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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5

판전 서예, 추사 김정희 선생 최후의 걸작이다 1. 봉은사 판전 편액 서예작품 감상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가면 코엑스 맞은편에 봉은사가 있다. 봉은사는 서기 794년(신라 원성왕)에 '견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사찰이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성종의 무덤인 선능을 관리하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와서 토지를 많이 하사받았기 때문에 은혜를 받든다는 의미의 '봉은사'로 절 이름을 고친 것이다. 조선 명종시절 문정왕후때는 승려들의 과거시험격인 승과시험을 치른 장소이기도 했다. 이러한 까닭에 현재 강남 한 복판 요지에 넓은 땅을 차지하고서 봉은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요란한 강남에 있지만 사찰 경내에 들어가면 엄숙하고 고요하다. 이처럼 도심 한 복판에 등산없이 접근가능하면서도 숲으로 어우러진 큰 사찰은 봉은사가 유일하다. 봉은사 대웅전과 판전.. 2023. 10. 14.
경복궁, 조선건축에 반영된 성리학 및 풍수지리 1. 조선 건축이해는 기본지식에서 출발 지금부터 약 600년 전에 건국된 조선(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8년 동안 존속)의 건국과정은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분에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선이 한양을 수도로 삼았기 때문에 지금의 서울이 있고, 조선의 궁궐과 한양도성등 각종 건축물들이 도시공간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를 개창한 사람은 고려말기의 명장 이성계이다. 그는 함경도 함흥의 지방 군벌이지만 중국으로부터의 홍건적, 남쪽의 왜구침입을 성공적으로 방어함으로써 신망을 얻었는데 세력을 키워 결국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것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국 주체세력은 고려말 신진 사대부들이다. 이들은 고려 중기부터 송나라부터 유입된 주자의 성리학으.. 2023. 10. 12.
건청궁, 명성황후가 시해된 근대역사 현장 1. 건청궁은 근대역사의 중심무대이다 경복궁 내부를 남북의 주축을 중심으로 이동하는 경우에 광화문-홍예문-근정전-사정전-강령전-교태전-자경전-향원정-건청궁 순서로 관광하게 되는데 맨 북쪽 끝의 한적한 곳에 건청궁이 위치하여 있음을 알 수있다. 이처럼 건청궁은 구중 궁궐 가장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건청궁은 1873년에 고종이 자신의 사비인 내탕금을 가지고 건축하였다. 이 해에 고종이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섭정에서 벋어나 직접통치를 하겠다는, 즉, 친정을 시작한 때이기도 하기 때문에 건청궁 건립을 자신의 정치적 독립선언 표현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 건청궁에서 명성황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1895년)이 일어나기 전까지 황제 부부가 거처하였다. 건청궁을 보면 보통 궁궐이나 사찰에서 볼 수있는 단청이 없다. 이.. 2023. 10. 10.
종묘, 세계 유일의 건물구성과 제례 형식 1. 종묘는 중국 등의 것과 다르다 서울 지하철 종로 3가역과 5가역 사이를 걷다가 북쪽을 보면 종묘가 보인다. 이곳은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인 것이다. 유교국가의 기본 뼈대를 종묘와 사직으로 간주하는데, 그래서 이 곳 종묘는 왕실과 국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것이다. 주나라의 왕실 예법이며 나중에 유교경전의 하나가 되는 예기에 사당(왕실의 사당은 태묘라고 한다)설치 기준이 잘 나와 있다. 천자는 7대조상까지, 제후는 5대조상까지, 대부(가신)은 3대 조상까지 사당에 모시고, 그 이하는 사당을 두지 않는다고 되어있다. 조선왕조 초기에는 제후국으로서 5묘제를 기본으로 하였으나 임진왜란을 격으면서 모든 것을 중국식에 따르기 보다는 논의를 거쳐 자주적으로 설치되고 운영되.. 2023. 10. 9.
창덕궁, 근대화 상흔이 새겨진 궁궐 둘러보기 1. 창덕궁을 가장 오래 궁궐로 사용 창덕궁은 조선의 법궁인 경북궁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궐이라고 불리었다. 태종 5년(1405년)에 경복궁에 이어 건축축된 궁궐이다. 경복궁이 공식적인 첫번째 궁전(법궁)이나은 왕자의 난으로 이복동생을 죽인 곳이며 또한 건설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정도전의 흔적이 서린 경복궁을 좋아하지 않았다. 또한 왕자의 난 등 군사변란으로 경복궁의 권위가 흔들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태종은 경복궁보다는 창덕궁을 더 좋아하고 주로 집무를 이곳에서 보았다. 창덕궁은 당초 작은 규모로 건설되었고 대부분 주거 및 편전 등 실용적으로 되어 있어서 정전인 인정전도 3칸짜리 건물이었다. 인정전은 1418년 세종에게 양위하기로 결심한 직후에 세종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증축을 명하여 5칸 짜리 건물.. 2023.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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