의 노래로 남아&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양귀비가 비극적으로 죽고나서 약 50년 후에 백거이이라는 유명한 시인이 있었다. 백거이가 35살에 되는 해 어느날 친구들과 놀다가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기를 화제로 삼게 되었다. 그 때 친구들은 유명한 시인인 백거이에게 그 사건을 시로 지어서 후세에 남기라고 설득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긴 시가 장한가이다. 이 시는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장은 황제와 양귀비의 만남, 제 2장은 안록산의 난과 양귀비의 죽음, 제3장은 환도후 양귀비를 그리워하는 황제의 심정, 제 4장은 도사의 환술로 양귀비의 영혼을 찾아 사랑을 맹세하나 천상과 인간세계의 차이에서 오는 아품과 한탄을 노래하였다. 7언 형식으로 총 120행에 이르는 대 서사시이다. 그중에서 마지막 네 구절은 매우 유명하여 암송하고 있으면 뭔가 깊이있는 전문가로 보일 것이므로 일독을 권한다.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amp;nbsp;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amp;nbsp;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련리지)&amp;nbsp;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amp;nbsp; 장구한 천지라 할지라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amp;nbsp; 이 슬픈 한은 끊어질 기약 없이 영원하리] 서안에 가면 장안가를 내용으로한 대형 연극을 공연한다.&amp;nbsp; 화청지를 배경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예모감독이 장한가를 연극으로 만들었다. 밤중에 어둠을 배경으로 하므로 화려한 빛과 음악이 어우러져 매우 몽환적이다. 이 연극 놓치면 후회할 관광코스중 하나이니 꼭 보고오시기를 바란다.&lt;/p&gt;</description>
      <category>역사 문화</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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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4 Oct 2023 15:54:3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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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판전 서예, 추사 김정희 선생 최후의 걸작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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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818628361.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eal0yL/btsAaZZNl0f/ayMtIQ54VSebo13wvStI31/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eal0yL/btsAaZZNl0f/ayMtIQ54VSebo13wvStI31/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eal0yL/btsAaZZNl0f/ayMtIQ54VSebo13wvStI31/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eal0yL%2FbtsAaZZNl0f%2FayMtIQ54VSebo13wvStI31%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600&quot; height=&quot;901&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818628361.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봉은사 판전 편액 서예작품 감상&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가면 코엑스 맞은편에 봉은사가 있다. 봉은사는 서기 794년(신라 원성왕)에 '견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사찰이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성종의 무덤인 선능을 관리하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와서 토지를 많이 하사받았기 때문에 은혜를 받든다는 의미의 '봉은사'로 절 이름을 고친 것이다. 조선 명종시절 문정왕후때는 승려들의 과거시험격인 승과시험을 치른 장소이기도 했다. 이러한 까닭에 현재 강남 한 복판 요지에 넓은 땅을 차지하고서 봉은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요란한 강남에 있지만 사찰 경내에 들어가면 엄숙하고 고요하다. 이처럼 도심 한 복판에 등산없이 접근가능하면서도 숲으로 어우러진 큰 사찰은 봉은사가 유일하다. 봉은사 대웅전과 판전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 편액이 걸려 있다. 서기 1856년(철종 7년)에 영기스님이 '화엄경수소연의본'의 목판을 제작했고, 그 목판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이 판전인 것이다. 판전이라고 한문으로 쓴 글씨를 감상하노라면 마치 어린아이가 쓴 것 같이 순수하면서도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것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문화재 청장을 역임한 유홍준이라는 유명한 학자가 이글씨를 평하기를 '대교약졸의 진수'라고 하였다. 대교약졸이라는 말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큰 재주를 가진 사람은 그 재주를 자랑하지 아니하므로 보기에는 서투른 것 같다'은 의미이다. 첫눈에 이 작품을 보면 조잡하고 서투른 글씨로 보이나, 오래 감상할 수록 그 작품성과 예술성이 깊이 들어나는 것이다. 봉은사 판전에 가면 오래 며물면서 감상하기를 권한다. 추사선생은 평생 벼루 10개를 밑창냈고 붓 일천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고 할만큰 피나는 노력을 한 분이다. 추사는 이 현판을 쓰고 3일 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추사 김정희 선생의 행장&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추사 김정희는 조선 후기에 금석학자, 실학자, 서예가이며 정치가이다. 1786년(정조 10년)에 태어났고 1856년(철종 7년)에 사망하였다. 추사의 고조부는 영의정, 증조부는 영조의 딸인 화순옹주와 결혼한 부마(사위), 아버지는 이조판서, 추사 본인은 성균관 대사성을 거처 병조 및 이조참판을 지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권력가이면서 유서깊은 노론집안에서 태어났다.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가면 추사고택이 있는데, 이 집은 영조의 명령으로 충청도 53개 군현이 한칸씩 분담해서 건축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추사 가문은 노론계열이기는 하지만 가풍이 붕당에 엄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추사는 16살때 청나라 연경을 출입하며 학문의 세계를 넓히던 연암 박제가의 제자가 되어 북학파 실학자가 되었다. 그 영향으로 청나라 고증학에도 흥미를 가지게 되고 금석학자가 되었다. 북한산에 있던 신라 진흥왕순수비도 추사선생이 고증해낸 역사적 성과이다. 1809년(순조 9년)에 부친 김노경을 따라 청나라 연경에 가서 학자 옹방강, 완원 등을 만나 학문에 큰 도움을 받게 되는데 옹방강은 [사고전서]를 편찬하는데 관여하였고 경학에 정통하고 문장,금석,서화,시에 능한 원로학자였다. 추사가 옹방강과 평생 교류하며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던 것은 추사 본인뿐아니라 우리나라 학문, 예술발전에 큰 행운이었다 할 것이다. 청나라의 당시 학풍은 송나라나 명나라의 성리학, 양명학을 관념적이라고 비판하며 배척하였는데, 이 영향을 받은 연암 박지원 중심의 북학사상, 청나라 고증학을 배운 추사김정희는 조선의 보수 노론출신이지만 성리학만이 진리라는 생각을 일찌감치 버리게 되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추워진 연후에 사람의 진면목을 안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840년(헌종 6년) 안동김씨 세도정치 기간에 정치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로 유배를 가게되어, 그가 63세인 1848년에야 비로소 풀려나게 된다. 이 기간동안 한국의 서법, 중국과 한국의 비문 등을 연구하여 만든 서체가 추사체이다. 유배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 저술과 작품활동을 했던 것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가면 추사가 유배시절 살았던 집과 기념관이 잘 조성되어 있다. 봄에는 제주도 고유양식의 초가집 주변으로는 추사가 사랑했던 수선화가 곱게 피어난다. 추사기념관에는 선생의 작품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어서 서예에 관심이 있는 분들의 필수 방문코스라고 생각된다. 기념관의 겉모습은 추사 선생의 작품 세한도 속의 집과 비슷하다. 세한도는 추사선생의 대표적 작품인데 초라한 집 한채와 고목 몇 그루가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이 전부이고 그림 옆에 그림을 그린 경위를 한문으로 써 놓았다. 통역관으로 청나라를 자주 드나들었던 제자 이상적이 사신으로 다녀올 때마다 귀한 책들을 구해서 추사에게 주었는데 그 답례로 그려준 그림이다. 이상적은 이 그림을 청나라에 가지고 가서 지인들에게 보여주게 되고 그 유명인사들이 세한도에 대한 글을 써주는데 이것들이 세한도에 부가되어 있다. 공자의 말씀을 모아놓은 책 논어에 '날이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는 말에서 세한이라는 말을 따 세한도라고 명명했다. 제주도에서 외롭게 유배생활을 하는 스승 김정희 선생을 잊지 않고 돌봐준 제자에 대한 고마움이 절절하게 표현된 그림인 것이다. 추사선생은 1850년에서 1851년동안 북청에서 다시 유배생활을 하게 되는데, 유배를 끝내고서도 권력에 복귀하지는 못했다. 총 12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는 추사는 아버지 묘소가 있는 과천에 은거하면서 저술, 작품활동을 하였는데 이 때 강남에 있는 봉은사를 출입하면서 판전 현판글씨 등 작품을 남기게 된 것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서울</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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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4 Oct 2023 07:43:2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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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국사, 현세와 내세로 가는 부처님 나라의 형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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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4955852.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z6oCD/btsz9WP3dqe/tFN7K8p9ONLxOaDJCdbBp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z6oCD/btsz9WP3dqe/tFN7K8p9ONLxOaDJCdbBp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z6oCD/btsz9WP3dqe/tFN7K8p9ONLxOaDJCdbBp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z6oCD%2Fbtsz9WP3dqe%2FtFN7K8p9ONLxOaDJCdbBp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394&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4955852.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불국사는 누가 언제 지었나?&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경주시 토함산 서쪽 기슭에는 유서깊은 사찰 불국사가 자리하고 있다. 불국사 창건은 2가지 다른 주장이 존재한다. 먼저, 서기 528년(법흥왕 15년)에 법흥왕의 모친 영제부인의 발원으로 창건되었으며 574년에 진흥왕의 모친 지소부인이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주조하여 봉안하였고 통일신라시대인 서기 751년(경덕왕 10년)에 당시 재상인 김대성이 크게 중수하여 탑과 돌다리 등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두번째, 우리나라의 정사 역사책인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한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김대성은 원래 모량리의 가난한 집에 태어났으나, 인연에 따라 경주시내 부자이면서 권세가인 김문양의 집에 다시 태어났고, 이 사실이 김대성이 부자집에 다시 태어난 날 하늘에서 들렸고 왼손에 전에 쓰던 이름 대성이 써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실을 알게되어 결국 김대성은 두 부모를 모시고 살게 되었다. 두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전생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건설하고, 현생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중건하였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인들이 대부분 불국사는 김대성이 창건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 설화이다. 영제부인 발원 불국사 창건설과 김대성 창건설이 이처럼 서로 일치하지 않으니 어느 것이 맞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첫번째 주장(영제부인 발원)에 매우 구체적으로 인물명과 연도가 제시되어 있어서 이 주장을 더 신뢰하게 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설화는 비 과학적이라서 믿기가 어렵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대웅전과 극락전 가는 길은 다르다&lt;/h2&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4955923.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124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DXV5Y/btsAaFUtO2g/YuEjVjOAXmYOw9PDZJWsw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DXV5Y/btsAaFUtO2g/YuEjVjOAXmYOw9PDZJWsw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XV5Y/btsAaFUtO2g/YuEjVjOAXmYOw9PDZJWsw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DXV5Y%2FbtsAaFUtO2g%2FYuEjVjOAXmYOw9PDZJWsw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1243&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4955923.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124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맨 위 사진에 보이는 다리는 대웅전 동쪽에 있는 것이 청운교-백운교 (국보 제23호) 이고, 서쪽에 있는 것이 연화교-칠보교(국보 제 22호)이다. 청운교-백운교는 자하문을 거쳐 대웅전과 연결된다. 청운교는 푸른 청년, 백운교는 흰머리 노인, 다리 아래 인간 세계에서 다리를 건너 부처님 세계로 올라가는 것을 상징한다. 연화교와 칠보교를 지나면 안양문을 거쳐 극락전으로 향한다. 이 길은 보통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다. 그래서 이 다리를 건너면 극락전에 통하는 것이다. 연화교에는 그 이름에 나타난 것처럼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나 지금은 희미하게 남아있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다보탑(국보 제20호)과 석가탑(국보 제21호)이 서 있다. &lt;span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동쪽에 있는 것이 다보탑, 서쪽에 있는 것이 석가탑이다.&lt;span&gt; 이 두개의 탑은 &lt;/span&gt;&lt;/span&gt;불국사 중건된 751년(경덕왕 10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다보탑은 과거 세계의 부처님, 석가탑은 현재 세계의 부처님인 석가모니불을 상징한다. 두 탑을 한 장소에 건립한 이유는 현재의 부처님인 석가모니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이 옳다고 증명한다는 법화경(불교경전의 하나)의 내용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위 사진은 다보탑이다.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열십자 모양의 평면기단 위에 네 방향으로 돌계단을 만들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 네모난 난간을 둘렀다. 마치 나무를 가지고 탑을 만든 것 같이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그렇다고 결코 산만하지는 않다. 1925년경에 일제는 다보탑을 완전 해체보수를 하였는데 일체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이 때, 내부에 있었을 사리 등 유물이 사라지고, 기단부에 있는 사자상이 본래 4개였겠으나 3개를 무단반출한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은 1개만 남아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사자 한마리가 무척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가탑은 불국사 3층 석탑이라고도 한다. 이 탑은 무영탑(그림자가 비치기 않는 탑)으로도 불리는데 이 탑을 지은 백제도공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의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그외, 불국사내에 있는 국보로극락전에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이 있고, 비로전에는 금동비로불좌상(국보 제26호)이 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서라벌은 부처님 나라가 되었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서라벌은 신라시대 때의 현재의 경주를 부르던 도시이름이다. 신라가 삼국시대(백제, 고구려, 신라)를 종식하고 통일을 달성하는 데는 불교가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백제와 고구려가 왕실을 중심으로한 호국불교로 도입되어 민간으로 널리 퍼져 나갔기 때문에 큰 분란없이 공인된 반면에, 신라는 백성들이 먼저 불교를 받아들이고 왕실과의 갈등 후에 공인(서기 527년 법흥왕 14년)되는 과정을 거쳤다. 공인 후에는 국가종교로서 백성들을 교화시키고 단합시키기 위해 '신라는 부처님의 나라'라는 의미의 불국토를 서라벌에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고 생각된다. 현재 경주 남산, 토함산 등의 바위, 각종 유적 등은 불교와 연관되지 않는 것이 매우 드물고,&amp;nbsp; 높은 산 봉우리 이름도 비로봉, 문수봉 등 불교식 명칭으로 개명된 것이 불국토사상의 반영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불국사도 불국토 건설의 일환으로 생긴 사찰이다. 그래서 이름마저 불국사인 것이다. 불국사 창건이 서기 528년,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바로 다음 해에 창건 된 것이니 불국토 사상은 불교공인 초창기부터 생긴 사상인 것같다. 이차돈 설화는 믿기 어렵지만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차돈은 부처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법흥왕에게 스스로 죽음을 청하며, 죽은 후 부처님이 계시다면 기이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한다. 이차돈의 목을 베자 머리가 멀리 금강산 꼭대기에 떨어졌고, 목에서 흰피가 났으며, 컴컴해진 하늘에서 아름다운 꽃이 떨어지고 땅이 진동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로써 부처님이 계시다는 것이 분명하게 증명되어 신라인들이 불교를 공인하게 되었다는 설화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경상도</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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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3 Oct 2023 20:44:1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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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산초당, 천주교로 고초당한 정약용의 유배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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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5141875.webp&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700&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igmCI/btsAaXgBy4K/IHhGECNJAKXLjJCLXxv861/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igmCI/btsAaXgBy4K/IHhGECNJAKXLjJCLXxv861/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igmCI/btsAaXgBy4K/IHhGECNJAKXLjJCLXxv861/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igmCI%2FbtsAaXgBy4K%2FIHhGECNJAKXLjJCLXxv861%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700&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5141875.webp&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700&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다산초당은 정약용의 유배지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 기슭에는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초당이 있다. 초당이라면 초가집을 말하는 것인데 현재시설들은 모두 기와집으로 되어있다. 이는 선생님 사후에 복원하면서 당시와 다르게 기와집으로 복원한 때문이다. 아마, 초가집은 내구성이 부족하여서 관리하기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당시모습 그대로 복원 보존하지 않은 것이 좀 아쉬웠다. 다산은 강진의 귤동에 있는 산 이름이다. 이 기슭에서 오랬동안 유배생활을 하셨으므로 정약용 선생이 자신의 호로 삼은 것이다. 당시 선비들은 이름을 부르기 보다 호를 불렀다. 이름은 부모님으로 부터 받은 소중한 것이라 함부로 부를 수 없고 호는 허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정한 호칭인 것이다. 이 유적지에는 다산초당, 다산동암, 다성각(서암), 천일각 등 건물이 있다. 각 건물에는 유려한 한문 붓글씨로 편액들이 부착되어 있다. 다산초당이라는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를 집자하여 모각한 것이고, 다산동암이라는 글씨는 다산선생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라 한다. 집자라고 하는 것은 이곳 저곳에 쓰여있는 글씨를 복사해 가져오는 것을 의미하고, 그 글씨를 나무 등에 새겨놓은 것을 모각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산동암은 선생께서 주로 기거하신 장소이다. 2000여권의 책을 구비하고 저술활동을 하신 곳이며, 손님을 맞았던 곳이기도 하다. 다성각(서암)은 윤종기를 비롯한 18인의 제자가 기거하면서 학문을 토론하던 곳이다. 천일각이라는 정자는 다산유배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최근에 지은 건물이다. 다산선생께서 자신을 아껴주었던 군주인 정조, 흑산도에 유배가 있던 형님 정약전이 그리울때면 올랐을 언덕에 건축한 것이다. 천일각 바로 옆에는 백련사 가는 길이 있다. 백련사에는 유배생활동안 벗이자, 스승이면서 제자였던 혜장선사가 있었다. 참고로 다산 4경은 빠뜨리지 말고 찾아 감상하시길 바란다. 다산초당 제1경은 초당 왼쪽바위에 새겨진 글씨(정석이라고 한문으로 쓰여있음), 제2경은 약천으로 가믐에도 마르지 않는 샘, 제3경은 연못가운데 돌로 쌓아 만들어진 석가산, 제4경은 초당 앞마당에 있는 바위로 다조라고 부른다. 이 바위에서 다산은 솔방울로 차를 끌여서 즐겼다고 한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천주교로 평생 고통 받은 다산&lt;/h2&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5141970.webp&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700&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K3ndL/btsAbas8Whu/DkvbzQrNUB4dc5RG5t7um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K3ndL/btsAbas8Whu/DkvbzQrNUB4dc5RG5t7um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K3ndL/btsAbas8Whu/DkvbzQrNUB4dc5RG5t7um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K3ndL%2FbtsAbas8Whu%2FDkvbzQrNUB4dc5RG5t7um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700&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5141970.webp&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700&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다산 정약용은 현재의 경기도 남양주시 능내면 조안리에서 태어났다. 현재 그 곳에 가면 생가, 실학박물관 등 유적지가 잘 보존되어 있다. 다산은 그를 매우 아끼던 정조가 서기 1800년에 갑자기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 고난이 시작된다. 그의 관직생활은 정조의 치세와 맞닿아 있다. 정조가 승하하자마자 정약용도 고난이 시작된다. 다산은 대과에 급제 후 정조가 설치한 규장각에서 공부하였고 사간원, 홍문관의 요직을 역임하였으며, 1791년에는 수원화성 설계에 참여하여 거중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외 많은 요직은 거쳤지만 조선정부의 천주교 박해가 일어날 때마다 어김없이 큰 곤욕을 치르곤 했다. 1791년 신유박해때는 충청도 해미에 귀향갔으나 다행히 11일만에 풀려 나기도 했고, 1795년 을묘박해 때는 벼슬이 7등급이나 좌천되었다. 1801년에 일어난 신유박해때에는 급기야 귀향을 가서 강진 등에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약용이 천주교를 접한 것은 당시 실학의 일파인 성호 이익 계열과 학연을 맻은 것에서 출발한다. 서기 1776년 이가환, 이승훈과 학연을 맻게 되는데 성호 이익 계열로 이들은 서양학문과 천주학을 많이 연구하던 터라 정약용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1784년 큰형 정약현의 처남 이벽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설명듣고 매료되어 이벽으로부터 세례를 받아 천주교인이 되었다. 1791년에 발생한 신유박해는 윤지충이라는 사람이 모친의 장례를 치른 후 제사를 폐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사건, 즉 진산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윤지충의 행위는 유교의 핵심원리인 충효사상과 크게 충돌하는 개념이라서 천주교는 사악한 종교로 낙인이 찍히게 되고 이 사건으로 정약용은 천주교와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정약용의 가까운 친인척들이 대부분 골수 천주교 신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신유박해의 계기를 제공한 윤지충은 외사촌 형,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고 선교운동을 주도한 이승훈은 매부, 천주교 교리 연구회장인 정약종은 세째형, 형제들도 모두 천주교인들이었다. 일부는 배교하고 일부는 끝까지 천주교를 신봉하였지만 천주교 탄압을 자기 정파의 이익추구에 활용한 당시 집권세력의 탄압 앞에서는 배교 또는 천주교를 오직 학문적 측면에서 연구하였다는 따위의 주장은 통하지 않았다. 반대 정파에서 추구하는 것은 상대파의 죽음, 즉 목숨이었기 때문이다. 정조가 갑자기 승하(임금의 죽음을 높여 부르는 단어)한 다음 해인 1801년에 신유박해가 발생하였다. 천주교 세력이 크게 탄압을 받아 많은 신자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숙청을 당하게 되는데, 이때 다산 정약용도 투옥되어 국문을 당하였다. 다행히 국문을 할수록 정약용과 형 정약전이 명백하게 배교했다는 물증들이 솟아져 나와, 두 형제는 유배로 감형되었다.&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3. 다산 유배생활을 학문의 기회로 활용&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801년에 다산선생은 신유박해 때 결국 유배형에 처해지고 결국 강진으로 오게 되었다. 1808년부터는 현 위치에 외가인 해남 윤씨 집안에서 마련해준 초당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다산은 조선 후기 자생적 개혁운동인 실학을 집대성한 실학자이자 개혁가이다. 22세때 과거시험 초시에 합격하고 28세때 대과에 2등으로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국왕인 정조의 사랑을 받았지만, 조선의 개혁방안의 하나로 공부하였던 천주교(서학)로 인해 천주교 박해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탄핵을 받은 것이다. 다산선생에게 서학의 철학체계는 매력적이어서 조선 개혁에 참고할만 학문이었으나, 어렸을 때부터 배워 신념체계로 굳어진 유교사상, 특히 조상에 대한 봉제사를 폐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조하기 어려워서 결국 배교(천주교를 배척)하고 멀리하였으나 과거 이력과 친인척들의 종교적 신념때문에 인생의 말년 대부분을 유배의 고초를 당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유교가 국가의 기본사상이고 윤리였던 조선에서 조상에 대한 제사를 천주교 식으로 우상숭배로 배척하는 것이 보수 유학자가 중심인 집권세력들에게는 좋은 공격대상이었다. 유배의 역경속에서도 다산선생은 많은 제자들을 교육시키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총 600여편의 책을 저술한다. 본격적인 유교 경전연구(논어 등 원문에 주석을 다는 학문인 경학연구 중심)에 매진한 것이다. 심지어 복숭아뼈가 3번이나 구멍뚫리는 고통을 이기고 책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최선을 다해 지식인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자세는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한국인들이 존경하는 위인중의 한 명이 된 것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전라도</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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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3 Oct 2023 08:01:4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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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덕진산성, 인조반정으로 노론주도 역사 출발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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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148001853.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Wi3dR/btsAakJTUKr/r69SNPMXhPWGWYpISbolP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Wi3dR/btsAakJTUKr/r69SNPMXhPWGWYpISbolP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Wi3dR/btsAakJTUKr/r69SNPMXhPWGWYpISbolP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Wi3dR%2FbtsAakJTUKr%2Fr69SNPMXhPWGWYpISbolP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600&quot; height=&quot;901&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148001853.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덕진산성은 전략적 요충지였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져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휴전선 부근에서 남쪽 땅을 바라볼 기회는 많지 않고 그러한 장소도 별로 없다. 그런데 덕진산성을 그것이 가능한 곳 중의 하나이다.더우기 민통선 안에 위치해 있어서 보통 사람들 접근이 수월하지 않은 관계로 자연 풍광이 잘 보존되어 있고 인적이 별로 없어 조용하며 현대적 시설물이 별로 없어 아주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장소이다. 덕진산성은 민통선 안인 파주군 군내면에 위치해 있다. 이성은 연천의 은대리성, 호로고루성, 당초성과 함께 3국시대에 고구려가 쌓은 성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미루어 이 지역은 신라, 백제, 고구려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툰 지역일 것이다. 한국역사에서 한강을 중심으로한 중부지역을 차지하는 세력이 한반도 주인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보면 한강, 임진강, 한탄강 유역은 패권다툼의 중심지역이라도 할 수 있다. 지금도 남한과 북한이 마주한 군사 최전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든다. 덕진산성의 해발 65m의 낮은 언덕을 중심으로 산 허리를 돌아 내성과 외성으로 나누어 축조되었다. 비교적 낮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임진강 북쪽강안에 위치해 있고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넓은 땅이 내려다 보이는 전략적 요충지로 판단된다. 남쪽으로는 저 멀리 서울 은평구까지 조망이 가능하였다. 성위에서 바라보면 임진강 안에 있는 유일한 섬인 초평도가 보이고, 강 건너편에 화석정이 보인다. 초평도는 서울 한강에 있는 여의도 면적의 2/3정도 넓이라 하고 남북분단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번화한 거리였다고 한다. 지금은 남북 접경지인 관계로 목함지뢰가 많아서 위험한 관계로 활용을 할 수 없는 땅이 되었다. 화석정은 임진왜란(1592년)때 선조 피난길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화석정앞 안내판 설명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1&quot;&gt;율곡선생은 인진나루에 있는 화석정을 틈날때마다 들기름 뭍힌 걸레로 정자마루와 기둥을 닦도록 하였고 임종때는 &quot;어려움이 닥치면 열어보라&quot;하며 밀봉한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임금이 의주로 피난가게 되었는데 그날 이곳에 폭퐁우가 심해 한치 앞을 볼수 없는 어려움에 처했다.&amp;nbsp; 이때 이항복이 율곡의 밀봉편지를 열어보니 &quot;화석정에 불을 지르라&quot;고 쓰여 있었다. 기름을 잘 먹은 화석정에 불을 지르자 대낮같이 밝아져서 선조일행이 무사히 강을 건널수 있었다.&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로 미루어 임진나루터-화석정-초평도 길은 평양 및 의주로 통하는 국가 주요간선도로였음을 짐직할&amp;nbsp;수있다.&amp;nbsp;그러니 이곳을 내려다보며 감시할 수 있는 덕진산성은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인조반정 주력군의 본거지 였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덕진산성은 인조반정(...선조-광해군-인조...)때 반군의 주력부대가 본거지로 사용한 곳이다. 인조반정은 서인세력이 남인 일부세력과 손잡고 광해군을 몰아내고 임금을 인조로 바꾼 쿠데타이다. 선조임금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붕당을 초월하여 정치를 하려 하였고, 당시 중국의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실리를 취하는 중립외교 정책을 폈다. 서인들은 광해군이 왕위 정통성을 다투는 과정에서 이복동생들을 죽이고 어머니뻘인 인목대비를 폐위시킨 사건을 명분으로 하여 반란을 일으켜 성공시킨다. 폐모살제(廢母殺第)의 폐륜행위는 서인세력에게 좋은 명분이 되었고, 신경진과 김류를 중심으로 반정모의가 시작되어 장단부사 이서, 평산부사 이귀 등이 덕진산성에서 훈련시킨 반군 주력군을 이끌고 창덕궁으로 처들어가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광해군의 조카인 능양군을 왕으로 옹립하여 서인이 정권을 잡은 것이다. 또한 서인들의 편협한 국제외교 시각은 조선에 전쟁을 초래하여 백성들의 삶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서인들은 지나치게 명분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광해군이 추진한 명.청 중립외교도 비판하여 대안도 구체적 전략도 없이 친명배금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는 세력이 망해가는 명나라와 친하고 새로 불처럼 세력을 키우고 있는 청나라와 적으로서 싸우자는 정책이라서, 향후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의 참화, 측 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략하는 명분을 주게 되었다. 청나라가 침임한 병자호란때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가 결국 청나라에 항복하는 굴욕을 당한다. 인조반정의 주력군 대장의 한 명인 장단부사 이서의 부인은 인조반정 당일날 덕진산성에서 임진강으로 투신하여 자살했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남편의 쿠데타 성공소식을 기다리다가 쿠데타가 실패한 것으로 잘못 알았다는 것이다. 이로서 이서 장군의 부인은 청나라 침략의 굴욕을 겪지 않게 된 것인데 잘된 일일까?&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amp;nbsp; 반정이후 조선은 노론의 세상이 됐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조선역사에서 일어난 쿠데타중에서 인조반정처럼 반대파를 철저하게 주살한 적이 없다.&amp;nbsp; 조선의 붕당은 선조때 중앙실권을 장악한 사림파가 동인과 서인으로 분파되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1575년). 붕당정치는 정치적인 견해를 중심으로 정치집단이 구분된 것이 아니라 지연, 학연 및 이해관계에 따라 무리가 나눠졌으므로 붕당정치라고 하는데 공론에 입각한 상호 비판과 견제를 통해 균형과 공존을 이룬다는 점에서는 현대 정당정치와 유사성이 있다. 조선중기까지는 특정 가문의 권세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막는 순기능을 하였으나, 조선후기에는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들이 반대파를 숙청한 이후에는 오로지 자기 붕당의 정권유지와 세력화를 위해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건의 배경에는 왕위의 정통성 다툼을 명분으로 하였으나 실은 자기 붕당의 세력화 기회로 활용하고자 하는 각당의 이해관계가 조선 후반기는 당파싸움의 주요원인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당파싸움, 보수화된 정권은 국제정세변화에 제대로 대처할 능력을 상실케하여 조선이 자주적으로 근대화할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그런점에서 대표적으로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을 북벌론의 경직된 사고, 지나친 주자학 원칙론으로 다양한 사고 및 산업발전에 저해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비판하는 학자들이 많다. 인조반정 성공 후에 서인의 정권주도세력들은&amp;nbsp; 동인 등 정치 반대세력을 완전 숙청시킴으로서 인조이후 조선 후기에 서인계열의 노론이 오로지 정치를 장악하는 편협한 보수정권이 장기집권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결국, 덕진산성에서 시작된 인조반정은 조선을 보수화시켜 나라의 발전을 지연시킨 역사적으로 불행한 사건이었다.&lt;/p&gt;</description>
      <category>경기도</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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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2 Oct 2023 19:15:2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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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북관대첩비, 임진왜란 때 맹활약한 의병장 승전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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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edited_20200429_175803.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93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xUNvS/btsz89vha15/w8NWAzIK9L4ZpjQbQhvyK1/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xUNvS/btsz89vha15/w8NWAzIK9L4ZpjQbQhvyK1/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xUNvS/btsz89vha15/w8NWAzIK9L4ZpjQbQhvyK1/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xUNvS%2Fbtsz89vha15%2Fw8NWAzIK9L4ZpjQbQhvyK1%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933&quot; data-filename=&quot;edited_edited_20200429_175803.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93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임진왜란은 동북아시아 국제 전쟁&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592년(선조 25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우리나라에 침공해온 일본과의 7년전쟁이 임진왜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쟁시작년도와 침략주체를 나타내기 위해 '壬辰倭亂'이라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분로쿠-게이조의 역(文錄-慶長의 役)', 중국에서는 '만력의 역(萬曆의 役)'이라 불린다. 文錄-慶長은 일본, 萬曆은 중국의 당시 연호(年號, 동양 군주국가에서 자신이 다스리는 기간을 부르는 명칭, 즉 군주 자신만의 달력)였다. 임진왜란 당시 &lt;b&gt;우리나라&lt;/b&gt;(당시 조선)는 쇄약해질대로 쇄약해져 있었다. 정치적으로 연산군 이후 훈구파와 사림파의 싸움인 사화(士禍)가 계속되었고, 동서(東人, 西人)로 나눈 붕당의 당파싸움은 국정을 극도의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다. 군사적으로도 조선초기의 국방체계가 무너지고 국방을 위한 합의기구인 비변사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당시 중국 명나라에 사대하였으나 국제정세 변화에 둔감하였다. 당시 유럽의 대항해시대 도래 및 일본의 통일 등 국제정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였다. 침략국가인 &lt;b&gt;일본은&lt;/b&gt; 새로운 정치 경제 체제가 싹트고 있었다. 일본은 유럽의 대항해 시대의 영향을 받아 유럽의 상인들과 서양문물과 기술이 유입되어 기존의 봉건지배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딱 100년전인 1492년에 스페인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래 시작된 대항해의 시대가 동북아시아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이 전국시대(戰國時代, 온 나라가 성 단위의 작은 단위로 나뉘어 서로 전쟁을 한 약육강식의 시기)를 거쳐 통일기운이 싹텄으며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 실권자는 오다노부나가 뒤를 이은 도요토미히데요시였다.&amp;nbsp; 도요토미히데요시는 일본 국내 통일에 성공한 후, 오랜 싸움기간동안 쌓인 강력한 무력을 이용하여 조선을 침략한 것이다. &lt;b&gt;중국은&lt;/b&gt; 당시 명나라시대였으며 환관들의 준동으로 국내정치가 매우 어지러워 내란이 끊이지 않아 국력이 약해지고 있었다. 만주지역은 명나라의 지배아래 있었으나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는 명분뿐이고 실상은 각 부족으로 나뉘어 자치적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여진 부족의 하나인 건주여진이 강성해져서 만주지역을 통일하고 있었다. 이 세력은 향후에 청나라를 건립한 후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대륙의 주인이 된다. [대략적인 임진왜란 진행상황] 전쟁발발 초년도는 조선 정규군이 크게 패하였으나, 육지에서 의병 및 승병, 해상에서 이순신 장군 활약, 명나라의 참전으로 반격의 실마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lt;b&gt;1592&lt;/b&gt;년 음력 4월 14일 오후 5시에 일본은 군사 약 20만명으로 부산항에 침입하였다. 4월 24일 상주에서 이일이 패해 10일만에 경상도가 일본군 수중에 넘어갔다. 4월 28일 신립장군의 조선군은 충주 탄금대에서 크게 패했다. 5월 2일 일본군은 한양을 점령하였다. 5월 2일 옥포해전에서 이순신이 이끈 조선수군 승리.&amp;nbsp; 6월 13일 평양성이 함락되었다. 조선왕 선조는 4월 28일 파천을 결의하고 4월 30일 의주를 향해 궐문을 출발하였다. 선조는 6월 22일 명나라 망명을 결심하고 6월 27일 명나라 허락을 받으나 대신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8월 14일 이순신장군이 이끈 조선수군이 한산도 대첩 승리. 10월 수원인근 독산성 전투에서 권율장군 승리. &lt;b&gt;1593년&lt;/b&gt; 1월18일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평양성을 수복하다. 4월18일 한양 탈환, 4월 명나라 경은 휴전회담 시작하였다. 이후 &lt;b&gt;1597년&lt;/b&gt; 상반기까지는 휴전협상이 진행되었다.&amp;nbsp; 일본군은 전라도, 경상도 및 충청도를 느슨하게 점령한 상태에서 전쟁은 소강상태였으나 협상결렬로 일본은 14만 군대로 다시 조선을 침입하니, 이것을 정유재란이라고 부른다. 양력 8월 27일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이 이끈 조선수군은 궤멸되었다. 남해안 제해권을 장악한 일본 육군은 9월 25일 남원성, 9월 29일 전주성을 함락함으로써 전라도를 점령하고 충청도 직산까지 진격하여 조명 연합군과 대치하였으나 더이상 북상하지는 못하였다. 10월 26일 복직한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승리. 1998년 9월 18일 도요토미히데요시 사망하자 일본군은 극비리에 철군하기 시작한다. 12월 16일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 순국하다. 조선에서의 전쟁은 일본군이 가지고 있던 전쟁개념과는 양상이 매우 다르게 전개되었다. 일본에서의 전쟁은 성이 함락되면 성주는 할복하고, 백성들은 항복하여 해당지역이 평정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성주는 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순간 더이상 성주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임금 선조가 수도 한양을 버리고 도망갔는데, 신하는 끝까지 충성하였다. 일반 백성들은 항복하기는 커녕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에게 결사항전하였다. 이러한 민족성의 차이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전쟁수행에 큰 장애요인이 되었던 것이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정문부 의병장 활약으로 함경도 수복&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려나 유학자들이 동료 및 제자들을 모아 의병을 일이켰으니 7년 전쟁기간동안 약 2만 6천명(1593년 1월에 명나라 군에게 통보된 의병수)이 참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은 무기나 전술면에서는 열세였지만, 지리에 익숙한 잇점을 살려 적절한 전술로 일본군에 큰 타격을 줬다. 의병들은 일본군의 보급로 및 교통로를 차단함으로써 임진왜란 초기에 관군이 재정비하여 대일 항전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의병장중에서 함경도에서 활동한 의병장 정문부 장군은 그 혁혁한 전공이 역사적으로 평가받지 못하였고 우리나라 국민들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참 안타깝다. 정문부 장군은 임진왜란 초기에 일본군에 의해 일찍 점령당한 함경도 지역을 회복한 의병장이다. 1592년 7월 15일 가토 키요마사가 이끈 일본군 22,000명은 함경도 안변, 영흥, 함흥을 거쳐 단천에 도착했다. 함경도 병마절도사 한극함은 해정창 전투에서 조선 기병으로 일본과 싸웠으나 크게 패하였다. 이 패배로 인해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군에 귀순하게 되는데, 특히 회령의 국경인은 반란을 일으켜 조선왕 선조의 아들 임해군과 순화군을 포로로 잡아 가토에게 바쳤다. 이때에 정문부 장군은 의병을 일으켜 국경인-국세필을 참수하고, 명척 및 길주에 주둔한 왜군들과 장덕산 전투, 상포 전투, 백탑교 전투 등에서 대승하여 관북지방을 완전 회복하였다. 이렇게 큰 공을 세운 정문부 장군이지만 전쟁이 끝난 후 조선정부의 논공행상에서는 박하게 평가를 받았다. 북관대첩은 이순신의 한산대첩이나 권율의&amp;nbsp; 행주대첩에 결코 뒤지지 않을 큰 전공인데도 이런 전과를 조정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영흥부사와 길주목사에 제수되는 정도. 1599년 이후 호조참의, 예조참판, 장단부사, 안주목사 등을 연임하였으나 이괄의 난때 누명을 쓰고 옥중에서 장사(매맞아 죽음) 하였다고 전해진다. 정문부 장군은 북인계열이었는데 광해군 당시에 정권에 적극 협조한 것도 아니었지만 서인들의 인조반정 성공 후 일어난 이괄의 난(1624년, 인조 2년)때 누명을 쓴 것이다. 장군이 창원부사 시절에 지은 시가 있었는데 초나라 회왕에 대한 것이었다. 초 회왕은 충신 굴원을 멀리한 전국시대의 암군으로 악명높은 인물인데 이 시가 당시 임금인 인조를 빗댄 것이라고 간신배들이 모함을 한 것이다. 향후에 신원이 회복되어 시호를 충의공으로 받았으나 전쟁영웅으로서 얼마나 억울한 죽음인가? 장군은 옥중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후손들에게 유언하기를 앞으로 절대 벼슬을 구하지 말고 경상도 진주로 내려가 살라고 하였다. 장군이 창원부사 시절에 진주를 둘러보고 그 풍토나 사람들에게 반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진주에 장군을 모시는 충의사가 있고 정씨 집성촌이 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북관대첩비 내용은 승전의 기록&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경복궁 서편에 북관대첩비가 있다. 이것은 모사품인데 독립기념관 및 장군묘역(의정부)에도 똑 같은 것이 있다. 진품은 북한 함경도 길주에 있고 북한의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북관대첩비는 함경도 의병장 정문부가 왜장 가등청정과 싸워 이긴것을 기념해 조선조 숙종 34년(1707년)에 함경도 길주에 건립한 것이다. 높이 187cm, 너비 66cm, 두께 13 cm로 약 1500자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1905년 일본군 2사단 17여단장 이케다 마시스케 소장이 일본으로 강탈 반출하여서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구석진 곳에 처박아 둔 것을 2005년도에 반환받은 것이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함경도 길주에 가서 우리는 그 진품을 볼수 있을 것이다. 어서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북관대첩비문 원문 및 번역] 咸鏡道 壬辰義兵 大捷碑文 (북관대첩비문) 在者壬辰之亂其力戰破敵雄嗚一世 水戰則有 李忠武之 閑山島焉 陸戰則有 權元師之 幸州焉 有 李月川之 延安焉 史氏記之 遊談者稱之 不倦 踓然此猶有位地 資於乘賦什伍之出也 若起卑微 奮逃竄徒 以忠義相感激 卒能用鳥合取全勝 克復一方者 關北之兵爲最 始萬歷中倭酋 秀吉 怙强驁逆 規犯 中國 怒我不與假道 遂大入寇 長驅之都 宣廟旣西幸而列都瓦解 賊已陷 京畿 其驍將二人 分兵首兩路 行長行朝西 淸正主北攻其秋 淸正入北道兵銳甚 鐵嶺以北無城守焉 於是 鞠敬仁等叛應賊 敬仁者 會寧府吏也 素惡不率 及賊到富寧 隙危煽亂 執王子及宰臣奔播者 竝縛諸長吏與賊效款 鏡城吏 鞠世必其叔父也 及 明川民 末守 木男 連謀相黨 幷受賊所署官 各據州城聲張勢立 殺脅惟所指 數州崩駭 人莫自保 鏡城 李鵬壽學氣士也 奮曰縱國家創攘至此兇徒敢爾耶 乃潛與 崔配天 지達源 姜文祐 等謀起義兵 諸人地相夷 莫適爲將 評事 鄭文孚 有文武才 無兵可戰 脫身匿山谷間 聞義兵起 欣然從之 遂推鄭公爲主將 鐘城府吏 鄭見龍 慶源府吏 吳應台 爲次將 歃血誓義 募兵得百餘人 時北虜又侵北邊 諸公使人誘 世必 幷力禦北虜 世必許之 內義兵州城 明朝 鄭公建旗鼓上南城樓 誘 世必上알 時其入目文佑禽之 斬以徇 赦其脅從 郎引兵南趣 明川 又捕 末守等斬之 會寧人亦討 敬仁誅之 以應義兵 軍勢稍壯 來附者益衆 吉州人 許珍 金國信 許大成 亦聚兵爲聲援 當是時 淸正令褊將領精兵數千據 吉州 身率大軍屯南關以頀之 十一月遇于加披將戰鄭公副署諸將見龍爲中衛將 屯白塔 應台及 元忠恕爲伏兵將 分屯 石城 ○會韓人濟爲左右衛將 屯木棚 柳敬天爲右衛將○○河 金國信 許珍爲左右斥候將 ○○○○○分屯 臨溟方峙 賊狃勝不甚備 諸軍幷起揜擊乘銳蹙之 土無不疾呼先豋者 賊敗走 縱兵追之殺其將五人 斬獲無數 盡奪其馬畜兵械 ○○○遠近響震 ○○應之 衆至七千餘人 賊遂入 吉州城 窘不敢動 列伏于旁陿邀其出輒剿之 已而城津賊大拔于 臨溟 率輕騎○○○倦其還 決擊大破之 又斬數百餘人 遂剖其腹腹暴之大路 於是兵聲大桭 賊益畏之 十二月又戰于 雙浦 戰方合令褊將 引數騎橫衝迅如風雨 賊失勢不及交鋒 皆散走 乘勝又破之 明年正月 又戰干 端川 三戰三勝 還屯 吉州休士 旣而 淸正知軍不利 遣大兵迎還 吉州賊 我軍尾擊至白塔大戰又敗之 是役也 李鵬壽 許大成 李希唐 戰死 然賊遂退不敢復北 當是時○○明將 李如松 亦破 行長於 平壤 鄭公乃使 崔配天間行奏捷于行在 上引見流涕贈鵬壽司憲府監察 賜 配天秩朝散 觀察使怒 文孚不稟節度而疾義兵功聲出已 聞奏率以誣揜 以故○○○○○ 顯宗時 觀察使 閔鼎重 北評事 李端夏 聽於父老以實聞 於是贈 文孚贊成 鵬壽持平 餘人贈官有差 又建祠 鏡城 ○○賜額曰彰烈 今上庚辰昌大爲北評事 旣與義施之子孫 訪聞前故 得事蹟爲詳 然慨想諸公風 又常餘所謂○○觀其營辟戰陣之所 徘徊持顧不能去 語于長者曰 島夷之禍烈矣 三島復而八路壞 諸公出萬死一生 提孤軍摧勁구 使我國家興主舊地 卒免於在衽而邊塞之人 興於聽聞 效於忠義者 又誰之力也 幸州 延安俱有碑碣 載事華烈 東西膽式 以 關北之功之盛 而獨闕焉庸非諸君之恥歟 咸應曰然 惟鄙人志矧公之命 遂伐石鳩財以人來請文 辭非其人 又來曰斯役也公實首議 不得命 將綴 余乃敍其事繼之銘曰有盜自南 我王于藩 屹屹北原 有蠢者氓譽我大邦 以國受鋒 狼籍穴墉 不抗以從 血口胥呑 士也걸걸 兵義莫利 旣纖叛徒湯毒以凶 峻群攸同 不屑戈了 구莫我衝武夫聲呼 師征孔赫 協底帝罰 北土旣平山摧海涵 厥酋崩惱 非私我忠 爾蠶我農大君曰咨 贈官命祠 士風其烈 臨溟之厓孰尙女功 光惠始終 民可卽戒 有石○○刻之誦詞用眠無窮 옛날 임진란에 힘써 싸워 적을 깨뜨려 일세를 크게 울린 이로 해전에서는 이 충무의 한산대첩이 있고, 육전에서는 권 원수의 행주대첩이 있으며, 이 월천(李月川)의 연안(延安) 대첩이 있어, 역사가가 그것을 기록하였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칭송하여 마지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지위가 있어 말과 부역과 군졸들을 낼 수 있음에 힘입은 것이다. 고단하고 미약한 데서 일어나 도망하여 숨은 무리들을 분발시켜 충의로써 서로 격려하여 마침내 오합지졸을 써서 완전한 승첩을 거두어 한쪽을 수복함과 같은 이는 관북의 군사가 제일인 것이다. 처음 만력 중에 왜의 추장 풍신수길이 강한 군사들을 믿고 거만하게 중국을 침범하고자 엿보다가 우리가 길을 빌려 주지 않음을 성내어, 드디어 크게 쳐들어와 서울에까지 이르렀다. 선조는 이미 서쪽으로 거동하였고, 모든 고을이 무너졌으며, 적은 이미 경기도를 함락시키고 그 무서운 장수 두 사람이 군사를 두 길로 나누니 행장(行長)은 행조(行朝)를 뒤밟아 서쪽으로 가고 청정(淸正)은 북방 침공하는 것을 맡았었다. 그 해 가을에 청정이 북도로 들어갔는데 적의 정예한 군대가 매우 거세었기 때문에 철령(鐵嶺) 이북은 성을 지키지 못했다. 이 때에 국경인(鞠景仁) 등이 반역하여 적에게 내응하였다. 경인은 회령부의 아전으로 본성이 악하여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적이 부령(富寧)에 이르자 그 위기를 타고 난을 일으켜 피난해 온 두 왕자와 대신을 잡고 그리고 장수와 관리들을 묶어 적에게 주고 정성을 보였으며, 경성(鏡城) 아전 국세필(鞠世弼)은 그의 숙부요, 명천(明川) 사람 말수(末秀), 목남(木男)과 서로 무리를 지어 모두 어울려 적이 주는 관작을 받아 각각 고을을 점거하고 성세를 벌여 죽이고 위협하기를 그의 지령대로 하니, 여러 고을이 무너지고 겁내어 인민들이 스스로 보전하지 못했었다. 경성(鏡城) 이붕수(李鵬壽)는 의기 있는 선비라, 분개하며 말하되 &quot;비록 국가의 어지러움이 이에 이르렀으나, 흉도가 감히 저렇게 할 수 있겠는가?&quot;하고 최배천(崔配天) 지달원(池達源) 강문우(姜文佑)등과 함께 의병 일으키기를 꾀했는데 여러 사람의 지위가 서로 비슷하여 장수 삼을 이가 마땅치 않았다. 평사 정문부(鄭文孚)는 문무의 재주는 있으나 군사가 없어 싸울 수 없으므로 몸을 빼어 산골에 숨어 있던 중 의병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듣고 즐거이 좇았던 바, 마침내 정공을 추대하여 주장을 삼고 종성부사(鍾城府使) 정현룡(鄭見龍)과 경원부사(慶源府使) 오응태(吳應台) 등을 차장으로 삼아 피로써 맹서하며 의병을 모집하여 백여명을 얻었다. 그때 북쪽 오랑캐들이 또 북쪽 변방을 침범하므로 여러 장수들이 사람을 시켜 세필을 달래어 같이 힘을 합하여 오랑캐들을 막자 하니 세필이 허락하고 의병들을 성안으로 받아들였다. 이튿날 아침 정공이 기(旗)와 북을 세우고, 남문으로 올라오도록 꾀어 그가 현신할 때에 문우(文佑)가 그를 사로잡아 목을 베어 조리돌리고, 그의 위협에 못 이겨 따른 자들은 놓아주었다. 그리고 곧 군사를 이끌고 명천(明川)으로 가서 말수(末秀) 등을 잡아 목베고 회령 사람이 또한 경인을 쳐서 목베어 의병에게 호응하니 군세가 점점 커지고 따라와 붙는 자가 더욱 많아졌으며, 길주 사람 허진(許珍) 김국신(金國信) 허대성(許大成)이 또한 군사를 모아 성원하였다. 이때에 가등청정이 편장(偏將)으로 하여금 정병 수천 명을 거느리고 길주에 웅거케 하고 자신은 대군을 거느리고 남관(南關)에 진을 쳐 호응하고 있었다. 11월에 적을 가파리(加坡里)에서 만나 싸우려는데 정공은 여러 장수들을 배치하되 현룡은 중위장(中衛將)을 삼아 백탑(白塔)에 진을 치고, 오응태 원충서는 복병장을 삼아 석성(石城)과 모회(毛會)로 나누어 진을 치고, 한인제(韓仁濟)는 좌위장을 삼아 목책(木柵)에 진을 치고, 유경천(柳擎天)은 우위장(右衛將)을 삼아 날하(捏河)에 진을 치고, 김국신 허진은 좌우 척후장을 삼아 임명과 방치(方峙)로 나누어 진을 치게 했는데, 적들은 여러 번 이긴 끝이라 방비를 허술하게 했다. 우리 군사들은 모두 함께 일어나 불의에 공격하여 기운을 얻어 밀고 나갔는데 고함치며 앞서 나가지 않는 군사가 없으니 적이 패하여 달아났다. 그 군사를 추격하여 장수 5명을 죽이고 목을 수 없이 베었으며, 그 말과 무기들을 모조리 빼앗았다. 그래서 원근이 진동하여 장수 관리들로 도망치고 숨어 엎드렸던 자들이 다투어 일어나 호응하니, 무리들이 7천 명에 이르렀으며, 적은 마침내 길주성으로 들어가 움츠리고 감히 발동하지 못했는데 길 옆에 복병을 두어 나오기만 하면 무찔러 버렸다. 이윽고 성진의 적이 임명(臨溟)을 크게 침략하므로 정예한 기병들을 이끌고 습격했으며, 산에 기대어 복병했다가 적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협공하여 크게 깨뜨리고, 또 수백 명을 목베니 마침내 그 배를 갈라 창자를 행길가에 늘어 놓자 군사의 형세가 크게 떨치고 적은 더욱 두려워하였다. 12월에 또 쌍포(雙浦)에서 싸웠는데 싸움이 한창 어울리자 편장(偏將)이 철기(鐵騎)를 끌고 가로 찌르기를 풍우같이 빨리 하니 적이 세력을 잃어 맞서 보지도 못하고 모두 흩어져 달아나므로 이긴 기세를 타고 또 깨뜨렸다. 이듬해 정월에 단천에서 싸웠는데, 세 번 싸워 세 번 이기고 돌아와, 길주에 진을 치고 군사들을 쉬게 하자, 청정이 불리함을 알고 큰 군대를 보내어 길주의 적을 맞아 돌아오게 하므로 우리 군사들은 그 뒤를 쳐서 백탑에 이르러 크게 싸워 또 깨드렸으며, 이 전쟁에서 이붕수(李鵬壽) 허대성(許大成) 이희당(李希唐)은 전사했으나, 적은 마침내 물러가 다시는 감히 북쪽으로 올라오지 못했다. 이때에 명나라 장수 이여송(李如松)도 또한 소서행장을 평양에서 깨뜨렸는데, 정공이 최 배천을 시켜 샛길로 행재(行在)에 승첩을 아뢰니 임금이 불러보고 눈물을 흘리며, 붕수에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증직(贈職)하고, 배천에게는 조산대부(朝散大夫)의 계급을 내렸다. 그 때 관찰사 윤탁연(尹卓然)이 문부가 절도사에게 아뢰지 않았음을 성내며 의병의 공적이 자기보다 뛰어남을 시기하여 임금께 공로를 숨기고 거짓말로 아뢰었기 때문에 공에게는 포상이 시행되지 않았다. 오랜 뒤 현종 때에 관찰사 민정중(閔鼎重)과 북평사 이단하(李端夏)가 부로(父老)들에게 듣고 사실을 아뢰어 비로소 문부에게는 찬성(贊成), 붕수에게는 지평(持平)을 증직하고 남은 사람들에게도 차등 있게 관작을 내렸으며, 또 사당을 경성 어랑리(漁郞里)에 세워 당시 같이 일한 여러 사람들을 제사케 하고 창렬(彰烈)이라 사액했다. 지금 임금 경진년(庚辰年)에 창대(昌大)가 북평사가 되어 의병의 자손들과 함께 연고지를 방문하여, 사적을 자세히 얻어 개연히 제공의 기풍을 상상도 하고 또 이른바 임명(臨溟) 쌍포(雙浦)를 찾아 진치고 싸우던 자리를 거닐고 돌아보며 탄식하면서 떠나지 못하였다. 그리고 부로에게 말하되 &quot;섬 오랑캐의 전화가 몹시 심하여 서울이 함락되고 팔도가 무너졌는데, 이분들은 죽음을 걸고 외로운 군사를 이끌고서 억센 도적을 무찔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발상한 옛 땅으로 하여금 마침내 오랑캐 땅이 되는 것을 면하게 했으며, 변방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일어나 충의를 서로 권하게 된 것이 그 또한 누구의 힘이더냐? 행주 연안에는 모두 비갈(碑碣)이 있어 사적을 적어 공렬을 나타내었으므로 동서로 오가는 이들이 우러러보고 몸을 굽히거니와 관북의 거룩한 공로를 가지고도 비갈 하나가 없으니 어찌 제군의 수치가 아니겠는가?&quot;하니 모두 대답하되 &quot;그렇소. 그것은 우리들의 뜻이기도 한데 하물며 공의 명령까지 있음이겠소&quot;하며 마침내 돌을 다듬고 재물을 모으고 사람을 시켜 글을 청하였다. 나는 적임자가 아니므로 사양했더니 다시 와서 말하되 &quot;이 일은 공이 실로 발의한 사람이니 허락해 주지 않으면 일을 철폐하겠소&quot; 하므로, 나는 마침내 이 사적을 서술하고 새긴다. 숭정 갑신 뒤 65년(1709년 ) 10월 (최창대) 삼가 지음. 노산 이은상 번역.&lt;/p&gt;</description>
      <category>역사 문화</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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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2 Oct 2023 18:10:3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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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성화성, 성곽 축성과 좌절된 정조의 개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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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473708035.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281&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svK19/btsAaZ6zUb8/deZ7auuEioADt8n4iedeD0/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svK19/btsAaZ6zUb8/deZ7auuEioADt8n4iedeD0/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svK19/btsAaZ6zUb8/deZ7auuEioADt8n4iedeD0/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svK19%2FbtsAaZ6zUb8%2FdeZ7auuEioADt8n4iedeD0%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281&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473708035.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281&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조선 성곽은 일본이나 유럽과 다르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동양에서 말하는 성과 외국에서 말하는 성은 개념이 좀 다르다. 성이 공격을 받을 때 방어기능을 하는 것은 기본적 기능이지만, 한양도성은 도시를 둘러싸고 한양과 그 나머지 지역을 구분하는 경계 역할을 주로 한다. 반면에 서양이나 일본의 성은 성주나 영주가 거처하는 호화로운 저택으로서 침략시 방어에 유리하도록 지리적으로 높은 지역에 건설하거나 성 주변에 해자를 둬서 방어적 역할을 할 뿐이지 경계로서의 역할은 없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오오사카의 히메지성이나 독일의 노인슈반스타인성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성을 외부침략에 대한 방어시설 측면에서 보면, 조선의 성곽은 성안의 모든 백성들과 함께 살자는 것이고, 서양의 성은 평소에는 권위를 상징하고 전시에는 성주나 영주의 안위를 최우선적으로 한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생각의 차이가 성곽의 구성과 형태를 다르게 만든다. 한국의 성곽과 외국의 성곽은 둘 다 방어용 구조물이지만 디자인 건축, 역사적 맥락에서도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인다. 한국 성곽은 일반적으로 돌담, 목조 구조물, 복잡한 디자인의 곡선형 지붕이 특징인 독특한 양식이 특징이다. 유럽의 성은 높고 정사각형의 탑과 뾰족한 성벽이 인상적인 석조 요새로 유명하며, 일본의 성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목조 성곽으로 유명하다. 한국 성곽은 주로 석재와 목재를 사용하여 복원력이 뛰어나지만 화재에 취약하다. 이러한 재료의 조합은 건축시 유연성과 현장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 위주의 건축을 가능하게 한다. 외국 성은 공격에 대한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채석과 운반에 노동력이 많이 드는 석재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구조물의 내구성은 높지만 설계의 유연성이 제한된다. 한국 성곽은 언덕이나 산에 전략적으로 배치하고, 성벽을 여러 겹으로 쌓고, 성곽 안에 복잡한 미로를 만들어 침입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등 자연 방어에 중점을 둔다. 또한 궁수를 위한 화살구멍과 망루와 같은 기능도 통합되어 있다. 외국 성은 높은 성벽, 해자, 도개교, 요새화된 성문이 특징이다.이러한 성은 장기간의 포위 공격과 직접적인 공격을 견디는 데 중점을 두고 설계되었으며, 성채 내부의 중앙 집중식 방어에 중점을 둔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화성이나 경복궁과 같은 한국의 성곽은 왕조 시대에 지어졌다. 유럽의 성은 주로 중세 시대에 봉건 영주와 군주를 위해 지어졌다. 한국의 성곽은 한국의 유산과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한다. 외국 성곽도 봉건제도, 기사도, 중세 전쟁과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건축적 랜드마크이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화성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축성했다&amp;nbsp;&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우리나라의 성곽 건축방식을 고려할 때 수원 화성은 매우 특이한 존재라고 할 수있다. 조선 후반기에 전쟁양상이 많이 달라진 상황에서 건설된 성곽이기 때문이다. 규모는 약 5.74킬로미터(약 3.57마일) 길이에 높이 4~6미터(13~20피트) 돌담이 특징이다. 요새, 포탑, 성문, 화살탑 등 다양한 방어 구조물로 구성되어 있고, 성벽은 총기와 전통 무기의 공격을 모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조선왕조 제 22대 임금인 정조(재위1776년-1800년)의 통치 시기에 1794년부터 1796년까지 건설되었다. 건설 배경은 몇 가지 주요한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수원 화성은 정조가 만든 소위 계획도시이고 신도시이다. 당초 정조대왕이 비극적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건설이 시작되었지만 당시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 화성호(花城湖)라는 인공호수도 정조가 성곽 건설을 계획할 때 만들어진 것으로 아름다운 '수원화성행궁' 풍광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농업용수로 써서 백성의 삶을 풍족하게 위해 만들었다. 이처럼 경제적으로 수원화성 건설은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많은 노동자와 기술자가 참여한 건설 프로젝트가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수원의 발전을 촉진한 것이었다.수원화성은 외부 침입으로부터의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건설되었기 때문에 성곽 고층은 석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화성포(花城砲)와 같은 최신의 방어무기가 도입되었다. 수원화성은 조선시대 건축 기술과 조선왕조의 문화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건축물로서, 현재는 대한민국의 국보로 지정되어 보존 및 보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전쟁 등 전란을 겪으면서 상당부분 파괴되었으나 건축당시의 상세한 설계도(화성성역의궤)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어서 그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방문객들은 18세기 후반의 모습 그대로의 성곽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UNESCO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유적지로 인정받고 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정조의 개혁은 미완성&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조선 22대왕 정조(1752~1800)는 재위기간(1776~1800) 동안 다양하면서도 중요한 개혁을 시행했다. 진보적인 사고로 유명했으며 화성 성곽 설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도시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통치의 안정과 번영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요새를 만들고자 했고, 기능적인 목적을 유지하면서도 미적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그는 유교적 계몽절대군주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당시 극심했던 당파싸움을 극복하기 위해 탕평책을 실시하였다.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온 노론과 소론의 정치 세력을 화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정조는 두 당파 간의 세력 균형을 맞춰, 보다 안정적인 정치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조세제도를 개혁하고 농업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다.&amp;nbsp; 북학을 장려하여 상업활동과 무역을 지원하여 경제를 활성화하여 국가 번영을 도모하였다. 이러한 개혁노력은 기득권 세력의 반대에 부딛쳐 상당한 좌절에 직면해야 했다. 처음에 정조를 지지했던 노론 세력이 나중에는 정조의 개혁에 반대하여 정치적 불안정과 저항을 초래했다. 49세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도 반대파에 독살당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고 지금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도 많다. 정조 사후에 탕평책, 초계문신제, 상업의 장려, 규장각 설치, 조세제도 개혁 등이 발전적으로 계승되지 못했고, 정치적 실권도 안동김씨 일파에게 넘어가서 세도정치의 암흑시대가 도래한 것은 우리 역사에 매우 아픈 구석이다. 우리나라가 안동김씨 세도정치로 정체하고 있는 동안, 서양은 산업혁명을 통한 급격한 발전을 이룩하였고, 일본은 근대화의 기초를 착실하게 닦은데 비해, 우리나라는 자주적 근대화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정조대왕이 좀 더 오래살아서 강력한 개혁정치를 계속했더라면, 조선말 혼란기와 일제 강점기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정조는 건능에 묻혀서 말이 없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473708315.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281&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KuBrm/btsz7TGb0Oj/XmZ8l9cjJl5zCkP8ZMjVd0/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KuBrm/btsz7TGb0Oj/XmZ8l9cjJl5zCkP8ZMjVd0/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KuBrm/btsz7TGb0Oj/XmZ8l9cjJl5zCkP8ZMjVd0/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KuBrm%2Fbtsz7TGb0Oj%2FXmZ8l9cjJl5zCkP8ZMjVd0%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281&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473708315.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281&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경기도</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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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2 Oct 2023 17:05:1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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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복궁, 조선건축에 반영된 성리학 및 풍수지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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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9789820789.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xdw8S/btsz87K0QxV/jbfVKQhZFnmMhPSaLDhav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xdw8S/btsz87K0QxV/jbfVKQhZFnmMhPSaLDhav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xdw8S/btsz87K0QxV/jbfVKQhZFnmMhPSaLDhav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xdw8S%2Fbtsz87K0QxV%2FjbfVKQhZFnmMhPSaLDhav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600&quot; height=&quot;901&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9789820789.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조선 건축이해는 기본지식에서 출발&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지금부터 약 600년 전에 건국된 조선(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8년 동안 존속)의 건국과정은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분에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선이 한양을 수도로 삼았기 때문에 지금의 서울이 있고, 조선의 궁궐과 한양도성등 각종 건축물들이 도시공간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를 개창한 사람은 고려말기의 명장 이성계이다. 그는 함경도 함흥의 지방 군벌이지만 중국으로부터의 홍건적, 남쪽의 왜구침입을 성공적으로 방어함으로써 신망을 얻었는데 세력을 키워 결국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것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국 주체세력은 고려말 신진 사대부들이다. 이들은 고려 중기부터 송나라부터 유입된 주자의 성리학으로 이념 무장된 유학자들이었다. 토지제도와 권문세가의 발호, 불교의 타락 등은 이들 개혁가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면서 많은 것이 변화하였다. 가장 큰 변화는 불교에서 유교로 정치이념이 바뀐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은 당시 한양(지금의 서울)을 수도로 정하고 도성 건설작업에 돌입하였다. 설계 및 시공의 배경이 되는 사상이 매우 중요한데 성리학적 우주질서, 음양오행 및 풍수사상이 위치의 선정, 지명 및 건축명의 이름 선정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경복궁 등 조선궁궐 및 수도 서울의 배치를 살펴보아야 우리 문화를 보다 자세히 정확하게 이해할수 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성리학 및 풍수지리가 핵심이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성리학을 알기위해서는 공자를 시조로 하는 동북아시아의 대표적 사상인 유교를 이해하여야 한다. 유교는 인(仁)을 모든 도덕의 최고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 &amp;middot;제가(齊家) &amp;middot;치국(治國) &amp;middot;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 &amp;middot;정치학으로서 수천 년 동안 중국 &amp;middot;한국 &amp;middot;일본 등 동북아시아의 정신적 기초를 이루는 철학이다. 공자의 유교는 발전을 거듭하여 왔지만, 인도의 불교나 도교처럼 시간적 공간적 세계관을 명확하게 체계화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는데 인도로부터 전래된 불교 등의 영향으로 새로운 유교로 탄생한 것이 주자학이다. 즉,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우리 인간은 어디서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하자고 수립한 관념적 체계가 성리학(性理學)이다. 이것은 조선건국의 기본이념으로 작동하게되는데 향후 조선후기에는 국가발전에 장애요소가 되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조선건국의 핵심기초사상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풍수지리 및 음양오행사상은 당시 지식을 기초로한 자연과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이나 자연이나 에너지 또는 기(氣)의 흐름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공간을 배치해야 자연의 본성에 잘 부합한다는 사상이다. 공간을 통한 기의 자유롭고 막힘 없는 흐름은 건강, 번영, 행복에 필수적이고, 어수선함, 막힌 통로 또는 부정적인 영향은 기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 이 생각은 수천년동안 이어져 왔으며 현대 디자인과 건축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연은 크게 음(수동적)과 양(능동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로 상반된 힘의 균형을 추구를 통해 세상이 조화롭게 작동한다는 것이 음양사상이다. 세상 만물의 구성요소는 금(금속), 수(물), 목(나무), 화(불), 토(흙)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 요소에는 고유한 특성이 있으며 특정 색상, 모양 및 재료와 연관되어 있다. 이들 5개 요소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상생하면서 온갖 작용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오행설이다. 이러한 사상을 통틀어 음양오행설이라 한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경복궁 및 청와대의 경우&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풍수 전문가들은 이러한 원칙을 활용하여 집과 사무실 디자인, 조경, 실내 장식 등 생활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지침을 제공한다. 풍수 전문가들은 가구 배치, 벽의 색상, 예술품과 장식품 선택, 심지어 에너지의 흐름을 최적화하고 웰빙을 증진하기 위한 건축 변경에 대해서도 조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상에 입각하여 한양도성이 설계되었다. 경복궁은 북악산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전통적으로 통치자는 남면을 하게 되는데 이는 지구의 북반부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우리나라로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복궁 남쪽에 있는 길의 이름은 주작대로이다. 남쪽은 음양오행에서 붉은 색이고 상징동물은 공작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경복궁(Gyeongbokgung)은 조선 왕조의 궁궐 중 가장 크고 중요한 궁궐 중 하나로 공식적 궁궐, 즉 법궁이다. 이 궁궐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그 아름다운 건축물과 정원은 많은 관광객과 연구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경복궁은 1395년 완성되었으나 그 후 몇 차례의 화재와 복원 작업을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경복궁은 궁궐 자체와 그 주변 정원 , 그리고 다양한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다. 궁궐의 배치와 건물명칭도 유교사상과 음양오행 사상에 기초한다. 예를들면, 조선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이 경복궁이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이 이름은 유명한 유교경전에서 유래한다. 《시경》(詩經) 〈주아〉(周雅)에 나오는 &quot;님께서 주신 술로 이미 취했고, 덕으로써 이미 배부르니, 님께서 큰복을 받도록 돕겠다(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amp;rdquo;에서 2자를 따서 &amp;ldquo;景福宮&amp;rdquo;(경복궁)이라고 지었다.경복궁은 또한 &quot;경회루&quot;와 &quot;국립고궁박물관&quot; 등의 궁전 내 박물관과 전시 공간도 포함하고 있어,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는 장소이다. 경복궁은 또한 서울 시내에서 쉽게 접근 가능하며, 그 주변에는 북악산과 청계천, 인사동과 같은 관광 명소도 많이 있어 방문자들에게 다양한 활동과 관광지를 제공하기 때문에 서울을 방문하는 관광객과 한국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려는 이들에게 인기있는 장소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401857242.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IN7uE/btsz7S8mP0S/d8tRTtuKRNKjsSm1gTnhk0/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IN7uE/btsz7S8mP0S/d8tRTtuKRNKjsSm1gTnhk0/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IN7uE/btsz7S8mP0S/d8tRTtuKRNKjsSm1gTnhk0/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IN7uE%2Fbtsz7S8mP0S%2Fd8tRTtuKRNKjsSm1gTnhk0%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394&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401857242.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청와대] 청와대는 경복궁 뒷편에 자리잡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관저 또는 대통령 청사로 쓰이던 곳이다. 조선 건국시 자리잡은 곳이 오늘날까지 정부와 행정의 중심지로서 국가의 정책 결정과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곳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자리는 고려시대부터 명당터로 주목을 받은 곳이다. 풍수가들이 &quot;삼각산은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한 선경이다. 그곳에서 시작한 산맥이 3중&amp;middot;4중으로 서로 등져 명당을 수호하고 있으니, 삼각산에 의지해 도읍을 세우면 9년 만에 사해가 와서 조공할 것이다&quot;라고 예언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 청와대 자리에는 충순당(忠順堂) 취로정(翠露亭) 등의 전각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선 임금과 개국공신의 후손들이 모여 대규모 회맹을 실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제시대 후반기에 조선총독관저, 해방후 미군정시절에는 군정장관의 관저, 대한민국 수립후에는 경무대로 이름을 바꿔 대통령관저로 사용하다가 오늘날의 청와대가 된 것이다. 역사는 후세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부득히 깊이 이해하고 교훈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을 경복궁과 청와대에서 깨닫는다.&lt;/p&gt;</description>
      <category>서울</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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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2 Oct 2023 16:00:0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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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용주사, 융능 조성으로 부모은중경 모범 보인 정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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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473708486.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4bV3B/btsz8rXDxSn/qWhTdtLLOvTmO5eRYpAKT0/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4bV3B/btsz8rXDxSn/qWhTdtLLOvTmO5eRYpAKT0/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4bV3B/btsz8rXDxSn/qWhTdtLLOvTmO5eRYpAKT0/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4bV3B%2Fbtsz8rXDxSn%2FqWhTdtLLOvTmO5eRYpAKT0%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600&quot; height=&quot;901&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473708486.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용주사는 융능 능침사찰이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용주사는 수원화성에 위치한 융능과 건능(사도세자와 정조의 능) 능침관리사찰로서 조선 22대 정조의 명으로 중창되었다. 이곳에는 신라시대때부터 갈양사라는 절이 있었으나 병자호란때 소실되어 없어졌었는데, 정조가 자기 아버지 능을 현 위치로 옮긴 후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위해 건립한 것이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 능은 양주 배봉산(현재 서울 전농동)에 있었으나 왕이 된 후 천하 명당이라는 수원 화산으로 이장한 것이다. 교조화된 골수 성리학이 맹위를 한참 떨치던 조선왕조라서 아무리 국왕이라도 정조가 불교 사찰을 건설한다고 했을 때는 당시 유학자들과 신하들의 반대가 심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정조는 효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을 것이다. 아마도 유교에서는 효행을 으뜸으로 치고 널리 장려해야 하니까 누구도 반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조는 직접 이 절을 설계하고 건물의 이름을 명명하였다. 그래서 용주사는 다른 사찰과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선 용주사에 들어서면 어느 양반집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고 정갈하게 좌우대칭으로 잘 짜여진 건물배치가 인상적이다. 대웅전 자리가 마치 경복궁 근정전 같은 느낌도 든다. 절 이름은 정조가 낙성식날 저녁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용주사로 명명하였다. 또한, 대웅보전 현판 글씨는 정조대왕이 직접 쓴 친필이라 한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불설대부모은중경의 실천&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효도를 위해 중창한 사찰답게 불교경전의 하나인 '불설대부모은중경'이 용주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불경을 정조에게 소개하여 정조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 스님은 보일당 보일스님이었고 한다. 전라도 장흥 가지산 보림사 출신이었던 보일스님은 정조에게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여 주었다. 정조는 보일스님이 들려준 부모은중경의 내용에 깊은 감명을 받아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하고 그 주변에 폐사된 갈양사터에 절을 새로 중창하여 용주사라 이름 붙여서 사도세자 묘의 능침사찰로 삼았다는 것이다. 용주사 경내의 호성전 앞에는 이 불경을 새겨놓은 탑이 있고, 사천왕상 부근에는 효행박물관이 있는데, 특히 박물관 주요 전시물 중에 대표적인 문화재로 &amp;lt;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佛說大報父母恩重經版)&amp;gt;이 있다. 이 불경은 부처님께서 가르켜주신 것으로서 '부모님의 은혜의 귀중함과 그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 것인가?'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있다. 이 경판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목판 42판, 동판 7판, 석판 24판 등 모두 73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판은11매는 한문판, 25매는 한글판, 변상도 6매이고 양면에 양각되어 있다. 석판 24매도 한문판과 한글판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한문을 모르는 일반 백성이라도 이해하기 쉽도록 그 내용을 한글과 그림으로 제작한 정조의 세심한 배려가 잘 나타난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융능조성으로 정조 정통성 강화하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조선왕조실록(sillok.history.go.kr참조)을 살펴보면 융능 조성 및 수원 화성 건설 배경을 자세하게 알수 있다. 정조 13년(1789년) 7월11일 기사에는 정조의 고모(사도세자의 누이)인 화평옹주의 남편인 '금성위 박명원'이 '사도세자가 묻혀있는 영우원의 묘역이 비좁고 초라하기 때문에 서둘러 이장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린다. 당일날 바로 2품 이상의 대신들을 소집하여 이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이장지를 결정한 후 이장 및 주민이주를 담당할 조직( '천원도감'과 '원소도감')까지 설치한다. 또한, 외규장각에서 영능과 장능 천장 의궤를 가져오게 하여 선례를 조사하고 '비용 을 어떻게 쓸것인가?'까지 자세하게 지시한다. 심지어 7월 13일에는 영의정 김익, 좌의정 이성원, 우의정 채제공 등이 수원 화산(현 융능위치) 현장을 시찰하고 돌아와 안장 방법에 대해 정조에게 보고를 올린다. 이렇게 정조가 신속하게 사도세자의 묘 이장을 국가의 주요대사로 채택하고 실행하게 된 배경에는 권력노선 투쟁, 그리고 영우원 이장을 사전 포석으로 삼아 화성 신도시 건설이 있다. 첫째, 정조는 이장사업을 통해 부친 사도세자에 대한 복권을 단행하면서 자신의 왕권에 대한 정통성 강화를 꾀하였다. 둘째, 자신의 개혁사업을 배후에서 뒷받침해 줄 정치, 군사, 경제적인 거점 신도시를 건설하였다. 수원 팔달산 아래 화성 신도시를 속전속결로 빈틈없이 건설함으로써 수구적인 노론 세력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한양 의존 일변도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융능 조성의 숨은 배경에는 조상 묘자리가 좋지않아 정조를 계승할 왕자가 태어나지 못한다는 풍수사상도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정조는 1782년(정조 6년)에 의빈성씨(宜嬪 成氏)에게 첫째 아들 문효세자(文孝世子)를 얻었으나, 문효세자가 5세의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았고 융능을 조성하기 전에는 아들이 없었다. 융능 조성 직후인 1790년(정조 11년)에 수빈박씨(綏嬪 朴氏)에게 둘째 아들 순조를 얻었으니 풍수사상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lt;/p&gt;</description>
      <category>경기도</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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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2 Oct 2023 14:55:2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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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허준, 동의보감을 통해 본 동서의학 비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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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148002344.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dCEudd/btsAfBX3bzr/WHRswATKY4Iw3qBXGBSKM1/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dCEudd/btsAfBX3bzr/WHRswATKY4Iw3qBXGBSKM1/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CEudd/btsAfBX3bzr/WHRswATKY4Iw3qBXGBSKM1/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dCEudd%2FbtsAfBX3bzr%2FWHRswATKY4Iw3qBXGBSKM1%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600&quot; height=&quot;901&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148002344.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허준의 일생&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허준의 묘는 경기도 파주군 진동면 하포리에 위치해 있다.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에 정해진 절차를 거쳐서 출입해야 한다. 1991년에야 발견되었는데 발견당시 비석이 파괴된 상태로 발견되었지만 비문에 호성공신, 허준, 양평군 등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허준의 묘로 확신할 수 있었다. 동의보감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저자 허준은 티브이 드라마로 여러번 다루어 져서 인기를 많이 끌었다. 소설이나 드라마는 그 특성상 허구가 많이 게제되어 있고, 일부 사건을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과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허준이 천민 출신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허준은 서자출신이기는 하지만 천민은 아니었다. 허준의 아버지는 용천부사를 지낸 허륜이라는 양반이고, 어머니는 허륜의 소실인 영광김씨인데 어머니는 양민이었다. 비록 허륜이 본부인이 있었기 때문에 서자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천대를 받고 교육을 못받았다던지 과거시험에 응시를 못하지는 않았다. 본래 서자(양반과 평민사이에의 자식)나 얼자(양반과 천민사이의 자식)이 모두 과거응시가 불가능했지만 허준이 10살되던 1550년에 법이 바뀌어 서자도 과거응시가 가능하도록 되었다. 즉 양반만 과거응시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평민이상이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를 하면 양반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한 설명이겠다. 허준의 동복 동생인 허징이 1586년 알성시 병과에 급제하여 지방관직인 목사가 된 것을 보면 이같은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소설이나 티브이 드라마와는 다르게 사실은 허준이 누구에게서 의술을 배웠는지는 알 수없다. 단지 허준이 내의원에 들어오기 전에 의원으로서 명성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아버지 허륜이나 가족들의 도움으로 여러 스승으로부터 의술을 배웠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즉 서자 차별을 하지 않는 가풍아래서 여러 스승으로부터 의학기초를 배웠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1573년에 정3품 내의원정에 들어갔고 1575년에는 국왕 선조를 진료하는 의원이 되었다. 그후 선조와 광해군 등 왕실의 크고작은 병을 치유해낸 공적으로 선조의 총애를 받게되고 벼슬도 높아지게 되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허준은 가족과 함께 피난하지 않고 국왕 선조를 호종함으로서 전후 논공행상에서 호종공신 3등급의 공훈을 받게 된다. 1596년 선조는 '조선의 실정에 맞는 의서편집'을 명령하게 되는데 허준은 선조 사후, 1610년에 동의보감을 완성하여 당시 국왕인 광해군에게 바쳤다. 1615년 향년 76세로 사망하는데 동의보감 편찬의 공적으로 '정1품 양평부원군 보국숭록대부'에 추증되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동의보감 의의&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동의보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허준선생 단독 집필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같다. 1596년 선조의 명에 의해 집필이 시작될 당시 허준을 비롯한 당대 명의들이 모두 참여하여 공동 집필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단지 전란으로 인해 초기에 집필에 참여하였던 명의들이 흩어져서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었는데, 허준이 책임자로 임명되어 다른 명의들을 지휘하여 무사하게 동의보감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허준이 제일 공로가 크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긴 듯 하다. 동의보감은 당시에 입수가능한 조선과 중국의 의서와 의학지식을 집대성하고 내의원의 연구가 더해져서 완성된 의학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출판되자마자 우리나라, 중국 청나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중국 북경의 서점가에서 동의보감이 팔리고 있었고, 일본상인들은 조선에 올때마다 동의보감을 구하려고 혈안이었다. 모두 23편으로 내경편;,외경편; 4편,잡병편 11편, 탕액편 3편, 침구편 1편과 목차편 2편으로 되어있고, 각 병마다 처방을 질서정연하기 기술해놓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첫째, 정확성과 실효성에 중점을 두어 번잡한 의술적 통념을 취사선택하여 핵심만을 적용하였다. 둘째, 동양의학사 최초로 정(精) 기(氣) 신론(神論)에 근본을 두고 내장기(內臟器)의 생리적 기능변조(機能變調)와 그 직접적인 병증을 일괄하여 내경편(내과)에서 새로 다루었다. 셋째, 중국에서 나는 약재가 아닌 우리나라(당시 조선)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권장하였고 특히 탕약에 쓰이는 약재는 일반백성들이 부르는 한글명을 부기하여 채약 및 사용에 편리하도록 했다. 넷째, 다른 의학서적의 학설이나 처방을 인용할 때는 그 출처를 명시하였다. 다섯째,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질에 맞는 표준 약재량을 정하고 적의가감하도록하였으며 복용법도 명시했다. 여섯째, 민간에서 손쉽게 조제하여 사용할 수 있는 단방약도 포함하였다. 동의보감은 대한민국 국보 제309호로 지정되어 있고 2009년에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중요한 저술서적이다. 특히 일반 국민이 쉽게 사용 가능한 의학지식을 담고 있는 공중보건과 예방의학 개념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선도적 역할을 수행한 측면이 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동서의학 비교&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역사 및 기원]동양의학은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 기원한 전통 의학 체계로, 몸과 마음, 자연 환경 간의 균형을 중요시한다. 도교, 천문학, 요가, 태극도와 같은 체계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 반면에, 서양의학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시작되었으며, 과학적 방법과 해부학적 지식에 중점을 둔다. [진단 및 치료] 동양의학은 기운(에너지)의 흐름과 균형을 조절하는 데 중점을 두며, 침술, 한방약, 체조 및 명상을 활용한다. 서양의학은 해부학, 생리학 및 임상 시험에 기초하여 약물 치료, 수술 및 방사선 치료와 같은 과학적 기술을 사용한다. [철학적 접근] 동양의학은 환자의 신체와 마음을 통합적으로 살피며, 유지와 예방에 중점을 둔다. '기'와 '영'의 개념이 중요하며, 예를 들어 한의학에서는 '한열(寒熱)'과 '한증(寒證)'을 고려한다. 서양의학은 병리학적 진단과 증상 관리에 중점을 둔다. 환자의 증상을 제거하거나 관리하기 위해 약물과 치료법을 적용하는 것이 주요 목표이다. [과학적 기반] 동양의학은 과학적 연구와 증거 기반 의학에 비해 역사적으로 미진한 부분이 있다. 서양의학은 현대 의학의 발전과 함께 과학적 연구와 증거 기반의 의학을 중심으로 확장되었으며, 현대 의학의 주류이다. [현대적 통합] 일부 환자는 동양과 서양의학의 통합 치료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병행 치료의 이점을 취하며 개별 환자에게 맞춘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은 서로 다른 접근 방식과 역사적 배경을 가지며, 환자의 상태와 선호도에 따라 선택되어야 한다. 병행 치료나 통합 접근은 환자의 최상의 건강을 유지하고 회복하기 위한 중요한 옵션일 수 있기 때문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역사 문화</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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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2 Oct 2023 13:50:5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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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왕인박사 유적지, 한반도와 일본관계 과거와 현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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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5602483.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lQMDv/btsAfBcFLnq/5HlT3UEIzpPxxA0XWGjDb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lQMDv/btsAfBcFLnq/5HlT3UEIzpPxxA0XWGjDb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lQMDv/btsAfBcFLnq/5HlT3UEIzpPxxA0XWGjDb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lQMDv%2FbtsAfBcFLnq%2F5HlT3UEIzpPxxA0XWGjDb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394&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5602483.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왕인박사 일본문화 개화에 큰 기여했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남 영암군 군서면 성기동(현 동구림리)은 왕인박사의 탄생지이다. 월출산 동쪽기슭에 붙어 있고 남서쪽으로는 영암호를 통해 서해바다로 통하는 곳이다. 여기에 가면 왕인박사의 유적지가 잘 조성되어 있다. 왕인박사는 4세기 근구수왕 때 탄생하여 8살 때부터 유학과 경전을 수학하였는데 문장과 실력이 뛰어나 18살때 오경박사에 등용되었다고 한다. 백제 17대 아신왕 때, 일본에서 백제에 학자를 보내줄 것을 청하자 왕인이 논어 등 유학서적을 일본으로 가져가 학문을 전해 주었다. 도일할 때, 왕인 박사는 32세로 일본 응신천황의 초빙을 받은 것이며, 논어 10권 천자문 1권을 가지고 5세기초 일본으로 건너가 그 해박한 경서의 지식으로 응신천황의 신임을 받아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으로 갈 때, 도자기 기술자, 기와제조 기술자, 금속기술자 등도 함께 갔다. 일본에서 왕인박사는 학문과 윤리를 가르켜 정치 사상적 기초를 세웠으며, 기술을 전수하여 일본이 자랑하는 아스카 문화, 즉 일본 역사와 문화를 깨우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의 후손은 대대로 학문에 관한 일을 맡고 일본문화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게 되었다.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에는 화이길사, 일본서기에는 왕인(王仁)의 이름이 나타나 있다. 왕인박사는 논어, 천자문은 물론 기술공예의 전수, 일본문화사사의 성인으로 일본 아스카 문화의 원조가 되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고대 백제는 일본에 선진문화를 전수했다&lt;/h2&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5602567.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lgZXP/btsAaWB1zdv/phjHYaeR6wkLQjbdgVlJG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lgZXP/btsAaWB1zdv/phjHYaeR6wkLQjbdgVlJG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lgZXP/btsAaWB1zdv/phjHYaeR6wkLQjbdgVlJG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lgZXP%2FbtsAaWB1zdv%2FphjHYaeR6wkLQjbdgVlJG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394&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5602567.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왕인박사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드시 동아시아 3국 한국, 중국, 일본은 매우 유기적 협력관계에 놓여 있었다. 문화의 여명기에 선진문물은 후진사회에 전달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고대역사에서 중국이 가장 먼저 문명이 발전하였고 중국의 선진 문명이 한반도를 거쳐서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은 숙명이었다. 서구 유럽이 과학이 발전하고 산업혁명에 성공한 근대 이후는 일본이 제일 먼저 서구문명을 받아들였기 때문기 때문에 일본이 해석한 서구문명이 한국과 중국에 유입되었다. 고대 역사와 거꾸로 된 것이다. 고대에는 대륙에서 한반도를 거처 일본으로 갔는데, 근대에는 일본에서 한반도, 대륙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왜 그럴까? 이유는 해양에 있다.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1492년) 이후 유럽의 신항해 시대도래, 유럽의 산업혁명성공은 유럽제국들이 상품 판매지 및 원료 조달지를 찾아 바닷길로 나서게 만들었다. 그 바닷길 중간에 일본이 있었던 것이다. 지도를 펴놓고 잘 살펴보시기 바란다. 인도네서아, 필리핀을 거쳐 북아메리카로 가는 통로에 일본이 있지 아니한가? 일본의 국내사정 사정이 작용하였겠지만 이러한 지정학적 요소가 국가간 근대화의 속도를 결정한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구 상선들의 해로에서 다소 벋어나 있던 조선은 국제정세 변화에 눈이 어두웠고 내부적으로 당파싸움으로 보수화되어 자주적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매우 불행한 역사이다.&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현대 한일관계 고대역사에서 배워야&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늘날 국제정세는 매우 복잡하다.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맞붙어 충돌하는 현장이다. 대륙세력은 중국, 러시아, 북한이다. 해양세력은 남한, 일본, 미국이다. 대륙세력은 북한을 아래 꼭지점으로 거꾸로 세워져 있는 역삼각형이라면 해양세력은 남한을 맨 위 꼭지점으로 해서 바로 서있는 정 삼각형. 이 두개의 삼각형이 한반도에서 치열하게 충돌하고 있다고 형상화할 수 있겠다. 두 세력의 접점인 대한민국은 1950년 한국전쟁이래 아직도 전쟁 중(정전협정에 의해 휴전중)인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충돌이 일어나면 같은 동맹이면서 후방기지 역할을 할 일본은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 이차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일본이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데는 한국전쟁이 지대한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 한국민은 항상 이점을 염두에 두고 냉정하게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 고대역사를 해석할 때, 백제, 신라, 고구려, 가야, 일본, 중국관계를 알지 못하고서는 깊이있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현대 동북아 정세도 마찬가지다. 왕인박사 유적지에서 많은 교훈을 생각할 수있는 뜻깊은 여행이었다. 역사는 현재와의 끝임없은 대화이므로 항상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유적지 여행을 하고 관련 역사를 상고하고 또 현재의 상황에 어떤 교훈을 주는지 끊임없이 숙고하는 것이 역사인문여행전문가의 숙명이다.&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전라도</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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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2 Oct 2023 09:45:4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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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위사, 극락보전 맞배지붕이 유명한 천년고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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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5338313.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17Oey/btsAaVXoDvf/BAUrKE1mQVdu5U3oekJUR0/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17Oey/btsAaVXoDvf/BAUrKE1mQVdu5U3oekJUR0/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17Oey/btsAaVXoDvf/BAUrKE1mQVdu5U3oekJUR0/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17Oey%2FbtsAaVXoDvf%2FBAUrKE1mQVdu5U3oekJUR0%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394&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5338313.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무위사는 여러번 고쳐 지어졌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에 가면 월출산 남서쪽 기슭에 무위사가 있다. 전에는 큰 사찰이었으나 지금은 넓은 부지에 건물이 많지 않아 좀 쓸쓸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무위사의 역사는 유구하다. 조선시대 까지만 해도 총 네번에 걸쳐서 고쳐지어진 사찰이다. 첫번째, 서기 617년(신라 진평왕 39년)에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어 관음사라고 불려졌다고 전한다. 617년이면 백제와 신라가 치열하게 전쟁을 하던 시기인데 신라의 스님이 백제땅에 사찰을 창건한 것을 믿기 어렵다. 혹시 통일 신라후에 사찰의 보존을 위해서 신라 원효대사와의 인연을 둘러 붙인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두번째, 서기 875년(신라 헌강왕 1년) 도선국사가 중건하여 갈옥사라고 개칭하였다고 한다. 세번째, 서기 946년(고려 정종 1년) 선각 형미대사가 모옥사로 3창하였다.&amp;nbsp; 넷째, 서기 1550년(조선 명종 5년) 태감선사가 4창하여 무위사라고 불렀다. 이처럼 같은 자리에 여러번 절이 개창되는 것을 보면 풍수지리상&amp;nbsp; 명당, 길지임에 틀림없다. 1430년(세종12년)에는 효령대군등의 시주로 극락보전을 건립하고, 1476년(성종 7년)에는 극락보전안에 아미타삼존도, 아미타여래내영도 등 불화가 제작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도 화를 입지 않아서 그 웅장함과 화려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1739년에 또 한 번 크게 증축하였다고 한다. 무위사는 고려초에는 선종사찰로 유명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죽은 수륙제로써 유명하였다. 수륙제는 물과 육지에 있는 혼령을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프는 의식을 말한다.&amp;nbsp; 그래서 극락보전은 죽어서 가는 세상인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이 절의 이름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서 꽤 맘에 드는 절이름이다.잠시 어지러운 일들을 잊고 마음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이곳만한 곳이 없을 듯하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극락보전 맛배지붕이 특히 유명하다&lt;/h2&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0127_113225.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bY6jJ/btsAaEBhe3v/LN6pkT92BKTlRrfME9k1F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bY6jJ/btsAaEBhe3v/LN6pkT92BKTlRrfME9k1F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bY6jJ/btsAaEBhe3v/LN6pkT92BKTlRrfME9k1F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bY6jJ%2FbtsAaEBhe3v%2FLN6pkT92BKTlRrfME9k1F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394&quot; data-filename=&quot;edited_20230127_113225.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극락보전(국보 13호)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불교 건축물 중에서도 초기 건축 형태에 속한다.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이어서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건축미를 자랑한다. 측면의 기둥과 보가 만나 이루는 공간 분할의 절제된 아름다움도 놓쳐서는 안될 감상 포인트중의 하나이다. [맞배지붕]은 한국의 지붕 중에서 그 형태가 가장 단순하고 간결하다. 건물앞뒤로 경사지게 서까래를 걸어 지붕면을 만들고 양쪽 측면은 박공(경사진 지붕 한 쌍으로 인해 만들어진 삼각형 벽면)을 둔 형태의 지붕이다. 마치 책을 엎어놓은 형태이다. 맞배지붕은 측면을 많이 빼주지 않으면 비바람에 취약하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측면에도 지붕이 있는 팔작지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측면에 비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풍판을 부착하였다. 지붕의 무게를 분산시키기 위해 기둥위에 놓는 부재인 공포를 기둥위에만 놓는 것을 주심포양식이라 한다. 반면에 건물이 웅장해지고 지붕이 무거워지면 기둥과 기둥사이에 공포를 첨가하는 형식인 다포식 양식을 채용하게 되는 것이다. 무위사 극락전은 대표적인 맞배지붕 주심포 양식의 건물인데 이와 같은 형식의 대표적인 건물로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부석사 조사당,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도갑사 해탈문 등이 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천년고찰로 문화재가 많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천년이상 오래된 고찰답게 무위사에는 국보와 보물들이 많다. 우선 사찰 경내에 성보박물관이 있다.&amp;nbsp;성보박물관은 극락보전 안에 있던 불화들을 이동 전시한 곳이다. 극락보전에는 아미타삼존불과 29점의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상 뒤에 있는 큰 그림 하나만 남고 나머지 28점은 성보전시관에 이동 보관하고 있다. 이 벽화들에는 전설이 전하는데, 극락전이 완성되고 난 뒤 한 노인이 나타나서는 49일 동안 이 법당 안을 들여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법당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49일째 되는 날, 절의 주지스님이 약속을 어기고 문에 구멍을 뚫고 몰래 들여다 보자, 마지막 그림인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고 있던 한 마리의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림속 관음보살은 눈동자가 없다. 선각대사 형미 탑비(보물 제 507호)도 있다. 선각대사는 통일신라말기 고승으로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서 무위사에서 8년간 머무르며 본사를 세번째로 중창한 스님이다. 선각이라는 시호는 고려 태조 왕건이 내린 시호이며 대사가 입적한 지 28년째인 서기 946년(고려 정종 1년)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탑신을 받치고 있는 거북이의 머리는 용의 머리를 하고 있는데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다. 비신 위의 이수에는 운용문과 쌍용문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외에도&amp;nbsp;무위사 삼층석탑이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무위사 관광시 주의할 점은 절 주위에 식사할 마땅한 밥집이 없으므로, 미리 든든하게 먹고 가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번잡하지 않는 것이 무위사의 묘미이므로 한적하게 여유롭게 사찰분위기를 즐겨보시기를 권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전라도</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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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1 Oct 2023 14:21:1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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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초가집 및 장독대와 옹기, 정겨운 민속마을 풍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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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초가집은 고향을 그리워하게 한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초가집은 한국 전통 건축 양식 중 하나로, 주로 시골 지역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운 전통 주택이다. 주로 농업 생활을 하던 가정들이 거주하고 일을 처리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지붕에 어떤 재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크게 초가집과 기와집으로 나뉘는 것인데, 초가집은 볏짚, 갈대, 왕골, 띠, 플 등의 자료로 이엉을 만들어서 지붕을 올린 집인데 조선시대 이후에는 주로 볏집을 재료로 사용하였다. 기와집은 지붕이 무겁기 때문에 뼈대가 기둥과 보로 이루어져 있지만, 초가집은 나무로 뼈대를 세운 후에 흙벽을 채운 뼈대집, 기동없이 통나무를 포개 얹어서 벽체를 만드는 귀틀집, 벽체를 돌담으로 축조한 돌담집 등 벽체 구성방식이 매우 다양하다. 이처럼 초가집의 주요 건축재료는 돌과 진흙 등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며, 지붕 모습이 독특하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초가집 지붕은 주로 노란 볏짚으로 덮여있어 자연친화적이고 둥글둥글한 모습이 우리들 마음에 매우 편안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초가집이 한국의 농촌지역에서 급격하게 자취를 감춘 것은 1960~70년대 새마을 운동때문이다. 새마을 운동으로 인해 한국의 전통가옥, 특히 초가집이 대부분 사라졌다. 지금은 민속마을이나 민속촌에나 가야 초가집을 볼수 있지만 아직도 한국 문화와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초가집이 주로 관광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관광명소로서 큰 인기를 끌고 있으니 참 다행스럽다. 초가집 레스토랑에서 한국의 전통음식을 즐기거나, 한국 전통 음악과 무용을 감상할 수 있는 공연장으로도 운영되고 있고, 한국전통 숙박시설을 초가집으로 건설하는 등 한국 문화를 체험하고 이해하는 시설로 이용되는 경우도 많다. 초가집은 그 아름다운 건축 양식과 문화적 가치, 자연친화적인 소재 등으로 인하여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으며, 한국의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는 여행 명소 중 하과이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장독대와 옹기는 한국의 고유 풍경&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장독을 놓아두려고 높이 쌓아둔 곳을 말하기도 하고 장독까지를 포함하여 장독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간장, 된장, 고추장, 김장김치 따위를 담은 독이나 항아리를 놓을 수 있도록 뜰 안의 일정한 곳에 마련한 축대'인 것이다. 봄, 여름, 가을 및 겨울 등 사계절이 뚜렸한 한국의 계절 특성이 반영되어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이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4234988.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lHjSb/btsAbmAtDgy/7vnZfsK6CHUS9urkhP3n91/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lHjSb/btsAbmAtDgy/7vnZfsK6CHUS9urkhP3n91/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lHjSb/btsAbmAtDgy/7vnZfsK6CHUS9urkhP3n91/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lHjSb%2FbtsAbmAtDgy%2F7vnZfsK6CHUS9urkhP3n91%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600&quot; height=&quot;901&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914234988.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된장, 간장 등 양념류나 김치를 저장하는 그릇으로서 옹기(독, 항아리 포함)가 많이 사용된다. 고급 그릇이나 장식 및 관상용으로 사용되는 도자기와 다르게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인 옹기는 서민적이며 경제적이었다. 옹기는 전통적으로 농사를 주 산업으로 하여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는 많은 식량을 저장할 필요성, 먹거리 보존기술이 만들어낸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이와같은 옹기는 그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모양도 다양하며 지역별로 기후에 따라 제작방법도 다양하다. 고운 흙으로 만든 청자나 백자와 달리 작은 알갱이가 섞인 점토로 만든 옹기는 가마에서 소성될 때 점토가 녹으면서 미세한 숨구멍이 생기는데 이곳을 통해 공기가 통한다 해서 숨쉬는 그릇이라고 한다. 이 숨구멍이 있기 때문에 옹기는 보관기능 뿐만아니라 김치 같은 음식을 맛있게 숙성시키는데도 유용하다. 역사적으로 인류가 정착하여 농사를 짇기 시작한 신석기 시대 때부터 옹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꾸준히 발전하여 왔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새로운 사회변화에 따라 종래의 질그릇(도기) 표면에 약토를 입힌 옹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20세기 일제 강점기에 광명단(산화연)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옹기는 오늘날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라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다. 주거시설이 주로 아파트로 변화한 도시생활에서 장독대가 불필요하고, 냉장고 사용으로 장기간 다량의 식품을 보관할 필요가 없으며, 플라스틱과 금속 용기 등 내구성 튼튼한 우수 대체 물품이 많기 때문이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민속촌 민속마을에 가서 보자&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농사짓던 시골이 고향인 사람들은 초가집이나 장독대가 있는 풍경을 보면 고향이 그리워지고 과거의 추억에 잠기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초가집이 올망졸망하게 모여 있거나 장독대에 옹기들이 정갈하게 줄지어 놓여있는 풍경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민속촌이나 민속마을에나 가야 볼수 있는 풍경이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대표적 민속촌으로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한국민속촌'을 들 수 있다. 서울에서 1시간 거리에 있으므로 방문하기 용이하다. 초가집이나 전통기와집이 모여있고 과거 우리선조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있는 민속마을도 전국적으로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아산외암민속마을, 낙안읍성 민속마을,철원토성민속마을, 제주성읍민속마을, 경주양동민속마을 등이 유명하다. 한국의 과거 생활양식을 알고 체험하기 위해서는 꼭 들러야 하는 곳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역사 문화</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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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0 Oct 2023 19:48:0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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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건청궁, 명성황후가 시해된 근대역사 현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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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883348737.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nEd9B/btsz9W3yzem/MEMZ23pIFZRG1YpVzO6qL0/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nEd9B/btsz9W3yzem/MEMZ23pIFZRG1YpVzO6qL0/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nEd9B/btsz9W3yzem/MEMZ23pIFZRG1YpVzO6qL0/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nEd9B%2Fbtsz9W3yzem%2FMEMZ23pIFZRG1YpVzO6qL0%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394&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883348737.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건청궁은 근대역사의 중심무대이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경복궁 내부를 남북의 주축을 중심으로 이동하는 경우에 광화문-홍예문-근정전-사정전-강령전-교태전-자경전-향원정-건청궁 순서로 관광하게 되는데 맨 북쪽 끝의 한적한 곳에 건청궁이 위치하여 있음을 알 수있다. 이처럼 건청궁은 구중 궁궐 가장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건청궁은 1873년에 고종이 자신의 사비인 내탕금을 가지고 건축하였다. 이 해에 고종이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섭정에서 벋어나 직접통치를 하겠다는, 즉, 친정을 시작한 때이기도 하기 때문에 건청궁 건립을 자신의 정치적 독립선언 표현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 건청궁에서 명성황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1895년)이 일어나기 전까지 황제 부부가 거처하였다. 건청궁을 보면 보통 궁궐이나 사찰에서 볼 수있는 단청이 없다. 이러한 집을 백골집이라 하는데 이는 단청을 하지 않은 궁궐이나 아무칠도 하지 않은 집을 속되게 부르는 말이지, 흰색칠을 한 집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곳 건청궁과 창덕궁 낙선재가 대표적인 백골집인데 자연스러운 목재결이 드러내는 순수미와 소박함이 느껴져서 정겹다. 민간 양반집을 본따 지은 건물이라서 단청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건물을 민간 양반집 형태와 비교해 보면, 황제의 침전인 장안당, 황후의 침전인 곤녕합, 서재로 쓰인 관문각이 민간 사대부집의 사랑채, 안채, 서재처럼 구성되었다. 한가롭고 편안하게 지내고자 건청궁을 건립하였겠지만, 이곳은 조선말기의 정치적 격변과 혼란의 무대가 되고 만다. 고종이 각 나라의 공사들을 접견하며 여러 정치적인 문제를 처리하였고, 특히 1895년에는 곤녕합 누마루인 옥호루에 명성왕후가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된 비극적 사건의 현장인 것이다. 을미사변이후 이 건물이 철거되었으나 2006년에 옛 모습으로 복원되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발생한 현장&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조선은 쇄국정책을 버리고 미국, 러시아, 영국 등 선진외국에 문호를 개방하여 근대적의미의 국가간 통상수호조약을 체결하였다. 그야말로 물밀듯이 선진외국의 사상, 문물과 제도가 들어왔지만, 근대화를 위한 자체 역량이 축적되지 않은 조선으로서는 선진외국의 침략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1890년대는 한국역사에서 약소국의 설움을 당한 치욕의 역사사건이 여럿발생하였다. 그중에 하나가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다. 이 사건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당시의 국내외 상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갑오농민전쟁에서 시작하자. 1894년에 동학교도를 중심으로 한 농민군은 보국안민의 기치아래 봉기하게 되는데 이를 갑오농민전쟁이라 한다. 이 전쟁에 일본과 청나라가 개입하게 되고 양측의 충돌로 청일전쟁이 일어난다. 일본이 승리하여 시모노세끼조약으로 요동반도, 대만등을 중국 청나라는 일본에 넘겨주게(할양) 되고 청나라는 조선이 완전 자주독립국임을 확인하게 된다. 조선은 대원군이 재 등장하여 일본세력을 등에 업고 갑오개혁을 단행하였다. 명성황후는 러시아에 접근하여 그 힘을 빌어 일본세력을 축출하고자 하였다 이에 앙심을 품은 일본은 황후의 암살을 명령하여 시해한 것이 을미사변이다.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일본인들은 궁녀복장으로 숨어있던 명성황후를 찾아내서 시해한다. 시신에 석유를 뿌려 소각한 후 잔해를 향원지에 뿌려서 만행을 은폐하려 하였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증언해 줄 수 있는 목격자가 있었다. 러시아인 건축기사 이파나시 세레틴 사바타누 미국인 시위대 지휘관 윌리암 다이 대령이 이 사건을 목격한 것인데, 이들은 각각 본국에 보고함으로써 일본은 이 사건을 감출 수없게 된 것이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향원정은 말없이 증언한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역사의 비극을 목격했을 향원정은 건청궁앞 연못인 향원지 한 가운데에 위치한 섬에 있는 정자이다. 육각형 평면을 가진 2층 목조 건물인데, 1층은 온돌바닥이고 2층은 우물 마루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10.5m이다. 건청궁에서 향원정으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명칭: 취향교)가 놓여 있다. 향원정은 국왕과 가족들의 휴식공간이다. 궁궐내에 있어도 개인적 공간이기 때문에 정자로 이름붙인 것이다. 참고로, 누각은 규모가 크고 정치 연회 등 공적인 목적이 강하나, 정자는 사적인 목적으로 경치 좋은 곳에 지어진 작은 집인 것이다. 육각형 초석, 육각형 평면, 육모지붕 등 육각형의 공간을 구성하여 섬세하고 미려하며 각 구성요소간 비례감이 뛰어나 역사적, 예술적,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인정되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6개의 각 모서리에 있는 주련에는 이 곳을 신선들이 노니는 곳으로 비유한 내용이 적혀져 있다. 1개는 유실되고 5개가 남아 있다. 玉池龍躍舞(옥지용약무, 신선이 사는 연못에 용이 뛰쳐 오르며 춤추네, 千山華月逈(천산화월형, 천 개의 산에는 빛나는 달이 멀리까지 비추고), 萬里衆星明(만리중성명, 만리에는 별무리가 밝게 빛나네), 崑閬雲霞積(곤랑운하적, 곤륜산 봉우리에는 구름과 노을이 쌓였고), 蓬壺日月長(봉호일월장, 신선 사는 봉래산에는 세월도 길도다). 신선처럼 고고하게 평화롭게 오랫동안 살고자하는 염원을 새겼으나 향원정은 어쩔 수 없이 아픈 역사를 목격하고, 이곳을 찾은 많은 이들에게 말없이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듯하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883348838.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ahInQ/btsz88b2Hrg/MreZuIHnkQFTQul8I3X7r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ahInQ/btsz88b2Hrg/MreZuIHnkQFTQul8I3X7r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ahInQ/btsz88b2Hrg/MreZuIHnkQFTQul8I3X7r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ahInQ%2Fbtsz88b2Hrg%2FMreZuIHnkQFTQul8I3X7r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394&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883348838.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서울</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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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0 Oct 2023 13:46:5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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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종묘, 세계 유일의 건물구성과 제례 형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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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840870067.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n13Kx/btsz9y9orKB/77FuIeVkJzidU81pk9Rzk1/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n13Kx/btsz9y9orKB/77FuIeVkJzidU81pk9Rzk1/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n13Kx/btsz9y9orKB/77FuIeVkJzidU81pk9Rzk1/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n13Kx%2Fbtsz9y9orKB%2F77FuIeVkJzidU81pk9Rzk1%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600&quot; height=&quot;901&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840870067.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종묘는 중국 등의 것과 다르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서울 지하철 종로 3가역과 5가역 사이를 걷다가 북쪽을 보면 종묘가 보인다. 이곳은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인 것이다. 유교국가의 기본 뼈대를 종묘와 사직으로 간주하는데, 그래서 이 곳 종묘는 왕실과 국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것이다. 주나라의 왕실 예법이며 나중에 유교경전의 하나가 되는 예기에 사당(왕실의 사당은 태묘라고 한다)설치 기준이 잘 나와 있다. 천자는 7대조상까지, 제후는 5대조상까지, 대부(가신)은 3대 조상까지 사당에 모시고, 그 이하는 사당을 두지 않는다고 되어있다. 조선왕조 초기에는 제후국으로서 5묘제를 기본으로 하였으나 임진왜란을 격으면서 모든 것을 중국식에 따르기 보다는 논의를 거쳐 자주적으로 설치되고 운영되었다. 현재 조선의 종묘는 형식적으로는 태조+손조~순종의 7묘제를 따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천위가 늘어나면서 독특한 형식으로 완성되었다. 종묘의 정전에서 밀려난 신위는 영녕전에 따로 모시게 되었으므로, 즉, 땅에 뭍히는 매안되는 신위가 없이 전부 종묘에 그대로 모시는 형태가 된 것이다. 조선의 태묘에는 태조 이성계의 4대조 할아버지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왕인 영친왕까지 사당에 모시고 있는 특이한 케이스가 된 것이다. 종묘는 중국의 예법을 따랐으나 자주적으로 시행된 것을 이로써 알 수 있으며, 특히 현시점에서 보면 이와 같은 유교전통에 따라 종묘가 설치되어 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모델로 삼은 나라인 중국의 명나라, 청나라 시대의 태묘는 공원화되었다가 중국공산당 지배 하에서는 황실의 제사의례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그 기능이나 전통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태묘의 유교전통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참고로 재위 도중에 폐위된 연산군, 광해군은 국왕에서 왕자신분으로 강등되었기 때문에 신위가 모셔져 있지 않고 세조에 의해 노산군으로 강등되었다가 숙종대에 복위된 단종의 위패는 영녕전에 모셔져 있다. 또한 정식으로 국왕이 되지는 못하였지만 덕종, 원종, 장조 등 추존 임금들의 위패도 영녕전에 모셔져 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부속건물에서 제사의식이 보인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종묘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 건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을 지나 향대청을 향해 가다보면 [공민왕 당]을 볼 수 있다. 조선의 태묘에 고려왕의 사당이 있다는 것은 좀 특이하다 할 수 있겠으나 이는 매우 깊은 역사적 이유가 있다. 조선은 역성혁명, 즉 하늘의 뜻이 이성계에게 옮겨졌기 때문에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 것이지 고려왕조를 무력으로 무너뜨린 것이아니라는 의미를 여기서 엿볼 수있다. 공민왕은 고려말에 원나라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감하게 친원파를 제거하고 개혁정치를 단행한 인물로 고려말 사대부들이나 조선왕조에서도 존경받는 왕이라는 점도 평가된 듯 하다. [향대청]은 제례에 사용하는 향, 축, 폐와 제사예물을 보관하고 제향에 나갈 제관들이 대기하던 곳이다. [어숙실]은 왕이 제례를 올리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준비하던곳이다. [전사청]은 종묘 제사에 사용되는 제례음식을 준비하던 곳이다. [정전]은 국보 제 227호이며 종묘의 중심건물로 태조를 비롯하여 국왕 신주 19위, 왕후 신주 30위 등 총 49위가 모셔져 있다. 정전 남쪽에 있는 문은 동문은 제관이 출입, 중앙문은 혼과 향로가 출입하는 신문, 서쪽문은 악공 등 종사원들이 출입하는 문이다. [공신당]은 정전의 남쪽에 정면 16칸으 맞배지붕 건뭉이다. 국가와 왕실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기리고 명복을 빌기위해 세운 서당이다. [악공청]은 종묘제례시 음악을 연주하는 악공들이 준비, 연습하고 대기하던 곳으로 정전과 영녕전 바깥 서남쪽에 있다. [영녕전]은 정전에서 옮겨진 국왕과 왕후, 그리고 추존된 국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고 있는 별도의 사당이다. 영녕전에는 신주 18위등 총 34위가 모셔져 있다. 정전과 다르게 영녕전에는 공신당이 없다. 이는 추존임금인 태조의 4대조 목조, 익조, 도조, 환조가 실제 왕위에 있지 않아서 공신들이 없는데 후대 왕들이 공신들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어쨋든, 정전에서 불천위가 되도록 국왕을 잘 섬겼으면 덩달아서 공신들도 공신당에 배향되는 것을 볼 때 국왕을 잘 섬겨서 국가를 잘 다스리게 해야 자신도 사후에 대접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종묘제례악과 제례형식은 문화유산&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종묘제례]는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는 행사를 가르키는데 정시제와 임시제로 나눠졌다. 정시제는 1월, 4월, 7월,10월에 행하였고, 임시제는 나라에 좋은일 또는 않좋은 일이 있을 때 임시로 지낸 제사이다. 현재은 5월 첫째주 일요일에 년 1회 제사를 지내는데 일반인들도 사전에 예약을 해서 참관할 수 있다. 예절이나 예법의 모범이 되는 의식이라서 순서와 절차가 엄격하고 장엄하다. [종묘제례악]은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무용, 노래,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음악을 가르킨다. 종묘제례 의식의 절차마다 보태평과 정대업이라는 음악을 중심으로 조상의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며 연주한다. 이때 그 음악의 성격에 맞는 무용이 곁들여진다. 원래 세종때 궁중연회에 사용하기 위해 창작된 것이었는데 세조때 제사음악으로 변형되었고 그후 제례음악으로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매년 5월 첫주 일요일에 행해지는 종묘대제에 참여하면 보태평과 정대업 각각 11곡을 들을 수 있다. 종묘제례약은 조선시대의 기악연주와 노래, 춤이 어우러진 궁중음악의 정수로서 우리의 문화적 전통과 특성이 잘 나타나 있으면서도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멋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1964년에 종묘제례악, 1975년에 종묘제례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008년는 종묘제례악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lt;/p&gt;</description>
      <category>서울</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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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9 Oct 2023 19:43:3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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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창덕궁, 근대화 상흔이 새겨진 궁궐 둘러보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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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818628497.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eJHssn/btsz6OSGNxt/ZBjpj51cr3p10Su1VRAGc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eJHssn/btsz6OSGNxt/ZBjpj51cr3p10Su1VRAGc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eJHssn/btsz6OSGNxt/ZBjpj51cr3p10Su1VRAGc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eJHssn%2Fbtsz6OSGNxt%2FZBjpj51cr3p10Su1VRAGc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394&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818628497.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394&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창덕궁을 가장 오래 궁궐로 사용&lt;/h2&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창덕궁은 조선의 법궁인 경북궁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궐이라고 불리었다. 태종 5년(1405년)에 경복궁에 이어 건축축된 궁궐이다.&amp;nbsp; 경복궁이 공식적인 첫번째 궁전(법궁)이나은 왕자의 난으로 이복동생을 죽인 곳이며 또한 건설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정도전의 흔적이 서린 경복궁을 좋아하지 않았다. 또한 왕자의 난 등 군사변란으로 경복궁의 권위가 흔들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태종은 경복궁보다는 창덕궁을 더 좋아하고 주로 집무를 이곳에서 보았다. 창덕궁은 당초 작은 규모로 건설되었고 대부분 주거 및 편전 등 실용적으로 되어 있어서 정전인 인정전도 3칸짜리 건물이었다. 인정전은 1418년 세종에게 양위하기로 결심한 직후에 세종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증축을 명하여 5칸 짜리 건물이 되었다. 세종 집권 후반기에는 주로 경복궁에 머물러서 창덕궁의 비중이 줄어 든 것 같았으나 문종이후 조선전기 동안 여러 왕들이 많이 애용하였다. 창덕궁도 인조반정때 인정전만 남기고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1647년(인조 25년)에 중건을 완성하였다. 임진왜란으로 불탄이후 흥선대원군이 중건(1868년 고종 5년 완성)하기 전까지 경복궁은 폐허로 남아있었기 대문에 창덕궁이 조선후기 내내 정궁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대부분의 정치적 사건 무대였다. 한마디로 창덕궁이 조선왕조에서 가장 오랜 기간 국왕의 거처로 쓰인 궁궐인 것이다. 이처럼 조선 국왕들이 창덕궁을 주로 애용한 것은 경복궁보다 구조, 입지, 심미안적으로 거주지로서 더 편안해서인듯 하다. 두 궁을 다 가보면 건축을 모르는 사람이 느끼기에도 녹음이 있는 창덕궁이 거주에 더 좋아 보인다. 조선시대의 경복궁은 내부에 지금처럼 녹지와 나무가 많지 않았고, 거의 흰색 모래나 돌판이 깔려 있었으며 건물만 빼곡해서 매우 삭막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일본제국 강점기에는 의도적 훼손도 이뤄졌으나 1900년도에 제작된 동궐도 그림이 남아 있어서 그에 따라 복원이 진행 중이다. 1997년에는 조형미와 주변환경과의 조화가 높게 평가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근대화 상흔이 많은 궁궐&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일제는 1907년에 창경궁을 동식물원으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한참때인 1932년에는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앞으로 도로를 만들었다. 이 도로가 현재 율곡로이다. 임진왜란을 대비하여 10만 병력을 양성하자고 주장하였던 율곡 이이 선생을 욕먹이기 위해 도로명을 율곡로로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도로가 생김으로써 창덕궁과 종묘가 분리되어 졌다. 조선시대에는 창경궁, 창덕궁과 종묘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숲으로 연결되어 있어 생활공간과 조상을 모시는 공간이 지맥으로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인 태종이 거처하기 위해 지운 창경궁은 창덕궁과 함께 동궐이라 불렸고 왕실 가족의 주 생활공간이었다. 종묘는 역대 조선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한 조선시대에 종묘는 사직단과 함께 국가의 근본 뼈대로 인식되었다. 또한, 우리나라 풍수지리의 음택사상에서도 큰 산의 기를 받은 음택명당이 후손들에게 복을 준다고 믿었다. 북한산 응봉으로부터 내려온 지맥이 창덕궁, 창경궁에 뻗어내려와 종묘와 연결되는 것인데 그들사이에 큰 도로를 만들어서 그 지맥이 끊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왕이 창덕궁, 창경궁에서 출발하여 종묘를 참배할 때 출입하던 종묘 북문(북신문)도 사라졌다. 그러나 서울시는 2022년 7월 '창덕궁 종묘연결 역사 복원사업'으로 율곡로를 지하화하고 상부에 녹지를 조성함으로써 녹지축을 연결하여 지맥을 복원하였다. 지맥이라는 것이 과학적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풍수지리사상은 우리나라 전통문화라는 측면에서 굳이 배척할 필요는 없다. 조선말기에 서양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부터 창덕궁에도 서양식 전등, 차고, 자동차 길, 현관 등이 설치되었다. 창덕궁에서 근대화의 흔적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참고로 동, 식물원으로 운영되던 창경궁은 1983년 12월까지 운영되다가 일제잔재들을 모두 없애고 역사사료 기록에 따라 궁궐의 전각과 편전들을 복원하여 1986년에 일반에 공개되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창덕궁을 천천히 둘러보자&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에 입장하여 금천교를 지날 때 교각중 하나에 아래와 같이 재미있는 해태상이 하나 있다. 이 해태상 몸짓과 표정을 보노라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조선 장인들의 해학정신이 묻어나는 것 같아 특별히 정감이 간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818628443.jpg&quot; data-origin-width=&quot;901&quot; data-origin-height=&quot;1600&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p0qcS/btsAbbFzqot/hdWcKFcYkzkvKeLgcKR6M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p0qcS/btsAbbFzqot/hdWcKFcYkzkvKeLgcKR6M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p0qcS/btsAbbFzqot/hdWcKFcYkzkvKeLgcKR6M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p0qcS%2FbtsAbbFzqot%2FhdWcKFcYkzkvKeLgcKR6M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901&quot; height=&quot;1600&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818628443.jpg&quot; data-origin-width=&quot;901&quot; data-origin-height=&quot;1600&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창덕궁은 크게 치조지역, 침전지역, 낙선재 지역, 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치조지역은 정사가 이루어 진 곳으로 공식행사가 진행되던 즉 정전인 인정전과 국왕이 주로 집무를 보던 즉 편전인 선정전을 중심으로 되어 있다. 침전지역은 희정당, 대조전 등 왕실 생활영역이다. 동쪽에 낙성대 영역, 북쪽 언덕너머에 후원이 있다. 전체적으로 궁궐앞쪽은 공적인 공간으로 인정전, 선정전, 국왕보좌 관청(궐내각사) 등이 배치되어 있고 뒷쪽은 국왕과 왕실의 사적인 공간으로 되어 있다. 전조후침의 원칙이 적용된 것이다. 선정전, 희정당, 낙선재 등 국왕 및 왕실가족 거처는 외부에서 침입하기 어렵도록 여러 겹의 건물과 마당으로 사방을 에워싼 소위 '구중궁궐'(九重宮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유교 이념에 따라 호사스럽기보다는 검소하고 질박한 궁궐 건축이 돋보인다. 백제시대 이래로 왕실의 미학인 &quot;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나 누추하지 아니하고 화려하나 사치롭지 아니하다&quot; 원칙에 충실한 궁궐이다. 창덕궁 후원 관람은 창덕궁관리소에서 사전에 예약해야 가능하다.(인터넷 예매 가능)&lt;/p&gt;</description>
      <category>서울</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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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9 Oct 2023 17:24:2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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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남한산성, 병자호란 전쟁터에서 역사를 반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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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628495395.jpg&quot; data-origin-width=&quot;960&quot; data-origin-height=&quot;960&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QU4R/btsAfC3H7Gt/z3E72dAC0vcwkBJPbugsR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QU4R/btsAfC3H7Gt/z3E72dAC0vcwkBJPbugsR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QU4R/btsAfC3H7Gt/z3E72dAC0vcwkBJPbugsR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QU4R%2FbtsAfC3H7Gt%2Fz3E72dAC0vcwkBJPbugsR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960&quot; height=&quot;960&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628495395.jpg&quot; data-origin-width=&quot;960&quot; data-origin-height=&quot;960&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남한산성은 가장 가까운 피난처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서울의 남쪽 송파구와 경기도 성남시, 하남시 방면에서 출발하여 남한산성을 등산할 수있다. 버스나 승용차를 이용하여 산성의 중심부까지 접근할 수도 있으나 등산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약 1시간 쉬엄쉬엄 오르다보면 정상에 도달하게 되는 그리 어렵지 않는 등산코스이다. 따라서 수도권의 많은 주민들로부터 큰 사랑받는 관광코스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현재 볼 수 있는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축성되었지만 이 자리에는 백제의 건국한 온조의 왕성이었다는 기록도 있고 신라시대 문무왕 때 주장성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삼국시대부터 이곳이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새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강남쪽에서 한강과 서울을 조망할 수있는 험준한 산악지역 요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한강중류지역을 차지함으로써 한반도의 주인이 주인이 되고자 경쟁하는 세력들에게 이곳은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던 것이다. 남한산성은 현재 대한민국 수도 서울 중심부에서 약 25km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산성의 둘레는 12km정도이다. 산성내부에 작은 도시를 이룰만큼 넓은 분지가 있기 때문에 평시에 백성이 살고 있으면서 유사시에는 국왕을 비롯한 정권 핵심세력이 대피할 수 있도록 조성한 성곽이었다. 남한산성은 동서남북에 4개의 문과 문루, 16개의 암문, 4개의 장대가 있었고 성안에 수어청을 두고 관아와 창고, 행궁을 두었다. 행궁은 모두 252칸이었고, 80개의 우물과 45개의 샘이 있는 등 많은 인원이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남아 있는 건물이 몇 안되지만 4대문과 수어장대 등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사적이며 도립공원이면서 2019년에는 세계분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병자호란때 급하게 피난 입성했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남한산성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매우 치욕의 현장이다. 병자호란은 음력 1636년(인조 14년) 12월 8일부터 다음해 1월 30일까지(양력 1636.1.3~2.24일)까지 벌어진 중국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다. 병자호란전에 청나라의 1차 침입인 정묘호란(1627년)이 있었는데 이 때 조선은 청나라(당시는 후금)와 형제의 맹약을 하고 여러가지 약속을 하였었는데, 조선을 그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였다. 세력이 더 커진 청나라는 재침을 하였는데, 병자호란때는 전략을 더 세밀하게 수립하여 시행한다. 조선 조정이 강화도에 피란하여 장기전을 하게 되는 경우에 중국 본토의 명나라와 전쟁이 한창이던 청나라로서는 조선침략을 속전속결해야하는 처지였다. 그래서 선봉대는 중간의 모든 성들을 무시하고 무조건 서울로 달린다. 1636년 12월 6일 압록강을 건넌 선봉대는 10일만에 서울에 당도한 것이다. 이렇게 빨리 처들어 올것을 예상못한 조선조정은 강화도로 피난할 여유가 없어 가까운 남한산성으로 급히 피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2월 14일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으나 성안에는 겨우 50일 견딜수 있는 군량미만 준비되어 있었다. 청나라 선봉대는 12월 16일 남한산성에 이르렀고 다음해 1월1일에 청태종의 본대는 20만군사로 남한산성을 포위한다. 조선군은 상령전투, 광교산전투 등에서 패하고 다른 지역 전투에서 큰 성과가 없었다. 결국 남한산성을 구원하기 위해 오던 근왕병, 의병 및 승병 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한산성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강화도까지 청군에 함락되자 남한산성에서는 청군과 항복조건을 협상하여 1월 31일 인조는 삼전도(三田渡)에서 성하(城下)의 맹(盟)의 예를 행하여 청태종에게 항복하게 되었다. 항복조건은 첫째, 조선과 청나라는 군신관계를 맻는다. 둘째, 명나라와 사대관계를 청산한다. 셋째, 조선의 세자와 차자 등을 청나라에 볼모로 보낸다. 넷째, 청이 명나라를 정벌할 때 조선은 군대를 파견한다. 다섯째, 모문룡의 가도를 공격할 때 조선는 배 50척을 보낸다. 여섯째, 명나라에 조공한 것처럼 청나라에도 조공한다 등 11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는 '조선은 새로 성을 쌓거나 옛 성을 보수하지 말 것'이라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다. 조선의 저항능력을 철저히 말살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할 것이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역사는 반복되어서는 않된다&lt;/h2&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1696628495346.jpg&quot; data-origin-width=&quot;960&quot; data-origin-height=&quot;960&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90U4F/btsxgXx0NWN/KExLEy5hu2hauU2IAkkoq1/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90U4F/btsxgXx0NWN/KExLEy5hu2hauU2IAkkoq1/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90U4F/btsxgXx0NWN/KExLEy5hu2hauU2IAkkoq1/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90U4F%2FbtsxgXx0NWN%2FKExLEy5hu2hauU2IAkkoq1%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960&quot; height=&quot;960&quot; data-filename=&quot;1696628495346.jpg&quot; data-origin-width=&quot;960&quot; data-origin-height=&quot;960&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필자의 지식으로는 우리나라 역사상 국왕이 외국에 항복한 사례는 조선왕 인조가 유일하다. 조선은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약 45년 전에 임진왜란, 즉 일본의 침공을 받아 조선백성들이 7년동안 전쟁을 치뤄야 했다. 전쟁의 상흔이 다 치료되기 전에 다시 전화에 휩싸인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더욱 국력이 쇄락해진 명나라와 신흥 세력이었던 여진족 만주의 청나라 사이에서 광해군은 중립외교로 조선의 국가이익을 간신히 지켜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보수세력이라 할 수 있는 서인세력은 인조반정을 통해 광해군을 내쫓고 인조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였다. 인조반정이후 집권세력은 명나라가 임진왜란 때 조선을 구원해 준 은혜를 저버릴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청을 버리고 명나라와 외교를 강화하게 된다. 어찌보면 신흥세력과 적대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국가가 다시 전란에 휩싸이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명청교체기의 조선의 처지를 21세기 중국과 미국사이에서 국가이익을 지켜야 하는 대한민국의 처지와 비유하는 세간의 담론을 보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명나라는 미국, 청나라는 중국이라고 한다면 미국이 매우 서운해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같은 큰 전란을 겪고서도 조선이라는 나라가 망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250년 이상 지속된 것이 우리나라의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이러한 큰 일을 당하면 그 모순을 잉태한 세력이나 체계는 파괴되고 그 모순을 극복한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여야 한다. 그러나 조선은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세력이 반대파를 철저하게 파괴하고 더욱더 보수화되어, 당파싸움, 척화정치를 지속하였고, 조선은 결국 자주적인 근대화, 산업화의 기회를 상실하였다.&lt;/p&gt;</description>
      <category>경기도</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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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9 Oct 2023 10:59:0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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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양평관광, 통나무집에서 지낸 하룻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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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068336365.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lBdAH/btsz8p6zNlB/7YRNagyvVwIFutWG7FhWl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lBdAH/btsz8p6zNlB/7YRNagyvVwIFutWG7FhWl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lBdAH/btsz8p6zNlB/7YRNagyvVwIFutWG7FhWl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lBdAH%2Fbtsz8p6zNlB%2F7YRNagyvVwIFutWG7FhWl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600&quot; height=&quot;901&quot; data-filename=&quot;edited_1696068336365.jpg&quot; data-origin-width=&quot;1600&quot; data-origin-height=&quot;901&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 양평으로&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경기도 양평은 대한민국 경기도에 위치한 매력적인 지역으로, 역사와 자연환경, 문화적 유산 등 다양한 측면에서 빛을 발하는 곳이다. 이곳은 서울에서 승용차로 1시간이면 도착할 만큼 가까이 위치하면서도 서울과는 다른 도농복합의 매력과 한강유역으로서 맑은 풍광을 지니고 있어 수도권 주민들에게 주말 휴양지로서 매우 인기가 높은 곳 중의 하나이다. 양평의 자연환경은 그 아름다움으로 유명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여 강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아름다운 풍경과 깨끗한 공기가 특히 자랑이다. 특히 봄에는 벚꽃 축제로 유명하며, 가을에는 단풍 명소로 유명한 곳 중 하나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양평을 관광지로 매력적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또한, 양평은 문화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양평 옛골은 전통적인 한옥 마을로, 한국의 고유한 건축 양식과 전통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또한, 양평의 민속촌에서는 전통 한복을 입고 다양한 전통 미술 활동을 체험할 수 있으며, 전통 음식과 공예품을 즐길 수 있다.양평은 스포츠와 액티비티를 즐기기에도 좋은 장소이다. 양평에서 래프팅, 카약, 자전거 타기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으며,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힐링을 경험할 수 있다. 양평은 경기도 내에서도 독특한 매력을 가진 지역 중 하나로, 그 풍부한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환경, 다양한 문화적 활동을 통해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양평을 방문하면 역사와 자연, 문화가 공존하는 이 지역의 아름다움을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양평으로 가기로 작정을 하였다. 멀지 않은 곳, 그러면서 자연과 역사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많은 장소를 짧은 시간에 다 돌아볼 수는 없는 것이라서 두 곳만을 검토하였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추천 관광지 두 곳&lt;/h2&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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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행의 시작은 숙소를 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amp;nbsp; 특히 양평은 수도권에 접해 있기도 하지만 동쪽은 강원도 홍천, 춘천과 맞닿아 있어서 여행의 목적을 확실히 한 후에 숙박시설을 선택하여야 했다. 모처럼의 연휴를 맞이하는 경우 오랜기간 집에서만 지내는 것은 매우 심심한 일이다. 모인 가족들이 좋은 추억만들기 좋은 기회가 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전에 의견이 모아지지 않으면, 돈과 시간을 쓰고서도 가족구성원들의 만족도는 반감될 수 있다. 여행 목적이 산속 계곡에서 조용히 물소리듣고 맑은 공기 마시면서 명상하는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인 활동을 중시하는 것인가? 또는 역사 유적을 탐방하고 싶은가? 양평은 이러한 다양한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좋은 목적지이긴 하였다. 우선, 가을에 방문하기 좋은 장소로는 서후리 숲을 고려하였다. 이곳은 약 10만평의 사유지를 슾속 산책로로 꾸민 곳이고 세계적인 팝스타인 BTS의 화보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메타세콰이어, 자작나무 등 나무별로 군락을 이루고 있고 숲속에 오두막 까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연인들이 시간 보내기 딱 알맞은 곳이다. 이곳을 서종면에 위치해 있어서 다른 관광지와 연계해서 일정을 짜기는 곤란하고 짧은 시간만 보내기는 아까운 장소이로 생각되었다. 여유있게 하루를 보내면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서 다음에 따라 와야겠다. 용문사, 이곳은 유서깊은 고찰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이후 부침의 역사를 거쳐 1907년에 일본군의 병화로 전건물이 소실된 것을 재건하였으나 다시 1950년 6 &amp;middot;25전쟁 때 파괴되어 3칸의 대웅전과 관음전&amp;middot;산령각(山靈閣)&amp;middot;종각&amp;middot;요사(寮舍) 등만 남게 되었다. 1982년부터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채, 일주문, 다원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특히 경내에 수령이 1,1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유명하다. 이 나무의 기원에는 두가지 전설이 있다. 통일신라의 마지막 왕자인&amp;nbsp;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숨어들기 전에 심었다는 것과,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꽃아 놓았는데 그 것이 살아나서 은행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특히 노란 단풍이 든 가을철에 꼭 가보면 좋을 한국의 명장면 중 하나이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통나무집에서 하룻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번 여행은 용문사를 거처서 단월면 분지울 계곡에서 묵었다. 하루 여행코스로 제격이어서 지인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역사유적을 보면서, 또한 숲속 계곡과 등산을 즐길 수 있으니 일석삼조이다. 서울에서 분지울 계곡까지가 좀 멀게 느껴졌었는데 중간에 용문사를 들르게 한 일정이었기에 그나마 참을 수 있었다. 가족과 함께 서울을 출발하기 전에 목적지를 네비게이션에 입력한 순간 미리 점검하지 못한 내 자신을 질책하였는데 여러분들은 이러한 실수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 길이 혼잡하지 않을 때는 서울에서 1시간 거리로 나온다고 해서 가까운 곳이겠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길이 혼잡한 시간대에는, 이쪽 길이 상습정체구간이라서 소요시간은 3시간 가까이 되는 것이다. 양평군 단월면 명성리 분지울 계곡에 위치한 펜션에서 하루를 묵었다. 정말 조용한 곳이라서 그런지 계곡에 펜션들이 많이 있었다. 아마 인근에 있는 스키장과 워터파크가 손님을 끌어당기기 때문에 이렇게 투자를 한 듯하다. 계곡의 물소리는 비내리는 소리처럼 끈임없이 흐르고, 바람을 소슬하게 불었다. 산밭의 곡식들이 바람에 물결치는 모양을 보면서, 인생이란 어쩔 수 없이 부침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 인간도 산짐승들 처럼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문득문득하였다.&amp;nbsp; 홍천에 유명한 워터파크와 놀이시설이 있는데 그곳이 이곳과 매우 가깝다. 식구들은 벌써부터 내일 워터파크에서 물놀이하자고 성화이다. 숙소를 알아보니 다행히 예약이 되었다. 나는 쌀쌀해진 날씨를 감안하여 가족들이 감기걸릴까봐 내키지 않았지만 동참하기로 했다. 가족 구성원들의 만족이 우선이고, 그들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기 때문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경기도</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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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 Oct 2023 13:07:14 +0900</pubDate>
    </item>
    <item>
      <title>단군신화, 역사와 민족 정체성 형성의 핵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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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bear-422682_1280.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466&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MVPog/btsz88pzC5U/9KAGCxOJqO7R83bxtsa301/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MVPog/btsz88pzC5U/9KAGCxOJqO7R83bxtsa301/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MVPog/btsz88pzC5U/9KAGCxOJqO7R83bxtsa301/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MVPog%2Fbtsz88pzC5U%2F9KAGCxOJqO7R83bxtsa301%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466&quot; data-filename=&quot;edited_bear-422682_1280.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466&quot;/&gt;&lt;/span&gt;&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edited_tiger-6828325_1280.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466&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pomtD/btsz95eMexX/w0MIaCPKVN1kO6NkjSFRI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pomtD/btsz95eMexX/w0MIaCPKVN1kO6NkjSFRI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pomtD/btsz95eMexX/w0MIaCPKVN1kO6NkjSFRI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pomtD%2Fbtsz95eMexX%2Fw0MIaCPKVN1kO6NkjSFRI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466&quot; data-filename=&quot;edited_tiger-6828325_1280.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466&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단군신화 우리역사의 기원이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국역사의 기원: 한반도의 역사 시작은 고조선에서 시작된다. 어느나라 역사든지 대부분 신화로 시작하는데, 한국의 역사에도 단군신화가 있다. 역사 서적에서 증명가능한 국가로,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시작된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이다. 이를 건국한 사람은 단군이고 이 분의 탄생설화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단군신화: 옛날 하늘나라 임금인 환인의 아들 환웅은 인간세상에 관심이 많아 자주 세상을 내려다 보았는데, 환인이 천부인 3개을 줘서 태백산 신단수로 내려 보냈다. 환인은 풍백(바람을 다스리는 신), 우사(비를 다스리는 신), 운사(구름을 다스리는 신)과 함께 3000여명을 데리고 왔다. 이때 곰 한마리와 호랑이 한마리가 사람이 되고자 환웅에게 빌었다. 환웅은 100일동안 동굴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쑥과 마늘만 먹고 수양을 하면 사람이 되리라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함께 동굴속에서 수양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호랑이는 버티지 못하였으나 곰은 이 시련을 이겨내고 드디어 사람이 되었고, 더구나 아름다운 처녀로 변화한 것이었다. 환웅이 이 처녀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니 이 아이가 고조선의 시조 단군 왕검인 것이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2. 신화가 역사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신화의 역할: 신화는 비과학적이고 초현실적이어서 이를 사실이 아니라고 벽안시 하기보다는,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찾은 것이 매우 중요하다. 즉, 신화는 역사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며 문화, 도덕, 정치, 예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사회와 개인의 이해를 높이며, 창의적인 영감을 제공한다. 첫째, 신화는 특정 역사적 사건이나 흥미로운 사실을 기반한다. 이러한 경우 신화는 역사의 기원을 설명하고, 특정 사건을 기록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신화는 과거와의 연결을 느끼게 하고 역사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기억된다. 고조선을 개국한 세력은 곰을 숭상(토템이즘)하는 세력이고 피지배 세력은 호랑이를 숭상하던 세력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풍백, 우사, 우사등으로 미루어 고조선 사회는 농사가 주요 산업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둘째, 신화는 특정 문화나 고유한 정체성의 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 이야기, 전설 및 신화는 특정 문화나 국가의 가치관, 믿음, 전통, 예술, 음식 등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개인과 집단은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이해하고 정립할 수 있다. 단군신화에 나타난 종교는 천제사상(하느님), 자연숭배사상 등이 잘 들어나 있다. 한국사람을 뿌리는 하늘에서 왔다는 선민의식을 읽을 수 있으며 동시 이 지상에 존재를 숭배하는 사상적 토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늘에서 온 환웅과 지상에서 존재(곰에서 변신한 처녀)가 결혼하여 태어난 아이가 한국민족의 시조가 되는 것이다. 셋째, 신화는 국가적 상징으로 사용되며 국가의 정체성을 만들고, 동질의식을 형성하며 동시에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단군신화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민족은 같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며 천손이라는 선민의식을 갖기 때문에 지구상 어디에 있든지 항상 동포(같은 조상을 공유한다)로서 동질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3. 한민족의 정체성의 핵심이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신화는 역사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며 문화, 도덕, 정치, 예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역할을 하여왔고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사회와 개인의 이해를 높이며, 창의적인 영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단군신화는 한국민족에게 민족의 정체성과 동질성을 부여하고 있다. 고조선(한국의 고대 이름)을 창조한 단군왕검은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의 아들이므로 한국민족은 하느님의 자손인 선택된 민족인 것이다. 그러므로 선택된 민족, 하늘에서 내려온 민족으로서 바르게 정으롭게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자부심과 도덕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단군은 개국과 함께 고조선을를 통해 조상들에게 평화와 번영을 주고자 다. 그의 후손들은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삼한(고구려, 백제, 신라)으로 발전되어 갔다. 역사는 변화하고 부침을 거듭하였으나, 단군신화는 한국민족에게 인류 조화와 화평을 중요하게 여기라고 가르치며, 한국 문화와 정신에 평화와 조화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이런 가르침은 한국 문화의 중요한 부분, 한국민족의 정체성으로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lt;/p&gt;</description>
      <category>역사 문화</category>
      <author>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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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9 Sep 2023 10:49: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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