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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11

稷下學派 宗祖 荀子가 공부하기를 권하는 글 순자 제1권 권학편(勸學篇) 勸學(권학) 1. 君子曰(군자왈) 學不可以已(학불가이이). 군자가 말하길, 학문은 이만하면 됐다...할 수는 없는 것이다. (중단할 수 없다.) 靑取之於藍(청취지어남), 而靑於藍(이청어남), 푸른 색은 쪽빛에서 취하는데, 쪽빛보다 더 푸르고, 冰水爲之(빙수위지), 而寒於水(이한어수). 얼음은 물이 얼은 것이나 물보다 더 차다. 木直中繩(목직중승), 輮以爲輪(유이위륜), 나무가 곧아 먹줄과 일직선이 되고,구부려서 수레바퀴를 만든다. 其曲中規(기곡중규), 雖有槁暴(수유고폭), 중심을 잡아 그것을 구부린 것을 뙤약볕에 말려도, 不復挺者(부복정자), 輮使之然也(유사지연야) . 다시 펴지지 않는 것은 굽혀졌기 때문이다. 故木受繩則直(고목수승즉직), 따라서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곧아지며.. 2024. 1. 28.
옛날 귀족 관리들 급여와 토지 제도, 지방 호족의 경제적 토대 ? 1. 지방호족세력의 협조로 건국한 고려 고려거란전쟁을 보면 피난을 가는 현종에게 지방호족이 무례하게 행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황제의 명령을 거역하고 심지어 반역까지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지방호족들이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호족 자신들의 경제적 토대를 지키기 위해 더 확장하기 위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방호족들을 이해하려면 당시의 토지제도와 국가 장악력을 파악해 보는 것이 좋겠다. 신라를 무너뜨리고 후삼국을 거쳐 고려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왕건은 결혼정책을 적극실행한다. 각 지방호족들의 협조를 적극적으로 얻기 위해서 인척관계를 맺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왕조를 창건한 이후에는 왕족 수를 늘이지 않기 위해 친족간 결혼이 성행한다. 그래서 고려 초기.. 2024. 1. 11.
시제, 조상 봉제사가 계속될까? 1. 제사의 의미 한국인들은 해마다 조상이 돌아가신 날이 돌아오면 제사를 지낸다. 전통적으로는 종가댁에는 사당이 있어서 4대조까지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었다. 부모,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까지가 4대 조상이고 이러한 제사 행위를 '사대봉사'라고 한다. 4대조 이상의 조상은 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고 산소에 가서 봄이나 가을날 하루를 정하여 합동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시제라고 한다. 한국의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시골에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것이 보통이었고 조상들 묘는 문중 소유의 선산에 모시게 되므로 묘들이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동조상의 시제를 함께 지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었다. 제사를 지내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우리사회를 이루는 기본사상과 생활방식을 이해할.. 2023. 10. 28.
평화의 소녀상, 전쟁 중 국가에 의한 성 착취 반대 ! 1.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들을 기리기 위한 조형물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 의한 야만행위에 항의하기 위한 1000번째 수요 집회인 2011년 12월 14일에 일본 대사관 앞에 처음으로 설치 되었다.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가 되신 분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할머니 들이다. 빈 의자는 고인이 되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자리이며, 그들이 꽃다운 나이에 끌려갔으므로 소녀로 표현되었다. 소녀는 한복 치마 저고리를 입고 있으며 의자에 단정하게 앉아있다. 얼굴은 둥글고 쌍꺼플은 없으나 일자로 굳게 다문 입과 주먹진 손은 결연한 의지, 저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눈빛은 똑바로 상대방을 처다보면서 '너희들이 한 행동을 봐라'하며 반성을 촉구하고 있는 듯 하다. 단발머리의 끝을 자세히 보면 .. 2023. 10. 23.
비무장지대(DMZ)에서 평화와 통일을 빌어보자 1. DMZ가 평화와 자연을 보호하는 중 한국 비무장지대(DMZ)는 한반도를 동해에서 출발하여 서해까지 가로지르며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는 땅으로서, 분단과 군사적 긴장을 상징하는 가슴 아픈 장소다. 한국전쟁을 정전하는 휴전(1953. 7.27일 합의)선은 길이 약 248킬로미터(155마일)인데, 이 휴전선으로 부터 2Km위쪽은 북방한계선, 2km아래는 남방한계선으로 이 사이 폭 4km(2.5마일)의 땅이 DMZ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견고하게 요새화되고 면밀히 감시되는 국경 중 하나이며, 남북을 분리하는 완충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비무장지대의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반도가 38선을 따라 소련이 진주한 북쪽과 미국이 진주한 남쪽의 두 점령 지역으로 나뉘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분단은 단일 .. 2023. 10. 20.
서울 삼전도비, 청나라에 항복한 굴욕의 기록 1. 서울 삼전도비, 잊지못할 치욕의 증거 서울 잠실 석촌호수 부근에는 삼전도비가 서있다. 높이 3.95m, 폭 1.4m이다. 정식명칭은 서울 삼전도비 또는 대청황제공덕비이다. 우리나라 역사유적인 효자비나 열녀문 등을 보호하는 전통방식과 다르게 이 비석은 철제 기둥과 유리 지붕으로 보호되어 있다. 비석이 비바람에 의해 마모 침식되는 것을 방지할 뿐이지 소중한 문화재는 아니라는 숨은 뜻이 있어서 이렇게 취급되는 것 같다. 삼전도비 옆에는 받침대 하나가 비석없이 놓여있다. 청나라 측에서 처음 만든 비석 받침대를 맘에 안들어 해서 새로 제작하였던 것, 즉 갑질을 한 흔적이다. 비문은 1637년에 도승지 및 예문관 제학이었던 '이경석'이 지었고 글씨는 한성판윤이면서 한석봉의 제자인 '오준'이 썼다. 비석 앞면의.. 2023. 10. 16.
화청지에서 양귀비의 사랑에 망가지는 나라와 장한가 1. 화청지, 양귀비와 당현종의 로멘스 중국 산서성 서안에서 동쪽으로 30여km 떨어져 있는 여산아래에는 화청지라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 이곳은 고대 중국왕조인 주나라 시절부터 온천이 유명하였는데, 당나라시절에는 화청궁이라는 궁전이 있었다. 이 곳은 당나라 황제였던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기로 유명한 곳이다. 위 사진의 조각상은 막 온천욕을 마치고 나온 양귀비의 모습이다. 화청궁은 '안록산의 난'으로 대부분 불타 없어진 것을 청나라, 중국정부에서 약 30%만 복원하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 넓이와 화려함이 대단하니 원래 모습의 화려함은 어쨌을까 상상하기 어렵다. 서안은 당나라 시절에 장안이라고 불리었다. 장안은 유방이 세운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의 수도였다.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나라 수도 함양도.. 2023. 10. 14.
북관대첩비, 임진왜란 때 맹활약한 의병장 승전기 1. 임진왜란은 동북아시아 국제 전쟁 1592년(선조 25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우리나라에 침공해온 일본과의 7년전쟁이 임진왜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쟁시작년도와 침략주체를 나타내기 위해 '壬辰倭亂'이라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분로쿠-게이조의 역(文錄-慶長의 役)', 중국에서는 '만력의 역(萬曆의 役)'이라 불린다. 文錄-慶長은 일본, 萬曆은 중국의 당시 연호(年號, 동양 군주국가에서 자신이 다스리는 기간을 부르는 명칭, 즉 군주 자신만의 달력)였다.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당시 조선)는 쇄약해질대로 쇄약해져 있었다. 정치적으로 연산군 이후 훈구파와 사림파의 싸움인 사화(士禍)가 계속되었고, 동서(東人, 西人)로 나눈 붕당의 당파싸움은 국정을 극도의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다. 군사적으로도 조선초.. 2023. 10. 12.
허준, 동의보감을 통해 본 동서의학 비교 1. 허준의 일생 허준의 묘는 경기도 파주군 진동면 하포리에 위치해 있다.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에 정해진 절차를 거쳐서 출입해야 한다. 1991년에야 발견되었는데 발견당시 비석이 파괴된 상태로 발견되었지만 비문에 호성공신, 허준, 양평군 등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허준의 묘로 확신할 수 있었다. 동의보감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저자 허준은 티브이 드라마로 여러번 다루어 져서 인기를 많이 끌었다. 소설이나 드라마는 그 특성상 허구가 많이 게제되어 있고, 일부 사건을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과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허준이 천민 출신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허준은 서자출신이기는 하지만 천민은 아니었다. 허준의 아버지는 용천부사를 지낸 허륜이라는 양반이고, 어머니는 허륜의 .. 2023. 10. 12.
초가집 및 장독대와 옹기, 정겨운 민속마을 풍경 1. 초가집은 고향을 그리워하게 한다 초가집은 한국 전통 건축 양식 중 하나로, 주로 시골 지역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운 전통 주택이다. 주로 농업 생활을 하던 가정들이 거주하고 일을 처리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지붕에 어떤 재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크게 초가집과 기와집으로 나뉘는 것인데, 초가집은 볏짚, 갈대, 왕골, 띠, 플 등의 자료로 이엉을 만들어서 지붕을 올린 집인데 조선시대 이후에는 주로 볏집을 재료로 사용하였다. 기와집은 지붕이 무겁기 때문에 뼈대가 기둥과 보로 이루어져 있지만, 초가집은 나무로 뼈대를 세운 후에 흙벽을 채운 뼈대집, 기동없이 통나무를 포개 얹어서 벽체를 만드는 귀틀집, 벽체를 돌담으로 축조한 돌담집 등 벽체 구성방식이 매우 다양하다. 이처럼 초가집의 주요 건축재료는 돌과 진흙.. 2023.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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