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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무위사, 극락보전 맞배지붕이 유명한 천년고찰

by 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 2023.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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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위사는 여러번 고쳐 지어졌다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에 가면 월출산 남서쪽 기슭에 무위사가 있다. 전에는 큰 사찰이었으나 지금은 넓은 부지에 건물이 많지 않아 좀 쓸쓸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무위사의 역사는 유구하다. 조선시대 까지만 해도 총 네번에 걸쳐서 고쳐지어진 사찰이다. 첫번째, 서기 617년(신라 진평왕 39년)에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어 관음사라고 불려졌다고 전한다. 617년이면 백제와 신라가 치열하게 전쟁을 하던 시기인데 신라의 스님이 백제땅에 사찰을 창건한 것을 믿기 어렵다. 혹시 통일 신라후에 사찰의 보존을 위해서 신라 원효대사와의 인연을 둘러 붙인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두번째, 서기 875년(신라 헌강왕 1년) 도선국사가 중건하여 갈옥사라고 개칭하였다고 한다. 세번째, 서기 946년(고려 정종 1년) 선각 형미대사가 모옥사로 3창하였다.  넷째, 서기 1550년(조선 명종 5년) 태감선사가 4창하여 무위사라고 불렀다. 이처럼 같은 자리에 여러번 절이 개창되는 것을 보면 풍수지리상  명당, 길지임에 틀림없다. 1430년(세종12년)에는 효령대군등의 시주로 극락보전을 건립하고, 1476년(성종 7년)에는 극락보전안에 아미타삼존도, 아미타여래내영도 등 불화가 제작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도 화를 입지 않아서 그 웅장함과 화려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1739년에 또 한 번 크게 증축하였다고 한다. 무위사는 고려초에는 선종사찰로 유명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죽은 수륙제로써 유명하였다. 수륙제는 물과 육지에 있는 혼령을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프는 의식을 말한다.  그래서 극락보전은 죽어서 가는 세상인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이 절의 이름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서 꽤 맘에 드는 절이름이다.잠시 어지러운 일들을 잊고 마음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이곳만한 곳이 없을 듯하다.

2. 극락보전 맛배지붕이 특히 유명하다

극락보전(국보 13호)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불교 건축물 중에서도 초기 건축 형태에 속한다.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이어서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건축미를 자랑한다. 측면의 기둥과 보가 만나 이루는 공간 분할의 절제된 아름다움도 놓쳐서는 안될 감상 포인트중의 하나이다. [맞배지붕]은 한국의 지붕 중에서 그 형태가 가장 단순하고 간결하다. 건물앞뒤로 경사지게 서까래를 걸어 지붕면을 만들고 양쪽 측면은 박공(경사진 지붕 한 쌍으로 인해 만들어진 삼각형 벽면)을 둔 형태의 지붕이다. 마치 책을 엎어놓은 형태이다. 맞배지붕은 측면을 많이 빼주지 않으면 비바람에 취약하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측면에도 지붕이 있는 팔작지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측면에 비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풍판을 부착하였다. 지붕의 무게를 분산시키기 위해 기둥위에 놓는 부재인 공포를 기둥위에만 놓는 것을 주심포양식이라 한다. 반면에 건물이 웅장해지고 지붕이 무거워지면 기둥과 기둥사이에 공포를 첨가하는 형식인 다포식 양식을 채용하게 되는 것이다. 무위사 극락전은 대표적인 맞배지붕 주심포 양식의 건물인데 이와 같은 형식의 대표적인 건물로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부석사 조사당,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도갑사 해탈문 등이 있다.

3. 천년고찰로 문화재가 많다

천년이상 오래된 고찰답게 무위사에는 국보와 보물들이 많다. 우선 사찰 경내에 성보박물관이 있다. 성보박물관은 극락보전 안에 있던 불화들을 이동 전시한 곳이다. 극락보전에는 아미타삼존불과 29점의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상 뒤에 있는 큰 그림 하나만 남고 나머지 28점은 성보전시관에 이동 보관하고 있다. 이 벽화들에는 전설이 전하는데, 극락전이 완성되고 난 뒤 한 노인이 나타나서는 49일 동안 이 법당 안을 들여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법당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49일째 되는 날, 절의 주지스님이 약속을 어기고 문에 구멍을 뚫고 몰래 들여다 보자, 마지막 그림인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고 있던 한 마리의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림속 관음보살은 눈동자가 없다. 선각대사 형미 탑비(보물 제 507호)도 있다. 선각대사는 통일신라말기 고승으로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서 무위사에서 8년간 머무르며 본사를 세번째로 중창한 스님이다. 선각이라는 시호는 고려 태조 왕건이 내린 시호이며 대사가 입적한 지 28년째인 서기 946년(고려 정종 1년)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탑신을 받치고 있는 거북이의 머리는 용의 머리를 하고 있는데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다. 비신 위의 이수에는 운용문과 쌍용문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외에도 무위사 삼층석탑이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무위사 관광시 주의할 점은 절 주위에 식사할 마땅한 밥집이 없으므로, 미리 든든하게 먹고 가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번잡하지 않는 것이 무위사의 묘미이므로 한적하게 여유롭게 사찰분위기를 즐겨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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