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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드리는 남북 통일 기도

by Sage 역사인문여행전문가 2023.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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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남북 합작품

파주군 탄천면 성동로 111번지에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과 '민족화해센터'가 있다. 자유로를 달리다가 성동 IC에서 빠져서 파주시청쪽으로 가다가 두번째인 헤이리 예술마을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갈 수있다. 성당에 들어서면 한옥식 2층 지붕건물이 눈에 띈다. 성당 내부에 들어가면 제대 주변의 하단벽이 한옥집 나무로 만든 창호문으로 둘러져 있고 그 윗단에 유리 모자이크 화를 볼 수있다. 예수님 십자가 위쪽 중앙에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아 계시고 좌우로는 한복을 입은 남녀 순교자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 왕께서 한반도에 평화를 선포하고 계시고 남북의 순교자들이 전구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 성당은 한반도의 평화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교육하는 장소를 마련하자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제안으로 1990년대부터 건립이 준비되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자신의 참회와 속죄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건물의 외부나 내부가 모두 한옥식으로 지어져 있어서 무척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성당의 외관은 평안북도 신의주 진사동성당의 옛 모습이다. 독일과 미국에 남아있던 사진자료를 토대로 당시의 벽돌크기를 역으로 계산하여 설계하여 지었다고 한다. 성당의 내부는 함경남도 덕원에 위치하였던 베네딕도 수도원 대성전 내부모습을 토대로 꾸며졌다. 민족화해센터는 평양 외곽 서포에 있던 메리놀 선교회 본부 건물을 복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전쟁 전의 모습일텐데 북쪽의 원 건물들이 지금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2006년 4월에 착공미사봉헌 및 기공식, 2008년 8월 완공, 2013.1월 참회와 속죄의 성당과 민족화해센터 소유 및 관리권을 서울대교구에서 의정부 교구로 이관하였으며, 2018년 6월 25일에는 북한지역 순교자들을 위한 순례지로 선포되었다. 한국전쟁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한반도에 전쟁이 아닌 진정한 평화가 함께하기를 모두가 함께 기도하는 성당이 되었으면 좋겠다.

2. 자생적 천주교회 탄생, 신앙의 기적 !

왜 북쪽에서 먼저 성당이 건축되었을까? 당연히 천주교가 육로로 북쪽의 중국을 거쳐 들어왔기 때문이다. 만일, 남쪽 바다를 통해 들어왔다면 이양선을 타고 온 상인이나 군인들이 들여왔을 테니 스스로 받아들인 조선천주교 전통은 세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천주교는 본래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조선후기 실학자들에 의해 도입되고 연구되었다가 결국 종교로 정착하는 과정을 거쳤다. 외국의 무력이나 강압에 의해 강요된 믿음이 결코 아니었다. 스스로 사회변혁의 한 방편으로 천주교 교리를 함께 공부하면서 매료되어 신앙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도입 초창기에는 신부도 없이 신도들끼리 예배를 봤으며, 대표를 중국에 보내어 세례를 받고 오게 하기도 하는 등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도 한번 신앙인이 된 후에는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그 신앙을 지켰다. 천주교 교리는 많은 부분 조선 유학전통과 맞지 않아서 보수 유학자들이나 정치가들에게 혹독하게 여러번 박해를 받았다. 특히 조상에 봉제사하는 것을 충효의 기본으로 삼던 사회에서 제사를 부정하고 신주를 없애는 것은 용납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중앙정부 차원 박해을 받을 때는 배교를 강요당하고 거절한 경우에는 사형을 당하였다. 그 당시 목숨으로 신앙을 지켰던 분들이 후에 성인 성녀로 축성되었다. 1984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으로 한국에 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때 돌아가신 한국순교복자 103위를 성인 성녀로 축성한 것이다. 이렇게 자생적으로 천주교를 믿고 목숨으로 신앙을 지킨 사례는 한국천주교가 유일하다.

3. 남북 믿음 공동체를 복원해 주소서

지금도 한반도는 한국전쟁이후에 휴전상태로 남아있다. 정전협정만 있고 평화협정이나 상호불가침조약체결 단계까지 가지 못하였으니 한반도는 아직 전쟁중인지도 모른다. 남과 북에 사는 우리는 공동의 조상과 역사를 가진 동포요 민족이다. 언어나 생활방식도 똑같다. 아직도 남북분단 이래로 가족이 남과 북으로 헤어져서 오랬동안 만나지 못한 분들이 많이 있다. 이산가족 1세들은 연세가 많이 되셔서 살아계실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고향땅을 밟아보고, 일가친척과 부모형제 상봉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남과 북이 지금처럼 서로 왕래하지 않고 적대시하며 오랜시간 보낸다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남이 될지도 모른다. 세계 어느 곳에 이와 같이 아품과 서러움을 주는 곳이 있는가? 나라가 분단되었던 독일, 베트남은 벌써 통일을 달성하였다. 우리도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해서 하루빨리 하나가 되어야 한다.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왕래가 가능하고 경제활동을 함께 하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남북 믿음 공동체의 복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이렇게 크고 중요한 의미가 있다. 참회와 속죄는 내가 먼저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말자. 남에게 먼저 하라고 강요해서는 않된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려면 북의 잘못지적이나 회개를 먼저 요구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잘못을 반성하고, 통일을 위해 뭘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실천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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