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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복궁, 조선건축에 반영된 성리학 및 풍수지리

by 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 2023.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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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 건축이해는 기본지식에서 출발

지금부터 약 600년 전에 건국된 조선(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8년 동안 존속)의 건국과정은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분에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선이 한양을 수도로 삼았기 때문에 지금의 서울이 있고, 조선의 궁궐과 한양도성등 각종 건축물들이 도시공간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를 개창한 사람은 고려말기의 명장 이성계이다. 그는 함경도 함흥의 지방 군벌이지만 중국으로부터의 홍건적, 남쪽의 왜구침입을 성공적으로 방어함으로써 신망을 얻었는데 세력을 키워 결국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것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국 주체세력은 고려말 신진 사대부들이다. 이들은 고려 중기부터 송나라부터 유입된 주자의 성리학으로 이념 무장된 유학자들이었다. 토지제도와 권문세가의 발호, 불교의 타락 등은 이들 개혁가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면서 많은 것이 변화하였다. 가장 큰 변화는 불교에서 유교로 정치이념이 바뀐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은 당시 한양(지금의 서울)을 수도로 정하고 도성 건설작업에 돌입하였다. 설계 및 시공의 배경이 되는 사상이 매우 중요한데 성리학적 우주질서, 음양오행 및 풍수사상이 위치의 선정, 지명 및 건축명의 이름 선정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경복궁 등 조선궁궐 및 수도 서울의 배치를 살펴보아야 우리 문화를 보다 자세히 정확하게 이해할수 있다.

2. 성리학 및 풍수지리가 핵심이다

성리학을 알기위해서는 공자를 시조로 하는 동북아시아의 대표적 사상인 유교를 이해하여야 한다. 유교는 인(仁)을 모든 도덕의 최고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 ·정치학으로서 수천 년 동안 중국 ·한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의 정신적 기초를 이루는 철학이다. 공자의 유교는 발전을 거듭하여 왔지만, 인도의 불교나 도교처럼 시간적 공간적 세계관을 명확하게 체계화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는데 인도로부터 전래된 불교 등의 영향으로 새로운 유교로 탄생한 것이 주자학이다. 즉,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우리 인간은 어디서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하자고 수립한 관념적 체계가 성리학(性理學)이다. 이것은 조선건국의 기본이념으로 작동하게되는데 향후 조선후기에는 국가발전에 장애요소가 되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조선건국의 핵심기초사상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풍수지리 및 음양오행사상은 당시 지식을 기초로한 자연과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이나 자연이나 에너지 또는 기(氣)의 흐름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공간을 배치해야 자연의 본성에 잘 부합한다는 사상이다. 공간을 통한 기의 자유롭고 막힘 없는 흐름은 건강, 번영, 행복에 필수적이고, 어수선함, 막힌 통로 또는 부정적인 영향은 기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 이 생각은 수천년동안 이어져 왔으며 현대 디자인과 건축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연은 크게 음(수동적)과 양(능동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로 상반된 힘의 균형을 추구를 통해 세상이 조화롭게 작동한다는 것이 음양사상이다. 세상 만물의 구성요소는 금(금속), 수(물), 목(나무), 화(불), 토(흙)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 요소에는 고유한 특성이 있으며 특정 색상, 모양 및 재료와 연관되어 있다. 이들 5개 요소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상생하면서 온갖 작용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오행설이다. 이러한 사상을 통틀어 음양오행설이라 한다.

3. 경복궁 및 청와대의 경우

풍수 전문가들은 이러한 원칙을 활용하여 집과 사무실 디자인, 조경, 실내 장식 등 생활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지침을 제공한다. 풍수 전문가들은 가구 배치, 벽의 색상, 예술품과 장식품 선택, 심지어 에너지의 흐름을 최적화하고 웰빙을 증진하기 위한 건축 변경에 대해서도 조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상에 입각하여 한양도성이 설계되었다. 경복궁은 북악산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전통적으로 통치자는 남면을 하게 되는데 이는 지구의 북반부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우리나라로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복궁 남쪽에 있는 길의 이름은 주작대로이다. 남쪽은 음양오행에서 붉은 색이고 상징동물은 공작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경복궁(Gyeongbokgung)은 조선 왕조의 궁궐 중 가장 크고 중요한 궁궐 중 하나로 공식적 궁궐, 즉 법궁이다. 이 궁궐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그 아름다운 건축물과 정원은 많은 관광객과 연구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경복궁은 1395년 완성되었으나 그 후 몇 차례의 화재와 복원 작업을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경복궁은 궁궐 자체와 그 주변 정원 , 그리고 다양한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다. 궁궐의 배치와 건물명칭도 유교사상과 음양오행 사상에 기초한다. 예를들면, 조선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이 경복궁이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이 이름은 유명한 유교경전에서 유래한다. 《시경》(詩經) 〈주아〉(周雅)에 나오는 "님께서 주신 술로 이미 취했고, 덕으로써 이미 배부르니, 님께서 큰복을 받도록 돕겠다(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에서 2자를 따서 “景福宮”(경복궁)이라고 지었다.경복궁은 또한 "경회루"와 "국립고궁박물관" 등의 궁전 내 박물관과 전시 공간도 포함하고 있어,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는 장소이다. 경복궁은 또한 서울 시내에서 쉽게 접근 가능하며, 그 주변에는 북악산과 청계천, 인사동과 같은 관광 명소도 많이 있어 방문자들에게 다양한 활동과 관광지를 제공하기 때문에 서울을 방문하는 관광객과 한국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려는 이들에게 인기있는 장소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청와대] 청와대는 경복궁 뒷편에 자리잡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관저 또는 대통령 청사로 쓰이던 곳이다. 조선 건국시 자리잡은 곳이 오늘날까지 정부와 행정의 중심지로서 국가의 정책 결정과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곳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자리는 고려시대부터 명당터로 주목을 받은 곳이다. 풍수가들이 "삼각산은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한 선경이다. 그곳에서 시작한 산맥이 3중·4중으로 서로 등져 명당을 수호하고 있으니, 삼각산에 의지해 도읍을 세우면 9년 만에 사해가 와서 조공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 청와대 자리에는 충순당(忠順堂) 취로정(翠露亭) 등의 전각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선 임금과 개국공신의 후손들이 모여 대규모 회맹을 실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제시대 후반기에 조선총독관저, 해방후 미군정시절에는 군정장관의 관저, 대한민국 수립후에는 경무대로 이름을 바꿔 대통령관저로 사용하다가 오늘날의 청와대가 된 것이다. 역사는 후세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부득히 깊이 이해하고 교훈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을 경복궁과 청와대에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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