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들을 기리기 위한 조형물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 의한 야만행위에 항의하기 위한 1000번째 수요 집회인 2011년 12월 14일에 일본 대사관 앞에 처음으로 설치 되었다.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가 되신 분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할머니 들이다. 빈 의자는 고인이 되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자리이며, 그들이 꽃다운 나이에 끌려갔으므로 소녀로 표현되었다. 소녀는 한복 치마 저고리를 입고 있으며 의자에 단정하게 앉아있다. 얼굴은 둥글고 쌍꺼플은 없으나 일자로 굳게 다문 입과 주먹진 손은 결연한 의지, 저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눈빛은 똑바로 상대방을 처다보면서 '너희들이 한 행동을 봐라'하며 반성을 촉구하고 있는 듯 하다. 단발머리의 끝을 자세히 보면 가지런하지 않은데 이는 일본군에 의해 댕기머리가 강제로 잘려나간 것을 의미한다. 소녀는 맨발이며 뒷꿈치를 들고 있다. 신발도 못신고 급하게 끌려왔고, 땅에 온전하게 발 디디며 뿌리내리고 살 수 없었던 위안부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소녀의 왼쪽어깨에 새가 한마리 앉아 있다. 하늘과 인간세계를 매개하는 새, 하늘을 자유롭게 날으며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로 생각되었다. 소녀상 바닥의 그림자는 할머니 모습이고 나비가 한마리 날고 있다. 소녀가 세월에 따라 할머니가 되고, 나비는 환생과 꿈을 표현하고 있다. 이 조형물을 보면 전쟁과 인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고, 할머니들의 꿈많았을 소녀시절이 일본군에 의해 무참하게 짙밟힌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척 아프다.
2. 일제의 만행
일본군 위안부란 제 2차세계대전이 한참일 때,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각국에서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끌려가 위안소에서 성노예를 강요당한 젊은 여성들을 의미한다. 당시 일본정부는 일본군의 사기진작과 성병예방이라는 명목하에 이러한 만행을 저질렀다. 이렇게 젊은 여성을 위안부로 끌고 간 사실, 즉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중국, 핀리핀, 동남아시아 등 많은 나라에서 조직적으로 시행되었음이 무수한 증언 또는 문서로 증명되고 있다. 일본군 70명당 1명의 위안부가 필요하다는 일본정부의 문서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쟁 막바지인 1937중일전쟁부터는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들을 강제로 징집하여 전쟁터로 내모는 것이 더욱 심해졌다. 우리나라의 젊은 학생들을 학도병으로 끌고가고, 꽃같은 소녀들로 위안부로 끌려갔다. 이 야만적 행위에 대한 역사적 증거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가해자인 일본은 위안부의 존재를 아직도 공식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국가차원에서 시행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하거나 그러한 사실 자체를 부정하여 피해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아직도 일본정부가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서 공식적인 사과도 없고 피해보상 없다. 그 사이에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가 젊은 청춘시절을 희생당했던 분들은 한 분 두 분 고인이 되어가고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3. 위안부 문제 극복
이러한 잔악하면서도 반 인류적 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의미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평화의 소녀상은 우리나라 전국적으로 124개(2019년 현재)가 설치되어 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 그렌데일, 독일 베를린 등 외국에도 많이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전쟁범죄 행위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전쟁은 인류역사상 많이 존재했고 지금 이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국가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성 착취는 일본군 위안부 사례가 유일한 것 같다. 세계적으로도 위안부 문제는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않될 인류 보편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선진 외국에도 많은 숫자의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것이다. 단일 조형물로서 이렇게 많이 설치된 사례는 평화의 소녀상이 으뜸이라고 생각된다. 전쟁속에서 사회적 약자, 어린이와 여성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를 이 조형물이 잘 표현하고 있고 우리는 이 조형물을 통해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의 사건이고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실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면 위안부같은 만행이 되풀이될 것이다. 아무리 부끄럽더라도 명백하게 밝혀진 사실에 대하여 철저하게 반성하며, 피해자 보상 등 책임있는 조치를 철저하게 이행하고, 다시는 재발되기 않도록 대책을 강구하는 것에서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극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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