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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인박사 유적지, 한반도와 일본관계 과거와 현재 1. 왕인박사 일본문화 개화에 큰 기여했다 전남 영암군 군서면 성기동(현 동구림리)은 왕인박사의 탄생지이다. 월출산 동쪽기슭에 붙어 있고 남서쪽으로는 영암호를 통해 서해바다로 통하는 곳이다. 여기에 가면 왕인박사의 유적지가 잘 조성되어 있다. 왕인박사는 4세기 근구수왕 때 탄생하여 8살 때부터 유학과 경전을 수학하였는데 문장과 실력이 뛰어나 18살때 오경박사에 등용되었다고 한다. 백제 17대 아신왕 때, 일본에서 백제에 학자를 보내줄 것을 청하자 왕인이 논어 등 유학서적을 일본으로 가져가 학문을 전해 주었다. 도일할 때, 왕인 박사는 32세로 일본 응신천황의 초빙을 받은 것이며, 논어 10권 천자문 1권을 가지고 5세기초 일본으로 건너가 그 해박한 경서의 지식으로 응신천황의 신임을 받아 태자의 스승이 되.. 2023. 10. 12.
무위사, 극락보전 맞배지붕이 유명한 천년고찰 1. 무위사는 여러번 고쳐 지어졌다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에 가면 월출산 남서쪽 기슭에 무위사가 있다. 전에는 큰 사찰이었으나 지금은 넓은 부지에 건물이 많지 않아 좀 쓸쓸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무위사의 역사는 유구하다. 조선시대 까지만 해도 총 네번에 걸쳐서 고쳐지어진 사찰이다. 첫번째, 서기 617년(신라 진평왕 39년)에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어 관음사라고 불려졌다고 전한다. 617년이면 백제와 신라가 치열하게 전쟁을 하던 시기인데 신라의 스님이 백제땅에 사찰을 창건한 것을 믿기 어렵다. 혹시 통일 신라후에 사찰의 보존을 위해서 신라 원효대사와의 인연을 둘러 붙인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두번째, 서기 875년(신라 헌강왕 1년) 도선국사가 중건하여 갈옥사라고 개칭하였다고 한다. .. 2023. 10. 11.
초가집 및 장독대와 옹기, 정겨운 민속마을 풍경 1. 초가집은 고향을 그리워하게 한다 초가집은 한국 전통 건축 양식 중 하나로, 주로 시골 지역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운 전통 주택이다. 주로 농업 생활을 하던 가정들이 거주하고 일을 처리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지붕에 어떤 재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크게 초가집과 기와집으로 나뉘는 것인데, 초가집은 볏짚, 갈대, 왕골, 띠, 플 등의 자료로 이엉을 만들어서 지붕을 올린 집인데 조선시대 이후에는 주로 볏집을 재료로 사용하였다. 기와집은 지붕이 무겁기 때문에 뼈대가 기둥과 보로 이루어져 있지만, 초가집은 나무로 뼈대를 세운 후에 흙벽을 채운 뼈대집, 기동없이 통나무를 포개 얹어서 벽체를 만드는 귀틀집, 벽체를 돌담으로 축조한 돌담집 등 벽체 구성방식이 매우 다양하다. 이처럼 초가집의 주요 건축재료는 돌과 진흙.. 2023. 10. 10.
건청궁, 명성황후가 시해된 근대역사 현장 1. 건청궁은 근대역사의 중심무대이다 경복궁 내부를 남북의 주축을 중심으로 이동하는 경우에 광화문-홍예문-근정전-사정전-강령전-교태전-자경전-향원정-건청궁 순서로 관광하게 되는데 맨 북쪽 끝의 한적한 곳에 건청궁이 위치하여 있음을 알 수있다. 이처럼 건청궁은 구중 궁궐 가장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건청궁은 1873년에 고종이 자신의 사비인 내탕금을 가지고 건축하였다. 이 해에 고종이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섭정에서 벋어나 직접통치를 하겠다는, 즉, 친정을 시작한 때이기도 하기 때문에 건청궁 건립을 자신의 정치적 독립선언 표현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 건청궁에서 명성황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1895년)이 일어나기 전까지 황제 부부가 거처하였다. 건청궁을 보면 보통 궁궐이나 사찰에서 볼 수있는 단청이 없다. 이.. 2023. 10. 10.
종묘, 세계 유일의 건물구성과 제례 형식 1. 종묘는 중국 등의 것과 다르다 서울 지하철 종로 3가역과 5가역 사이를 걷다가 북쪽을 보면 종묘가 보인다. 이곳은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인 것이다. 유교국가의 기본 뼈대를 종묘와 사직으로 간주하는데, 그래서 이 곳 종묘는 왕실과 국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것이다. 주나라의 왕실 예법이며 나중에 유교경전의 하나가 되는 예기에 사당(왕실의 사당은 태묘라고 한다)설치 기준이 잘 나와 있다. 천자는 7대조상까지, 제후는 5대조상까지, 대부(가신)은 3대 조상까지 사당에 모시고, 그 이하는 사당을 두지 않는다고 되어있다. 조선왕조 초기에는 제후국으로서 5묘제를 기본으로 하였으나 임진왜란을 격으면서 모든 것을 중국식에 따르기 보다는 논의를 거쳐 자주적으로 설치되고 운영되.. 2023. 10. 9.
창덕궁, 근대화 상흔이 새겨진 궁궐 둘러보기 1. 창덕궁을 가장 오래 궁궐로 사용 창덕궁은 조선의 법궁인 경북궁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궐이라고 불리었다. 태종 5년(1405년)에 경복궁에 이어 건축축된 궁궐이다. 경복궁이 공식적인 첫번째 궁전(법궁)이나은 왕자의 난으로 이복동생을 죽인 곳이며 또한 건설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정도전의 흔적이 서린 경복궁을 좋아하지 않았다. 또한 왕자의 난 등 군사변란으로 경복궁의 권위가 흔들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태종은 경복궁보다는 창덕궁을 더 좋아하고 주로 집무를 이곳에서 보았다. 창덕궁은 당초 작은 규모로 건설되었고 대부분 주거 및 편전 등 실용적으로 되어 있어서 정전인 인정전도 3칸짜리 건물이었다. 인정전은 1418년 세종에게 양위하기로 결심한 직후에 세종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증축을 명하여 5칸 짜리 건물.. 2023.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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