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북아시아 불교
인간은 무언가 섬기면서 살아야 하는 운명인듯 하다. 돌도끼들고 사냥하던 선사시대에도 토테미즘, 애니미즘, 샤머니즘, 영혼 숭배사상등이 있었음이 이를 증명한다. 이러한 원시종교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 단지, 정령이나 영혼이 있어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잘 보살핌을 받으려면 정성들여 숭배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논리이다. 동아시아의 기본사상이면서 공자를 종조로 삼는 유교에서도 더불어 잘 살아가는데 필요한 규범과 행동양식은 잘 설명하고 있지만, 죽음이후의 문제에 대하여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는 아주 매력적이었다. 불교는 기원전 4세기경 인도에서 석가모니에 의해 시작되어 중국의 동한시절(유수에 의해 건국된 후한)에 중국에 전래되어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다가, 위진남북조시절에 중국 사상계를 장악하였다. 위진남북조시대는 동한(후한)에 이은 삼국시대(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참조)부터 수나라가 전국통일을 할 때까지의 약 400년을 지칭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이은 제2의 분열의 시기로 혼탁한 전쟁의 시대이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불교는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국가종교로서 자리를 잡게되는 것이다. 유교나 도교적 세계관이 주지 못하는 마음의 위안과 정신적 세계를 불교는 체계적으로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사성제나 연기론 등 불교 사상은 동아시아의 중심사상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2. 삼국시대 불교전래
중국이 서기 184년 황건적의 난을 시작으로 동한(후한)이 멸망하고 수나라가 통일하기까지의 약 400년동안 위진남북조시대를 거치는 동안,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사상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이웃으로서 중국의 사회경제적 변화는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분열의 시기가 한반도에는 기회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위진남북조시절에 고구려는 만주지역 등 중국북부를 영역으로 차지하고 동아시아 맹주역할을 한 것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중국이 통일된 수나라 당나라 시절에는 고구려가 침공당하여 결국 멸망하고 한반도 남쪽만 통일한 통일신라, 한반도 북부에는 발해, 즉 남북조시대를 이루게 된다. 삼국시대 불교 유입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각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반도 북쪽에 위치한 고구려는 육로를 통하여, 백제 및 신라는 해상교통로를 통하여 불교가 유입되었다. 고구려는 중국북방을 평정한 나라인 전진으로 부터 불교가 전래되었다. 남쪽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서 우호적 관계가 필요하였던 전진 왕 부견은 서기 372년 인도승려(법명 순도)와 불경을 이웃나라인 고구려에 보냈던 것이다. 백제는 중국남부에 위치해 있던 동진으로 부터 불교가 전래되었다. 서기 383년 북중국을 평정한 전진은 백만대군으로 남쪽의 동진을 공격하게 되는데 ‘비수대전’에서 8만명의 동진에 패배한다. 한반도에서도 한강유역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던 백제는 승리한 동진에 축하사신을 보내게 된다. 서기 384년에 동진은 귀국하는 백제사신 편에 인도승려 마라난타와 불경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신라의 영역인 경상도 지역에 불교전래는 고구려나 백제보다 훨씬 전에 이루어졌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가 병합한 가야국은 고구려보다 300여년 앞서서 불교를 받아들였다. 금관가야의 개국시조인 김수로왕과 결혼한 허황옥은 서기 48년에 인도로 부터 수행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왔고 불교도 함께 전래된 것이다.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고려승려 묵호자에 의한 것이고 법흥왕때인 527년에 이차돈의 순교를 통해 국가종교로 공인받게 되었다.
3. 호국불교
불교가 전래된 초창기에 불교의 연기설, 즉 좋은 인연을 맺고 착한 행동을 하면 내세에 복을 받는다는 생각 등이 토속신앙과 융합되어 기복신앙으로 발전되었고, 결국 국가전체적으로는 호국신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불교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낸다는 호국불교사상은 한국 특유의 사상으로서 국가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삼국시대의 불국토사상과 호국불교사상이 삼국통일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호국불교사상은 고려의 대장경판 사업, 조선시대 승병활동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동진으로 부터 백제사신들과 함께 온 인도승려 마라난타는 이곳 불갑사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불교는 민중들을 교화시켜 동질감을 부여함으로써 중앙집권 정치체계를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그 역할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는 듯하다. 부처님의 가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극락의 행복을 모두가 맛볼수 있기를 모악산 불갑사에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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