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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에 불교 처음 도래한 곳, 불갑사 1. 동북아시아 불교 인간은 무언가 섬기면서 살아야 하는 운명인듯 하다. 돌도끼들고 사냥하던 선사시대에도 토테미즘, 애니미즘, 샤머니즘, 영혼 숭배사상등이 있었음이 이를 증명한다. 이러한 원시종교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 단지, 정령이나 영혼이 있어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잘 보살핌을 받으려면 정성들여 숭배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논리이다. 동아시아의 기본사상이면서 공자를 종조로 삼는 유교에서도 더불어 잘 살아가는데 필요한 규범과 행동양식은 잘 설명하고 있지만, 죽음이후의 문제에 대하여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는 아주 매력적이었다. 불교는 기원전 4세기경 인도에서 석가모니에 의해 시작되어 중국의 동한시절(유수.. 2023. 12. 10.
과거로의 여행, 낙안 읍성 1. 세월에 곰삭은 것들은 모두 편안하다 세월이 흐르면 모난 것은 마모되어 매끈해지고 강한 것은 부드러워진다. 강가에 나아가 조약돌을 보라. 한 때는 큰 바위였던 것이 깨어져 울퉁불퉁한 돌이 되고 그것들이 물길에 서로 부딪치면 매끄럽고 예쁜 조약돌이 되는 것이다. 한 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뽐내던 콧대도 세상 도처에 저보다 잘난 사람 많다는 것을 알게되고, 운좋게 성숙한 위인을 만나게 되면 더욱 부드럽고 겸손해지는 것도 세월의 힘인 것이다. 그래서 세월은 모든 것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만든다. 세월이 가면 팔팔하던 만물이 약해지고 시들고 병들기도 한다.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은 살아있는 것들의 숙명이다. 우리는 하루 하루 세월을 살아가면서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하루 하루 죽음에 가까워 진다고 해.. 2023. 11. 14.
생사를 넘나드는 사랑, 만복사 저포기 1. 김시습의 금오신화 현장 우리나라의 최초 한문소설은 김시습의 ‘금오신화’로 알려져 있다. 매월당 김시습이 조선 세조때 경주 남산인 금오산 용장사에서 쓴 소설이다. 금오신화는 중국의 ‘전등신화’를 본떠서 쓴 것이다. 이러한 형식은 당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에서 크게 유행하였는데, 이 전등신화도 실은 당나라때의 소설을 따라한 것으로 고금의 괴담을 역은 전기소설인 것이다. 김시습은 조선전기의 문신이자 생육신의 한사람이다. 조선 전기의 역사를 보면 계유정난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나온다. 이 사건은 조선 4대왕 세종의 아들중 하나인 수양대군이 조선 6대왕인 단종(수양대군의 조카)을 몰아내고 7대왕 세조가 된 정치사건이다. 이 사건에 반대하여 죽음으로 충절을 지킨 6명의 신하를 사육신, 목숨을 부.. 2023. 11. 12.
시제, 조상 봉제사가 계속될까? 1. 제사의 의미 한국인들은 해마다 조상이 돌아가신 날이 돌아오면 제사를 지낸다. 전통적으로는 종가댁에는 사당이 있어서 4대조까지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었다. 부모,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까지가 4대 조상이고 이러한 제사 행위를 '사대봉사'라고 한다. 4대조 이상의 조상은 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고 산소에 가서 봄이나 가을날 하루를 정하여 합동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시제라고 한다. 한국의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시골에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것이 보통이었고 조상들 묘는 문중 소유의 선산에 모시게 되므로 묘들이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동조상의 시제를 함께 지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었다. 제사를 지내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우리사회를 이루는 기본사상과 생활방식을 이해할.. 2023. 10. 28.
목포는 맛의 도시이다 1. 목포는 항구 '목포는 항구다'라는 노래가 있었다.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아래 갈매기 우는~' 이렇게 시작되는 일제 말기의 트롯트 가요다. 이난영씨가 이 노래를 가장 멋들어지게 부른다. 기적도 울고 갈매기도 울고 똑딱선도 울고....노래는 부르는 이도 듣는 이도 가슴아픈 사연들이 절절해서 아마도 함께 우는 것일 것이다. 10대 소녀시절 유랑극단 가수로 출발하여 시린 가슴들을 달래주던 가수, 이 노래 중간에 한국전쟁당시 북으로 끌려가서 다시는 못 만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사설을 들으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린시절에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뭐 그런 당연한 소리를?' 했었는데, 나이 들어 세상풍파를 겪고나서 이 노래를 들으니 시대의 아픔과 더불어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 2023. 10. 26.
평화의 소녀상, 전쟁 중 국가에 의한 성 착취 반대 ! 1.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들을 기리기 위한 조형물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 의한 야만행위에 항의하기 위한 1000번째 수요 집회인 2011년 12월 14일에 일본 대사관 앞에 처음으로 설치 되었다.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가 되신 분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할머니 들이다. 빈 의자는 고인이 되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자리이며, 그들이 꽃다운 나이에 끌려갔으므로 소녀로 표현되었다. 소녀는 한복 치마 저고리를 입고 있으며 의자에 단정하게 앉아있다. 얼굴은 둥글고 쌍꺼플은 없으나 일자로 굳게 다문 입과 주먹진 손은 결연한 의지, 저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눈빛은 똑바로 상대방을 처다보면서 '너희들이 한 행동을 봐라'하며 반성을 촉구하고 있는 듯 하다. 단발머리의 끝을 자세히 보면 .. 2023. 10. 23.
비무장지대(DMZ)에서 평화와 통일을 빌어보자 1. DMZ가 평화와 자연을 보호하는 중 한국 비무장지대(DMZ)는 한반도를 동해에서 출발하여 서해까지 가로지르며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는 땅으로서, 분단과 군사적 긴장을 상징하는 가슴 아픈 장소다. 한국전쟁을 정전하는 휴전(1953. 7.27일 합의)선은 길이 약 248킬로미터(155마일)인데, 이 휴전선으로 부터 2Km위쪽은 북방한계선, 2km아래는 남방한계선으로 이 사이 폭 4km(2.5마일)의 땅이 DMZ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견고하게 요새화되고 면밀히 감시되는 국경 중 하나이며, 남북을 분리하는 완충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비무장지대의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반도가 38선을 따라 소련이 진주한 북쪽과 미국이 진주한 남쪽의 두 점령 지역으로 나뉘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분단은 단일 .. 2023. 10. 20.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드리는 남북 통일 기도 1.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남북 합작품 파주군 탄천면 성동로 111번지에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과 '민족화해센터'가 있다. 자유로를 달리다가 성동 IC에서 빠져서 파주시청쪽으로 가다가 두번째인 헤이리 예술마을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갈 수있다. 성당에 들어서면 한옥식 2층 지붕건물이 눈에 띈다. 성당 내부에 들어가면 제대 주변의 하단벽이 한옥집 나무로 만든 창호문으로 둘러져 있고 그 윗단에 유리 모자이크 화를 볼 수있다. 예수님 십자가 위쪽 중앙에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아 계시고 좌우로는 한복을 입은 남녀 순교자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 왕께서 한반도에 평화를 선포하고 계시고 남북의 순교자들이 전구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 성당은 한반도의 평화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교육하는 장소를.. 2023. 10. 18.
심곡서원, 정암 조광조의 개혁과 좌절 1. 심곡서원에 배향된 정암과 학포선생 서울에서 멀지않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에 가면 심곡서원이 있다. 서원은 사설교육기관(정부기관에서 설치한 것은 향교)으로서 성현에 대한 제사도 지내며 또한 지방유지들의 모임 공간이기도 했다. 심곡서원은 정암 조광조 선생과 학포 양팽손 선생을 배향하고 있다. 1650년(효종 1년)에 유림들의 뜻을 모아 정암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를 모셨었다. 이곳에 서원을 세우자는 논의가 일찍부터 있었는데 이는 선생의 무덤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한양조씨 조광조 일가의 선영이기 때문에 정암선생의 부모 형제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있다. 초기에는 재원이 부족하여 포은 정몽주를 배향하는 충렬서원(용인시 모현면 소재)에 잠시 모셨다가, 심곡서원 건립 후 .. 2023. 10. 17.
서울 삼전도비, 청나라에 항복한 굴욕의 기록 1. 서울 삼전도비, 잊지못할 치욕의 증거 서울 잠실 석촌호수 부근에는 삼전도비가 서있다. 높이 3.95m, 폭 1.4m이다. 정식명칭은 서울 삼전도비 또는 대청황제공덕비이다. 우리나라 역사유적인 효자비나 열녀문 등을 보호하는 전통방식과 다르게 이 비석은 철제 기둥과 유리 지붕으로 보호되어 있다. 비석이 비바람에 의해 마모 침식되는 것을 방지할 뿐이지 소중한 문화재는 아니라는 숨은 뜻이 있어서 이렇게 취급되는 것 같다. 삼전도비 옆에는 받침대 하나가 비석없이 놓여있다. 청나라 측에서 처음 만든 비석 받침대를 맘에 안들어 해서 새로 제작하였던 것, 즉 갑질을 한 흔적이다. 비문은 1637년에 도승지 및 예문관 제학이었던 '이경석'이 지었고 글씨는 한성판윤이면서 한석봉의 제자인 '오준'이 썼다. 비석 앞면의.. 2023.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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