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산서원 둘러보기
서원 안내판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에 가면 내산서원이 있다. 삼국시대 백제에 불교를 전해준 인도승려 미라난타와 인연이 있는 사찰 불갑사가 지척인 곳이다. 나즈막한 산이 뒤, 좌우에서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서원은 남향을 하고 따뜻한 햇볕을 받고 있었다. 입구에는 정치인들의 기념식수가 여럿보였다. 강항선생을 추모하는 염을 가지고 했으리라.......
산은 신령이 살아야하고 사찰에는 도력 높은 고승이 살아야 하고 서원에는 학식과 경륜이 풍부한 선비가 있어야 빛이 나는 법인데, 빈 서원에는 초겨울의 햇볕만 고요히 머물고 있다.
서원앞의 연못
강항 선생
수은 강항(睡隱 姜沆) 선생은 1567년에 출생하여 1618년까지 사신 조선중기의 문신이다. 임진왜란을 몸소 겪으신 분이고 특히 일본에 끌려가셔서 몸소 겪으신 전쟁의 상흔을 간양록으로 남기신 것으로 유명하신 분이다. 1597년에 왜군의 포로가 되어 영광 논장포(지금의 염산면)에서 일본으로 갔다하니 임진왜란때라기 보다는 정유재란때 왜군에게 잡히신 것이라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임진왜란때는 바다를 성웅 이순신께서 잘 지켜주신 덕분에 왜군이 전라도를 범하지는 못했었지만, 정유재란 초장에 원균이 칠전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을 몰살시키는 패전을 한 이후 왜군은 전라남도를 유린하고 전라북도 남원 전주를 거쳐 충청도 직산까지 갔던 것이다. 강항선생은 남원이 함락된 이후에 고향 영광으로 돌아와 의병을 모집하여 싸우시다가, 전세가 불리하여 통제사로 재 임명된 통제사 이순신 휘하로 가려고 남행 중에 왜적의 포로가 되신 것이다. 애초에 이순신 장군께서 모함에 걸리지 않고 우리의 남쪽바다를 방어하고 계셨다면 간양록에 기록된 것 같은 참극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한 나라의 임금,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또 한 번 알겠다.
왜군은 선생을 포로로 끌고 가며 어린 선생의 아들, 딸이 울고 보챈다고, 그 둘을 바다에 수장했다. 그것도 부모앞에서 했다고 하니 그 만행은 지금 생각해도 분노가 치밀어 오는 것을 참지 못할 지경이다. 선생은 일본에 있으면서 성리학을 전파하고 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일본의 근대화에 적잖은 공헌을 하였으니, 원수들에게 은혜ㅡ를 베픈 것이라 할 것이다. 그의 제자중 한명인 '후지와라 세이가'가 일본 주자학의 선구자가 되었고 그 이후에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강항선생은 1600년에 가족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와, 관리로 임명되었으나 스스로 죄인이라 칭하고 일찍 사임하거나 취임하지 않았다. 서원을 걸어나오는 길에 보이는 홍단풍나무는 선생의 굳은 절개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일본 적중에서도 왜적의 정세와 인적사항, 일본국 지도 등을 밀서로 우리 조정에 보냈다고 한다. 오늘의 우리가 갚이 본받을 사례이다. 영광 불갑면 내산서원을 방문하기를 강추한다.
* 관련 동영상 참고 : https://youtu.be/aSu1yWtasj4?si=4sLsp2yrOGB1MA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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