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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묘, 세계 유일의 건물구성과 제례 형식

by 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 2023.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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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묘는 중국 등의 것과 다르다

서울 지하철 종로 3가역과 5가역 사이를 걷다가 북쪽을 보면 종묘가 보인다. 이곳은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인 것이다. 유교국가의 기본 뼈대를 종묘와 사직으로 간주하는데, 그래서 이 곳 종묘는 왕실과 국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것이다. 주나라의 왕실 예법이며 나중에 유교경전의 하나가 되는 예기에 사당(왕실의 사당은 태묘라고 한다)설치 기준이 잘 나와 있다. 천자는 7대조상까지, 제후는 5대조상까지, 대부(가신)은 3대 조상까지 사당에 모시고, 그 이하는 사당을 두지 않는다고 되어있다. 조선왕조 초기에는 제후국으로서 5묘제를 기본으로 하였으나 임진왜란을 격으면서 모든 것을 중국식에 따르기 보다는 논의를 거쳐 자주적으로 설치되고 운영되었다. 현재 조선의 종묘는 형식적으로는 태조+손조~순종의 7묘제를 따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천위가 늘어나면서 독특한 형식으로 완성되었다. 종묘의 정전에서 밀려난 신위는 영녕전에 따로 모시게 되었으므로, 즉, 땅에 뭍히는 매안되는 신위가 없이 전부 종묘에 그대로 모시는 형태가 된 것이다. 조선의 태묘에는 태조 이성계의 4대조 할아버지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왕인 영친왕까지 사당에 모시고 있는 특이한 케이스가 된 것이다. 종묘는 중국의 예법을 따랐으나 자주적으로 시행된 것을 이로써 알 수 있으며, 특히 현시점에서 보면 이와 같은 유교전통에 따라 종묘가 설치되어 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모델로 삼은 나라인 중국의 명나라, 청나라 시대의 태묘는 공원화되었다가 중국공산당 지배 하에서는 황실의 제사의례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그 기능이나 전통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태묘의 유교전통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참고로 재위 도중에 폐위된 연산군, 광해군은 국왕에서 왕자신분으로 강등되었기 때문에 신위가 모셔져 있지 않고 세조에 의해 노산군으로 강등되었다가 숙종대에 복위된 단종의 위패는 영녕전에 모셔져 있다. 또한 정식으로 국왕이 되지는 못하였지만 덕종, 원종, 장조 등 추존 임금들의 위패도 영녕전에 모셔져 있다.

2. 부속건물에서 제사의식이 보인다

종묘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 건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을 지나 향대청을 향해 가다보면 [공민왕 당]을 볼 수 있다. 조선의 태묘에 고려왕의 사당이 있다는 것은 좀 특이하다 할 수 있겠으나 이는 매우 깊은 역사적 이유가 있다. 조선은 역성혁명, 즉 하늘의 뜻이 이성계에게 옮겨졌기 때문에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 것이지 고려왕조를 무력으로 무너뜨린 것이아니라는 의미를 여기서 엿볼 수있다. 공민왕은 고려말에 원나라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감하게 친원파를 제거하고 개혁정치를 단행한 인물로 고려말 사대부들이나 조선왕조에서도 존경받는 왕이라는 점도 평가된 듯 하다. [향대청]은 제례에 사용하는 향, 축, 폐와 제사예물을 보관하고 제향에 나갈 제관들이 대기하던 곳이다. [어숙실]은 왕이 제례를 올리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준비하던곳이다. [전사청]은 종묘 제사에 사용되는 제례음식을 준비하던 곳이다. [정전]은 국보 제 227호이며 종묘의 중심건물로 태조를 비롯하여 국왕 신주 19위, 왕후 신주 30위 등 총 49위가 모셔져 있다. 정전 남쪽에 있는 문은 동문은 제관이 출입, 중앙문은 혼과 향로가 출입하는 신문, 서쪽문은 악공 등 종사원들이 출입하는 문이다. [공신당]은 정전의 남쪽에 정면 16칸으 맞배지붕 건뭉이다. 국가와 왕실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기리고 명복을 빌기위해 세운 서당이다. [악공청]은 종묘제례시 음악을 연주하는 악공들이 준비, 연습하고 대기하던 곳으로 정전과 영녕전 바깥 서남쪽에 있다. [영녕전]은 정전에서 옮겨진 국왕과 왕후, 그리고 추존된 국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고 있는 별도의 사당이다. 영녕전에는 신주 18위등 총 34위가 모셔져 있다. 정전과 다르게 영녕전에는 공신당이 없다. 이는 추존임금인 태조의 4대조 목조, 익조, 도조, 환조가 실제 왕위에 있지 않아서 공신들이 없는데 후대 왕들이 공신들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어쨋든, 정전에서 불천위가 되도록 국왕을 잘 섬겼으면 덩달아서 공신들도 공신당에 배향되는 것을 볼 때 국왕을 잘 섬겨서 국가를 잘 다스리게 해야 자신도 사후에 대접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3. 종묘제례악과 제례형식은 문화유산

[종묘제례]는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는 행사를 가르키는데 정시제와 임시제로 나눠졌다. 정시제는 1월, 4월, 7월,10월에 행하였고, 임시제는 나라에 좋은일 또는 않좋은 일이 있을 때 임시로 지낸 제사이다. 현재은 5월 첫째주 일요일에 년 1회 제사를 지내는데 일반인들도 사전에 예약을 해서 참관할 수 있다. 예절이나 예법의 모범이 되는 의식이라서 순서와 절차가 엄격하고 장엄하다. [종묘제례악]은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무용, 노래,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음악을 가르킨다. 종묘제례 의식의 절차마다 보태평과 정대업이라는 음악을 중심으로 조상의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며 연주한다. 이때 그 음악의 성격에 맞는 무용이 곁들여진다. 원래 세종때 궁중연회에 사용하기 위해 창작된 것이었는데 세조때 제사음악으로 변형되었고 그후 제례음악으로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매년 5월 첫주 일요일에 행해지는 종묘대제에 참여하면 보태평과 정대업 각각 11곡을 들을 수 있다. 종묘제례약은 조선시대의 기악연주와 노래, 춤이 어우러진 궁중음악의 정수로서 우리의 문화적 전통과 특성이 잘 나타나 있으면서도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멋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1964년에 종묘제례악, 1975년에 종묘제례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008년는 종묘제례악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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